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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6일 05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6일 05시 45분 KST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6 (상)

올해 초 방글라데시에서 외신을 타고 날아온 짧은 소식. 방글라데시의 영원무역 공장에서 벌어진 시위 중 여성 노동자 1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영원무역은 홍보대행사를 통해 짤막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새로운 최저 임금 인상을 집행하던 과정에서, 조정된 임금체계를 오해한 일부 근로자들의 시위 중 경찰의 발포초 1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10명 내외가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또한 다수의 이웃마을 불량배들이 공장에 침입하여 내부를 파괴하고 집기와 2~3000족의 수출 대기 중인 신발을 약탈해 갔습니다. 당사는 1/11(토)에 공장 내부를 수리 청소하고 1/12(일)부터 조업을 재개키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난 것을 유갑스럽게 생각하오며 여러분들의 너르신 이해와 협조를 구합니다."

오해, 이웃마을 불량배, 유감…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영원무역은 비슷한 해명을 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번번이 ‘오해’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의류봉제업이 진출한지 30년이 넘도록 이 나라의 최저임금은 어떻게 여전히 100달러를 넘지 못하는가? 불과 8개월 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로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숨진 나라에서 경찰이 어떻게 노동자를 향해 발포할 수 있는가?

대다수 언론은 같은 시기 캄보디아의 의류노동자 시위에서 공수부대가 여러 노동자들을 사살한 사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단 1명이 죽은 영원무역과 방글라데시는 그렇게 잊혀질 것만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풀기 위해 류이근, 유신재 두 기자가 약 한 달 동안 방글라데시 치타공과 다카를 다녀왔다.

1. 10달러의 대가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국수출가공공단(Korea Export Processing Zone)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제조업체로 유명한 영원무역 소속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1980년 처음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영원무역은 1999년 정부로부터 치타공 땅 500ha를 1400만달러에 매입해 방글라데시 최초의 민간 수출가공공단을 조성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의류 신발 등 17개 생산법인과 1개 항공사를 운영하며 약 6만8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세계 2위 의류 수출국 방글라데시의 최대 외국인투자기업,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으로 꼽힌다. 류이근 기자

예부터 벵골과 펀자브에서 나는 쌀로 인도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내려왔다. 벵골의 나라란 뜻인 이곳 방글라데시는 갠지스강 하류의 넘쳐나는 물과 사시사철 따뜻한 기후가 어우러져 삼모작이 가능한 풍요로운 땅이다. 하지만 누구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땅 한 뙈기 없던 파빈의 아버지는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었다. 릭샤(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를 몰기도 했지만, 두 해 전 세상을 떴다. 늙고 병든 엄마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즈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외국 공장이 들어섰다. 사람을 뽑는다기에 여동생 나시마가 줄을 서 면접을 봤다. 나시마는 면접 사흘 만에 봉제일을 시작했다. 없는 돈을 쪼개 치타공 시내까지 나가 학원에서 미싱을 배운 게 도움이 됐다. 나시마는 다달이 6000타카(약 8만원)를 벌어 왔다.

나시마 덕에 엄마와 네 남매가 세 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집안 형편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픈 엄마는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조차 갈 수 없었다. 3000타카(약 4만원) 넘는 빚은 쉬이 줄지 않았다. 집안 살림을 도맡던 파빈도 지난해 9월부터 돈을 벌러 나섰다. 동생 나시마의 추천으로 어렵지 않게 같은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 나라에선 주로 친인척이나 친구의 추천을 받아 사람을 쓴다.

파빈은 올해 스물한 살이다. 이곳 여성들은 보통 이 나이면 결혼하지만, 파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딸은 엄마 곁을 지키려 했다. 파빈은 엄마에게 “시집 안 갈래. 엄마랑 같이 살 거야. 내가 돈을 벌게”라고 말하곤 했다. 파빈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한두 달 더 공장에 다니면 동생처럼 헬퍼(보조)에서 오퍼레이터(미싱사)로 올라갈 수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외국계 기업인 영원무역 공장에 다니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한국수출가공공단에는 현재 영원무역 계열 공장들만 입주해있다. 공단 경비 역시 영원무역이 고용한 경비업체가 맡고 있다. 경비실 옆 철문에 ‘18세 미만 고용 금지’라는 문구가 영어와 벵갈어로 적혀있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공장에서 아동노동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류이근 기자

