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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7일 05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8일 01시 40분 KST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연합뉴스

박 대통령 ‘수첩 인사’부터 전대미문의 ‘권력 암투’까지

정국 강타한 ‘국정 개입 의혹’…과연 진실은 밝혀질까?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이 일주일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가 나온 지난달 28일 이후 주요 신문들이 1면부터 5~6면(신문사에선 이를 종합면이라고 부릅니다)까지 이 이슈로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얘깁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일보>의 정윤회씨 인터뷰,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이어졌고, 급기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 및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우선 많은 뉴스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스무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정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A부터 Z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 2탄과 3탄을 이어가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기사 url만 가지고 계시면 업데이트된 요약정리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시작합니다. 꽉 잡으세요.

딸 승마경기 관전하는 정윤회 부부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정윤회(왼쪽)씨와 전 부인 최순실씨가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파문의 배경 ‘수첩 인사’

우선 파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부터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서 시작했습니다.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는 늘 뒤를 따라다녔지요. 2012년 12월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조차 모르게 ‘깜짝 발표’한 인사 1호가 바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었습니다. 새 정부 첫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는 병역, 부동산 논란으로 청문회도 가보지 못하고 지명 5일 만에 전격 사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2기 내각을 바꿨을 때는 ‘인사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가 고액수임료 수수 문제로 물러난 데 이어, ‘깜짝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더불어 제자논문 대필 논란의 교육부 장관 후보, 음주운전에 사생활 문제를 빚은 문화부 장관 후보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사람들만 골라오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엔 대체 무엇이 씌어 있나?’ ‘인사’ 권한은 정치인들에겐 ‘예산’과 더불어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불통 인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져 갔습니다.

청와대에 인사 검증시스템이 있기는 한 것이냐는 비판도 커졌습니다. 인사 참사를 책임질 배후로는 두 곳이 지적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을 바로 곁에서 보좌하는 책임을 맡은 김기춘 비서실장입니다. 다른 한 축은 최근 언론에 부쩍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으로,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부터의 오랜 보좌진들입니다.

▷ 관련 기사 : 인수위원을 “형”이라 부르고 의원들이 먼저 다가가 인사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는 이 ‘문고리 3인방’의 움직임을 담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입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회사로 치면 ‘감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등 측근 관리를 비롯해, 부처 공무원을 감찰하는 등 정권에 악재가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검토하는 일을 했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몫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이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 그룹 10여 명을 ‘십상시’라고 일컬으며 이들이 실세라고 지목했습니다.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정윤회 씨를 비롯한 외부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내용,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정윤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을 찌라시에 흘리는 등으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세계일보 기사 바로가기).

무엇보다 이 보도의 의미는, 세간에 ‘비선 실세’라는 소문이 퍼져 있던 정윤회 씨가 직접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를 통해 사실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의혹이 그저 사실 여부 판단이 힘든 사람들의 ‘말’로 전해진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문서를 통해 청와대에 공식 보고까지 된 사실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이전의 의혹 단계보다 훨씬 커진 셈입니다. 언론이 <세계일보>의 보도 이후 각종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건 우선 그런 까닭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말보다 공식 문서를 신뢰합니다. 언론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편중된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공식 문서는 작성한 내용이 거짓일 경우 제도적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사실 관계 검증이 더 철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고리 3인방은 누구인가

3인방은 모두 대통령 비서실에 소속된 비서관들인데요.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공식 입문한 이후 줄곧 측근에서 보좌해 온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인사와 살림살이(재무)를 총괄합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원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최근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인사 청탁 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개인정보유출에 관여했던 사람도 이재만 비서관 지휘 아래 있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행정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 유출 개입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5일 오전 ‘정윤회 국정개입 문서’ 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는 길에 기자들 질문에 답하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호성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이 각각 소속된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일정 부서입니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정무 전반과 대통령의 일정, 보고서를 전담합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려면 우선 정호성 비서관을 거쳐야 합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수행과 경호를 책임집니다. 잦은 민원을 넣으려 드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역할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접촉하려면 이 3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해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겁니다.

3인방을 거치지 않고서는 ‘비서실 민정수석조차 대통령을 독대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난해 8월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터졌을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 마찰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과의 알력으로도 추측되는 부분입니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와 균형을 맞췄다는 평을 듣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관련 조선 뉴스프레스 기사

그런데 <세계일보>의 보도를 보면, ‘3인방’이 직책상으로 상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꾀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구상에 ‘외부 세력’이자 민간인인 정윤회씨가 개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1998년 당시 박근혜 의원의 개인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3인방을 비롯한 보좌진 체계를 잡은 뒤 2007년 공식적인 직책에서는 물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 차원에서) 보고받았던 것”이라며 보고서에 거론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의 첫 반응은 위에서 말씀드린 ‘공식 문서 신뢰성’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 문서의 내용보다 청와대 공식 문서가 유출된 것에 더 초점을 두는 식으로 프레임 전환을 꾀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중앙일보>는 청와대가 첫 반응을 내놓은 이튿날인 12월 1일, <세계일보>에서 ‘비선에서 국정을 뒤흔든 인물’로 보도된 정윤회씨의 반박 인터뷰를 보도하며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씨는 “7년간 야인으로 살며 3명의 비서관과 연락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연락이 없으니 되레 비서관 3명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했지만 이해한다”며 <세계일보>의 보도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연락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만난 적이 없고,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김 비서실장 경질설을 퍼뜨린 일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정씨의 육성으로 공식 문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세계일보> 보도가 가진 파장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김진 정치전문기자가 칼럼까지 쓰면서 청와대와 정윤회 씨의 처지를 대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만에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문이 이는 사안에 이렇게 빨리 나서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은 루머이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세계일보>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프레임을 청와대 문건 유출에 맞췄습니다. 비서관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후속 보도가 없었다면, 한동안 이 프레임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의 반격

