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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1일 10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10일 14시 12분 KST

나를 재단하지 말라 | "여자처럼"이라는 말

"여자처럼" 뛰어보라는 말에 피실험인들은 우스운 폼으로 뛰는 체한다. 머리가 망가진다며 울상 짓는 연기력까지 선보이기도 한다. "여자처럼" 싸워보라는 말에 남성 실험자는 헛웃음을 치고는 고양이처럼 손으로 할퀴는 시늉을 한다. "여자처럼" 공을 던져보라는 말에도 피실험자들은 던지는 둥 마는 둥. 어린 소녀에게 질문한다. "여자처럼 뛰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러자 소녀는 답한다. "최선을 다해 빨리 달리라는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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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다 어떻더라, 남자들은 전부 이렇더라. 어떤 집단을 총체적으로 묶어 평가해버리는 모든 형태의 발언은 폭력적이다. 살다보면 사회가 쌓아온 편견이 나의 경험적 지식인 것 마냥 사고 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렇게 스며들어버린 편견을 보편적 사실이라고 믿곤 한다.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어두가 붙은 '사실' 말이다.

"여자처럼"이라는 말

위의 자료는 Always라는 여성용품 회사에서 제작한 'Like a Girl'이라는 이름의 캠페인 영상이다.

"여자처럼" 뛰어보라는 말에 피실험인들은 우스운 폼으로 뛰는 체한다. 머리가 망가진다며 울상 짓는 연기력까지 선보이기도 한다. "여자처럼" 싸워보라는 말에 남성 실험자는 헛웃음을 치고는 고양이처럼 손으로 할퀴는 시늉을 한다. "여자처럼" 공을 던져보라는 말에도 피실험자들은 던지는 둥 마는 둥.

실제 소녀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여자처럼" 뛰어보라고 지시하자 모든 소녀들이 최선을 다해 뛴다. "여자처럼" 던지라는 지시에도 있는 힘껏 던지는 시늉을 하고, "여자처럼" 싸우라는 지시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펀치를 한다.

어린 소녀에게 질문한다. "여자처럼 뛰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러자 소녀는 답한다.

"최선을 다해 빨리 달리라는 뜻이에요(It means to run as fast as you can)."

성별과 당위

처음 실험자가 피실험인에게 "여자처럼 뛰어 보세요"라는 지시를 했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여자라면 다 이렇게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여자라면 으레 운동신경이 없고 수줍고 예쁘게 보이는 데 신경 쓰니까 뛸 때도, 공을 던질 때도, 발로 찰 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여자다운 것은 그런 거니까. 그런 것이 여자니까. 그렇게 프레이밍되어 있으니까.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묶인 '여성'의 행동은 제한된다. 있는 힘껏 달리고 던지고 싸우던 당찬 소녀들은 '여자답게'라는 사회의 이미지적 강요하에 재단되어간다. '여자니까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은 당위가 되어 소녀들의 어깨에 불문율의 형태로 내려앉는다.

성별에 따른 편견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남자답게'라는 말의 폭력성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하고,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되고, 남자는 강인해야 한다는 기대도 결국은 남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강요이다. 남자들은 다 그렇다는 편견. 좀 더 섬세하고, 좀 더 감정적인 남성들을 "사내새끼가 어딜-"이라는 말로 깎아내리는 폭력적인 편견.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60억이 넘는 인구를 남녀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나누는 것도 문제고, 그렇게 이분한 몇 십억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묶어 단정 짓는 것도 문제고, 그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문제다. 여성성은 무엇이고, 남성성은 무엇인가. 설사 경향적으로 성별 간에 차이가 있다 한들, 그것이 옮으며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당위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그 '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비웃거나 모욕할 자격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여성성은 모욕거리

이 와중에 여성들은 이중으로 압박을 받는다. 여성으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 받는 동시에, 여성성이 무시 받는다. 무언가를 '여자처럼'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소위 '여성성'이라고 치부되는 육체적 연약함이나 감정적인 모습 등은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성을 강요하면서 그에 입각해서 행동하면 그건 또 비웃어버리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가.

만약 위의 영상이 "Like a guy"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남자처럼" 행동하라는 지시에 피실험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과연 "Like a Girl"처럼 우스꽝스러운 행동묘사를 했을까. 더 잘 달릴수록, 더 잘 던질수록, 더 잘 싸울수록, '남자처럼'이라는 조건에 더 부합한다. '남자답게'는 동화될수록 좋은 지향의 대상이 되는 반면에, '여자답게'는 비웃음을 사는 지양의 대상이 된다.

위 영상 속의 한 여성은 자라는 소녀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가 '여자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그 사람의 문제예요. 여전히 성취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요, 나는 여자처럼 공을 차고, 여자처럼 수영하고, 여자처럼 걷고, 여자처럼 아침에 일어나겠죠. 왜냐하면 나는 여자니까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여성성에 입각하여 행동해야 한다, 여성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 그 둘 중 무엇도 아니다. 애초에 애매하기 짝이 없는 '여성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나'라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응원이다. 여자든 남자든 제 3의 성이든 말이다.

나답게 살게 내버려둬

우리는 모두 타고난 자신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성별에 근거한 사회적 강요에 따라 행동할 의무는 없다. 누군가의 삶을 제약하는 족쇄를 맹신하고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비단 우리의 행동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진로에 있어서도 해당되고, 성적 지향에 있어서도 해당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등은 내가 가장 잘 알뿐더러 타인으로부터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타고난 나를 재단하지 말라.

* 이 글은 성문화 개선 소셜벤처 '부끄럽지 않아요'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