지난 1월9일, 파빈은 여느 때처럼 새벽 5시30분께 눈을 떴다.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7시께 동생과 집을 나섰다. 자매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기다리던 월급날이다. 둘은 얼마 전 총리가 방송에 나와 “1월 월급분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한 발표를 들었다. 각자 월급이 1000타카(1만3000원) 넘게 오를 것으로 잔뜩 기대했다. 파빈은 동생한테 “빚도 조금 갚고, 엄마를 의사한테 모시고 가자”고 말했다. 떨어지는 쌀도 급했다. 자매는 어느새 제복을 입고 긴 총을 멘 경비들이 지키고 서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정문을 통과했다.

파빈은 7번, 나시마는 6번 공장으로 빨려들어갔다. 7번 공장에서 파빈은 퓨마(Puma) 브랜드 운동화를 만들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제조업체로 유명한 한국 기업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뿐만 아니라 나이키, 퓨마 등 수많은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들에 오이엠(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의류와 신발 등을 납품한다. 스포츠, 아웃도어 오이엠 업체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아직 헬퍼인 파빈은 서른명이 한 조로 일하는 작업대 맨 끝에서 하루 250~300켤레씩 쏟아져나오는 신발의 삐져나온 실밥을 잘라냈다. 흘러내린 본드도 깔끔하게 뜯어냈다.

갓 만들어진 신발이 내뿜는 독성에 종종 눈이 아렸다. 일할 때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가는 데만 4분이 걸리니, 볼일을 보려면 10분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 조장이나 매니저한테 갖은 욕설을 듣느니, 아침 8시30분부터 점심때까지 참는다. 파빈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오래 참아야 한다. 헬퍼의 점심시간은 오퍼레이터 등 다른 노동자들보다 2시간 늦은 오후 2시부터 딱 30분 동안이다. 몇 달 더 일해 오퍼레이터가 되면 파빈은 동생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파빈 악터가 일했던 영원무역 신발공장 내부 모습. 관리자나 재단사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여성이다. 영원무역의 최대 바이어는 노스페이스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브이에프시(VFc)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노스페이스 제품의 약 40%를 영원무역이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나이키, 퓨마, 엥겔베르트슈트라우스, 랄프로렌 등도 주요 바이어다. 류이근 기자

11시께, 기다리던 월급 명세서가 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약 3800타카(약 5만원)이던 이전 월급에서 700타카(약 930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월급날이 보통때보다 4~5일 늦어질 때부터 수상했다. 수당이 문제였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방침에 따라 회사는 기본급을 올렸다. 대신 의료비 등 수당을 확 줄였다. 총액이 파빈이 기대했던 금액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내 공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리자들이 기계를 세웠다.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밥을 먹지 않은 채 공장 앞 빈터에 모여들었다. 회사 쪽 연락을 받았는지 경찰도 이미 공단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경찰이 무리 속 두 남자를 불러 세웠다.

나시마는 언니가 총을 맞아 숨진 공장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다. 언니가 죽은 뒤 며칠 동안 나시마는 작업대에서 울기만 했다고 공장 동료들은 말했다. 나시마는 “무섭지만 밥을 찾는 ‘나쁜 배’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나시마는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류이근 기자

“당장 공장 안으로 들어가, 다시 일을 시작해.” 두 남자는 “올린 월급을 주기 전엔 못 들어갑니다” 하며 버텼다. 그러자 경찰이 이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품질검사를 담당하는 하룬이 나서서 경찰을 말렸다. “우리가 기계를 부수거나 공장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왜 때립니까?” 그러자 경찰은 “네가 노동자 대표냐”며 하룬의 멱살을 잡고 검문소 쪽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흥분한 노동자들이 경찰 쪽으로 몰려갔다. “하룬을 풀어줘라, 때리지 마라.” 당황한 경찰이 최루탄을 쏴댔다. 눈을 따갑게 쏘는 연기가 노동자를 순식간에 흐트러뜨렸다. 노동자들이 벽돌을 깨 던지기 시작했다. 나시마는 바닥을 빠른 속도로 휘젓는 최루탄의 불꽃이 행여 옷에 옮겨붙을까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허둥대며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두고 온 히잡을 챙겨 언니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에 히잡을 두르지 않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탕, 탕, 타당!” 밖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졌다.