반전은 <조선일보>에서 터져나왔습니다. 12월 1일까지의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문건 유출 책임론 프레임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2월 2일자 ‘정윤회, 지난 4월 이재만과 연락했다’는 제목으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정윤회 씨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직속 선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첩보가 맞을 가능성은 6할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내용을 지난 2월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 보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해 비서실장을 음해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한 2달 뒤인 지난 4월 10일께 정윤회 씨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를 무시하자 다음날에는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며 정씨를 대변하는 말을 전했다는 겁니다.

▷ 관련 기사 : 조응천, 정윤회 정면 반박…“이재만과 4월에도 연락”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7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말과 달리 3인방이 정윤회씨와 꾸준히 연락해 왔다는 정황을 드러냈습니다. 또 해당 문건 유출은 조응천 전 비서관 자신의 수하였던 박관천 경정이 아닌 3인방과 관련이 있다는 암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문제의 ‘감찰 보고서’는 찌라시성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가진 보고서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실제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 유출에 대해서는 "관리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직접 부정한 셈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습니다. 검증 임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야할 일인데 “어떤 때는 한창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 참사’의 책임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3인방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 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중순 경질됐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뒤 이뤄진 보복성 인사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일개 비서관 출신으로 어떻게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 주류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배경은 이번 파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차츰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줄줄이 좌천된 ‘박지만 회장 측근’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으로 박지만 EG 회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지만 회장의 마약수사 검사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이 친인척 쪽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박지만 회장이 공직기강비서관을 움직여 ‘정윤회 계파’에 대한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박지만 회장이 측근인 조응천 전 비서관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위험성을 알려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섭하고, ‘정윤회 계파’를 저격하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이 보고를 ‘청와대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판단하면서 묵살했고, 오히려 3인방을 공격한 박지만 회장 쪽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역풍을 맞고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윤회 계파’와 ‘박지만 회장 계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처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실제로 최근 박지만 회장 쪽 사람들은 줄줄이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 외에도, 박지만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5월 옷을 벗었습니다. 청와대 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지난 8월 조응천 전 비서관과 가깝다고 알려진 고위급 인사가 발령 직후 청와대의 요구로 ‘자진 퇴임’하는 형태로 물러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기무사에서는 지난 10월 박지만 회장과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경질됐습니다. 당시엔 배경이 궁금했던 인사 이유가 뒤늦게 추정이나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 관련 기사 : “누나가 무섭다”던 박지만, 세력 만회 시도한듯

이런 일련의 인사 흐름을 아래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표. 경질된 박지만 회장 측근 인사들

1. 청와대

4월, 민정수석실 조응천 비서관 라인 경질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급 경찰관 5명이 7월까지 원대복귀)

5월,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 사퇴

 

2. 국정원

5월, 남재준 국정원장 사임

9월, 1급 간부 Z씨가 인사 일주일 만에 철회 : 청와대 지시로 퇴진 후 국내 정보와 무관 부서로 이동

 

3. 기무사 군 인사 건

10월, 이재수 전 사령관 전격 교체

 

4.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안민석 새정치 의원 “김 전 위원장 사퇴가 김 실장과 정윤회씨 사이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

 

정윤회 파와 박지만 파의 싸움인가

정윤회(왼쪽)와 박지만

그러자 박지만 회장 쪽이 이번에는 여론을 활용해 반격을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평소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은 ‘정윤회’나 ‘십상시’ 등의 단어를 포함한 문건을 유출해 3인방에게 타격을 줌으로써, 권력 싸움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밀려나고 있는 사태의 반전을 꾀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널리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파문이 정윤회 쪽과 박지만 쪽의 ‘국정 장악 파워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사태의 엄중함과 별개로, 한숨도 나옵니다.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힘겨루기라뇨.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한 힘겨루기로 폄훼하며 외면해선 안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정윤회 씨가 됐든 박지만 회장이 됐든, 국정에 개입해 각종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정윤회 씨나 박지만 회장처럼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사람은 의회나 시민들의 감시를 받을 의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국정을 휘저었다’고 해도 법적 처벌이 애매합니다. 즉, 대통령까지 움직이는 국정 농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행정부가 흔들려도, 삼권 분립의 핵심인 의회 권력과 사법 권력이 어떻게 제어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시민들이 끝까지 비판의 눈초리를 비끼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윱니다.

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2탄에서는 정윤회 씨 부부가 실제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한 <한겨레> 보도와 그 이후 보도들을 정리하는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이어가겠습니다. 2탄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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