공장 밖으로 뛰쳐나온 나시마의 눈에 언니 파빈의 모습이 들어왔다. 언니는 바닥에 누운 채 다른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총알이 파빈의 머리를 관통했다. 병원이 있는 치타공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카르나풀리강 다리를 건너기 전 파빈의 심장은 더는 뛰지 않았다.

파빈은 결국 네번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2. 사라진 노동자들

2010년 12월 영원무역 공장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1995년 처음 최저임금을 정한 이후 2006년, 2010년, 2013년 딱 세 차례 인상했다. 매번 인상폭이 클 수밖에 없다. 회사는 전체 인건비 상승 부담을 각종 수당을 깎아서 최소화한다. 그래서 기본급을 뼈대로 한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큰 폭의 임금 인상을 기대한 노동자들과 충돌을 빚기 일쑤다.

3년 전에도 월급날이었다.

파빈이 일하던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카르나풀리강을 건너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이 위치하고 있다. 영원무역의 방글라데시 공장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다. 2010년 12월11일, 재단사 마슈는 여느 때처럼 출입문짝도, 후미등도 없는, 찌그러진 냄비처럼 곳곳이 파인 고물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치타공수출가공공단 정문 앞에 8시쯤 내려 영원무역 공장까지 걸어갔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이었다. 전날 퇴근할 때 받아 든 월급 명세서가 못마땅하긴 했다. 최저임금이 오른다는 정부 발표에 좋아했는데, 막상 손에 쥔 월급은 5400타카(약 7만2000원)가 안 됐다. 기대했던 액수보다 500타카(약 6700원)가량이 적었다.

‘결근도 한 번 안 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하지만 공장 안에 있는 누구도 불만을 섣불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괜히 나섰다가 해고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이 오전이 지나갔다. 경찰이 경비실에 와 있는 게 이상하긴 했다. 전엔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제대로 오르지 않은 월급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한 친구가 마슈한테 주의를 줬다. “괜히 월급 갖고서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사장도 할 만큼 한 거야. 잘못 말했다간 우리만 손해봐.” 대화는 금세 끊겼다. 회사도 단속에 나섰다. “동요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 서로 월급 얘기하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라.” 누구도 이 말을 한 관리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출입문 쪽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밖에서 투쟁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여기서 뭣 하고 있는 거냐. 밖으로 나가자. 안 그러면 기계를 때려부수겠다.” 여성의 손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놀란 건 노동자들보다 회사 쪽이었다. 관리자들이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와 기계를 세웠다.

위: 평상시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의 퇴근길 모습. 방글라데시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모두 8개의 수출가공공단을 조성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의 자본이 들어와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외국 자본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공단 내 노조 설립을 법으로 막는 것이다. 아래: 치타공수출가공공단 안에 영원무역의 통근버스가 줄지어 주차돼있다. 차체가 온통 찌그러진 방글라데시의 보통 버스와 달리 깨끗한 모습이다. 영원무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 버스를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버스들은 영원무역 간부 전용이다. 류이근 기자

마슈는 동료들과 공장 밖으로 나갔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영원무역의 와이에스엘(YSL) 공장 앞에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5층짜리 와이에스엘 공장에서는 영원의 대표 제품인 노스페이스 의류를 만든다.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노동자들이 “우리 대표들이 안에 갇혀 있다. 협상을 하러 갔는데 아직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어디 있는지 찾아봐달라”고 말했다.

마슈는 10여명의 남자들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화분이 깨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지만, 공장 안 기계들은 멀쩡해 보였다. 4층으로 올라갔을 때, 한 사무실 캐비닛 안에서 세 사람을 발견했다. 누구한테 맞았는지 온몸이 멍들어 있었다. 마슈는 숨만 겨우 내쉬는 이들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2010년 12월 노동자 테러사건의 배경이 된 치타공수출가공공단 내 영원무역 YSL 공장 입구. 류이근 기자

다시 5층으로 올라갔다. 두 노동자가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둘 다 양쪽 팔목과 발목이 깊게 베였다. 피가 흥건했다.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들것을 만들어 옮겼다. 와이에스엘에서 오랫동안 오퍼레이터로 일해온 슈리와 그의 동료들도 이를 목격했다.

마슈의 공장과 달리 와이에스엘 공장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은 노동자들은 9시30분께 기계를 세웠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를 설득해 기계를 다시 돌렸다. 재봉틀이 점심 뒤 또다시 멈추자, 회사 쪽은 “파업을 이끄는 대표가 누구냐”고 다그쳤다.

모든 수출가공공단(EPZ·Export Processing Zone) 안에서는 노조 설립이 사실상 금지돼 있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오랜 선물이다. 노조가 없는 공장에 노동자 대표가 있을 리 만무했다. 회사 쪽은 다섯명을 지목해 위층 관리자 사무실로 불렀고, 그들은 제 발로 내려오지 못했다.

마슈는 테러로 중상을 입은 노동자들을 공단 정문 앞까지 옮겼다. 삼륜 택시인 시엔지(CNG)를 불러 세워 부상자들을 싣고 치타공대학병원으로 보냈다. 마슈는 “시엔지에 태울 때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병원에 테러를 당해 실려온 이들의 의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영원무역 YSL 공장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목격자 슈리가 자신이 입던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 공장에서 봉제공으로 일하던 슈리는 테러사건이 일어난 다음달 노동자들의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류이근 기자

마슈는 다음날 아침에도 평상시처럼 출근했다. 8시 전에 공단에 도착했지만, 정문을 지키는 경찰이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다른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아내만 들어갔다. 경찰은 사원증을 확인해 영원무역 노동자들만 통과시키지 않았다. 영원무역의 또다른 공장 와이에스에스(YSS)의 품질검사관 미루도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공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영원무역 노동자가 금세 수천명으로 불었다. 전날 와이에스엘 공장에서 있었던 노동자 테러 사건과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한 월급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노동자들은 수출가공공단을 관리감독하는 총리실 산하 투자청(BEPZA) 건물 정문을 부쉈다.

갑자기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총도 이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픽픽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대테러부대 랩(RAB)도, 군인인 국경수비대(BGB)도 경찰에 섞여 있었다. 군경은 골목으로 달아나는 노동자까지 쫓아가 총으로 쐈다. 미루 옆에 서 있던 남자도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세명의 주검을 릭샤밴(짐수레를 단 자전거)에 실었다.

다른 곳에 있던 마슈도 세명의 주검을 릭샤밴에 올렸다. 마슈는 “이곳저곳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을 릭샤밴에 실어 어디론가 운반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안와르는 아침까지 공단 정문 앞에 함께 서 있던 사촌동생을 밤늦게 치타공대학병원에서 만났다. 영원무역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은 냉동고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와르가 병원에서 본 주검만 또다른 영원무역 노동자를 포함해 여덟이었다.

2010년 12월12일, 방글라데시와 전세계 언론은 치타공수출가공공단 노동자 시위 진압 과정에서 릭샤꾼을 포함해 최대 다섯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희생자 가운데 영원무역 노동자는 없다고 했다. 마슈, 미루, 안와르가 목격한 많은 주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중 마슈는 지금도 영원무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익명이다.

다음날 서울에서 영원무역은 기자들에게 ‘영원 치타공 공장, 괴한들에게 공격받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잘못 이해해 불거진 사태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불순세력이 공장을 무단 점검해 기물을 파손했다는 내용이었다. 파빈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다음날인 2014년 1월10일 영원무역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도 엇비슷했다.

<한겨레>가 만난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2010년 12월 치타공에서 일어난 충돌로 인한 사망자는 영원무역 노동자 여럿을 포함해 10명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당시 현지 언론은 릭샤꾼을 포함해 최대 5명이 숨졌고, 사망자 가운데 영원무역 노동자는 없다고 보도했다. AP/연합

파빈의 죽음에 영원무역 주가는 당일 잠시 하락했으나 이내 회복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영원무역의 주가는 1월9일 전날에 견줘 4.5%가량 하락했지만, 이후 상승 추세를 이어가다 1주일 만인 1월16일엔 사고가 있기 전보다 높은 3만8750원으로 뛰었다. 파빈의 죽음을 부른 최저임금 인상을 심각하게 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인건비 상승 요인이 있다고 봤다. 방글라데시의 임금은 조금 더 오른다 해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규모 생산능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춘 영원무역이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투자자들에게 영원무역 주식의 매수를 권했다.

지난 3월 중순께 만난 나시마는 언니가 총을 맞아 죽은 공장에서 여전히 미싱을 돌리고 있었다. 언니가 죽은 뒤 처음 며칠 동안은 작업대에서 울기만 했다고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샤르민이 말했다. 나시마는 “무섭지만 밥을 찾는 ‘나쁜 배’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나시마는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공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시위 뒤 수당 삭감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잔업이 사라졌다. 그래서 6000타카(약 8만원)이던 나시마의 월급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500타카(약 67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공장은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잔업을 없애 임금 인상 부담을 덜었다. 나시마는 예전에 10시간에 하던 일을 지금은 8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고 했다. 나시마는 “점심시간이 30분에서 15분만 더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장실도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 재봉틀의 작동원리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 곳곳에는 ‘긴급행동대대(Rapid Action Battalion)’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서있다. 여느 나라에서 군대나 경찰 등의 홍보물은 보통 입대지원자 모집을 위한 것이지만, 이 입간판들은 이 특수부대의 역할을 강변하고 있다. 영문 앞글자를 따 흔히 ‘랩(RAB)’이라고 불리는 이 부대는 원래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창설됐지만, 노동자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유신재 기자

폐차장에서 되살아나온 듯한 승용차와 버스, 3륜 택시 ‘시엔지’(CNG), 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 릭샤, 차창에 매달려 구걸하는 거지. 조야한 기계와 남루한 사람들이 뒤엉킨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도로는 좀체 속도를 내기 힘들다.

렌터카 뒷좌석에 지루하게 앉아 있는데 차창 밖이 소란스럽다. 교통경찰이 릭샤꾼에게 고함을 지른다.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릭샤를 옮기라는 뜻인 것 같다. 곧이어 교통경찰이 릭샤꾼의 뺨을 힘껏 올려붙였다. 따귀를 맞은 릭샤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릭샤를 옮겼다.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방인에게 통역과 현지 안내를 맡은 레자는 “저 정도면 착한 경찰”이라고 말했다. “고문금지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채찍으로 릭샤꾼을 때리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었어요.” 방글라데시 의회가 고문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가난한 시골 출신 남자들이 릭샤를 끈다. 한 번 손님을 태울 때마다 10~20타카(약 130~260원)를 받아 하루 200타카의 대여료를 내고 남는 돈이 수입이다. 40만대에 이르는 릭샤가 다카에서 경쟁한다. 더 좋은 목을 지키려고 고집을 피우다 경찰한테 따귀를 맞는다.

가난한 시골 출신 여자들이 의류공장에서 일한다. 월 5300타카(약 7만원)의 최저임금은 도시의 집세와 식비 등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조금 더 높은 월급과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고 나서는 의류노동자들은 따귀를 맞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치타공의 번화가 아그라바드 지역 노점에서 한 남자가 ‘슬레진저’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장당 200~250타카, 약 3000원에 팔고 있다. 이른바 ‘짝퉁’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진품을 사려면 ‘싱가포르 마켓’으로 가야 한다. 서울 세운상가 같은 오래된 건물에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허름한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점포 안에는 타미힐피거, 갭, 리바이스, 캘빈클라인 등 유명 글로벌 브랜드 제품이 가득하다.

‘아즈미르 컬렉션’이라는 점포의 점원이 이방인을 반기며 타미힐피거 티셔츠를 권했다. 1000타카, 우리 돈으로 약 1만3000원이다. 반강제적인 권유에 옷을 입어보다 “짝퉁 아니냐”고 묻자 점원은 펄쩍 뛰었다. “수출가공공단(EPZ·Export Processing Zone) 안쪽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서 물건을 떼오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물건이 필요하다고 전화하면 갖다줘요. 공장에서 그때그때 남은 물건을 갖다주는 거라서 같은 브랜드가 계속 나오진 않아요.”

다른 점포에서는 모자가 달린 노스페이스 겨울 점퍼도 눈에 띈다. 겨울에도 최저기온이 영상 10℃ 밑으로 거의 떨어지지 않는 이곳에선 도무지 입을 일이 없는 옷이다. 영원무역 공장에서 나왔다는 점퍼의 가격은 3500타카, 약 4만6000원.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곳의 최대 고객은 치타공 항구에 잠시 정박한 외국인 선원들이다. 한 점포 주인은 중국인, 한국인 선원들이 한번에 수십벌씩 사간다고 귀띔했다.

수출가공공단 출입구에서는 경찰이 밖으로 나가는 차량을 세워 트렁크 속까지 검사한다. 수출품이 내수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뚫고 물건을 밖으로 빼돌릴 수 있는 건 ‘마스탄’이다. 벵골어로 ‘근육질 남자’라는 뜻인 마스탄은 조직폭력배를 말한다. 영원무역에서 오랫동안 관리직으로 일했던 여성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그들이 물건을 빼돌린다. 그들은 여러가지 일을 한다”고 말했다.

다카에서 만난 또다른 ‘랩(RAB)’ 홍보 입간판. 2010년 다수의 노동자들이 숨진 영원무역 시위 때도 랩이 투입됐다. 휴먼라이츠워치, 앰네스티인터내셔널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법을 뛰어넘어 살인을 일삼는 랩을 ‘살인부대’라고 규정하고, 랩의 살인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은 지난 연말 랩에 한국인 기업인들의 의류공장을 보호해달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유신재 기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인터뷰를 꺼렸다. 인터뷰 섭외를 도와주던 노동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랑 인터뷰했다고 이웃에 사는 동료가 회사에 찌를 수 있어요. 그러면 회사는 마스탄을 시켜서 가만 놔두지 않죠. 5~10명이 한밤중에 들이닥칩니다. 다들 무기를 갖고 오기 때문에 주민들도 말릴 수 없어요.”

다카 인근의 한국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몇시간 뒤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우리가 얘기한 걸 공장에 가서 다시 확인하면 우리가 위험해져요. 회사 관리자가 마스탄 40명 정도를 동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린 이 동네에서 쫓겨나고, 공장에서 해고돼요.” 또다른 한국계 공장의 노동자는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 지역의 노동단체 활동가는 “노동자들 대부분 시골에서 온 외지인이다. 같이 힘을 합쳐서 마스탄과 맞서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치타공의 노동운동가 시디굴 이슬람은 “마스탄은 공장에서 견본품이나 불량품, 자투리 원단 등을 받아서 여러가지 사업을 한다. 공장에서 연락을 받으면 노동자들이 시위를 못하게 폭행하고 협박한다. 마스탄은 경찰, 정당과 다 연결돼 있다. 노동자들이 신고해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조사해온 현지 여성단체 우비니그의 파리다 악터 사무처장은 “마스탄을 빼고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을 얘기할 수 없다. 그들이 공장주의 사주를 받고 노동자들을 선동해 폭력적인 시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불만이 쌓여 있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조직된 시위를 벌이기 전에 우발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경찰이 들어와서 진짜 시위를 조직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잡아가는 식이다. 일종의 ‘선제적 대응’이다”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0년 10월 “산업 분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산업경찰(Industrial Police)을 창설했다. 의류공장이 밀집한 다카, 가지푸르, 나라얀간지, 치타공 등 4개 도시에 배치했다. 산업경찰은 오직 의류산업 분야를 맡는 경찰 조직이다.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과 함께 성 회장의 전용기를 타고 영원무역 베트남 공장을 다녀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샤히둘리 아짐 방글라데시의류제조수출협회(BGMEA·Bangladesh Garment Manufacturers & Exporters Association)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경찰이 충분치 않다. 고속도로만 담당하는 고속도로순찰대처럼 산업만 전담하는 경찰을 만들어달라고 협회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때론 노동자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공장을 부순다. 자산과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수출공단에 들어가면 헬멧과 방패, 곤봉으로 무장한 산업경찰을 쉽게 볼 수 있다. 샤히둘리 부회장은 “산업경찰은 경영주와 노동자 양쪽을 모두 보살핀다. 소요가 일어나면 중재자 역할을 한다. 경영진의 잘못도 산업경찰이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산업경찰은 2010년 12월 치타공 영원무역 공장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막지 못했고,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도 못했다.

‘해송’이라는 이름의 의류공장을 운영하며 방글라데시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희 사장은 “정부가 2010년 산업경찰을 만들고 장비도 보강하고 큰 집회를 못하게 한다. 시위가 일어날 기미가 보여 우리가 연락하면 산업경찰이 공장으로 출동한다. 산업경찰청장이 시위장비 구입 등을 위해 한국을 두 번인가 방문했다. 그는 지한파다. 한국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지난 3~4월 다카에서는 크리켓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1947년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크리켓이다. 대회가 있는 날 저녁은 여느 때보다 더 길이 막혔다. 렌터카가 검정 픽업트럭과 나란히 정차했다. 검은색 두건과 검은색 선글라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체구의 방글라데시 남성들과 달리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다. 사내들의 어깨에는 보통 경찰들이 메고 다니는 나무 재질의 장총이 아니라 자그마한 검정색 자동소총이 달려 있었다. 사내 가운데 한 명이 고개를 빼고 렌터카 안을 굽어봤다. 레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카메라 내려놔요. 쳐다보지도 마요.” 넉살이 좋아 쉼없이 농담을 하는 운전기사 아지물도 굳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봤다. 갈림길에서 검정 픽업트럭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 때까지 약 3분 동안 렌터카 속 세 명은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색 사내들의 공식 명칭은 ‘긴급행동대대’(Rapid Action Battalion). 영어 머리글자를 따 흔히 ‘랩’(RAB)이라고 부른다. 랩은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한다는 명분으로 2004년 창설됐다. 경찰, 군, 국경수비대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로 구성됐다.

2008년 7월26일 저녁 여든살 노파 노베라 카툰이 다카의 제니다 프레스클럽 앞에 섰다. 이곳은 방글라데시의 정당, 엔지오, 노동단체들의 단골 기자회견 장소다. 노파는 “아들이 죄를 지었다면 ‘크로스파이어’하지 말고 기소해달라”고 호소했다. 내과의사인 아들 미자눌 라흐만 투툴은 전날 랩에 잡혀갔다.

이곳 노동자와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크로스파이어’(crossfire)였다. 이상하다 싶어 일부러 사전을 찾아봤다. ‘십자포화’ 또는 ‘교차사격’. 전쟁터에서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을 뜻하는 명사다. 방글라데시에서 이 단어는 새로운 용법을 얻었다. 랩에 잡혀간 많은 사람들이 체포 며칠 뒤 총에 맞아 숨졌다. 주검에는 총상뿐 아니라 으레 시퍼런 멍자국이 있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랩은 ‘범죄자가 크로스파이어 과정에서 숨졌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체포된 범죄 용의자가 랩 요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이에 대한 랩의 대응사격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2010년 사이 이렇게 숨진 사람이 랩의 공식집계로만 622명. ‘크로스파이어’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살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가 됐다. 내과의사 미자눌은 노모의 기자회견 이튿날 ‘크로스파이어’됐다. 불법 공산주의 정당의 지도자였다는 게 그의 혐의였다.

랩은 노동자들의 시위에도 투입된다. 총격으로 여러 노동자들이 숨진 2010년 영원무역 공장 앞 시위에도 랩이 투입됐다. 영원무역 재단사 마슈(가명)는 랩에 대해 “처음에는 말로 협박한다. 안 들으면 때린다. 그래도 안 되면 공포탄을 쏜다. 그래도 안 되면 사람들한테 총을 쏜다. 무서운 존재다”라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와 앰네스티인터내셔널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랩을 ‘살인 부대’(killing squad)라고 지탄한다. (바로가기)

지난해 말,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은 랩과 군 정보국(DGIF)에 협조를 구했다.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 시위가 벌어질 경우 산업경찰이나 지역 경찰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 랩과 군 정보국이 방글라데시 최대 투자국인 한국의 기업인들이 운영하는 의류공장들을 보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랩과 군 정보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한국대사관은 한인 공장주들에게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연락하라고 안내했다.

돌이켜보면 의류산업은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본과 국가가 합작한 ‘폭력’에 기대어 성장해왔다. 대량생산 방식의 의류산업을 가능케 한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 발명가들이 면직기를 선보이면서 옷의 재료가 되는 면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기술혁신으로 생산능력을 키운 영국 자본은 기존에 비해 엄청난 양의 원재료, 즉 면화를 필요로 했다. 당시 대규모로 면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땅은 신대륙의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땅이 넓다 해도 저절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미국 남부의 드넓은 목화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올초 임금인상 시위 중 총상을 입은 캄보디아 의류노동자 프룸 피롬(22)과 누이가 프놈펜의 크메르-소비에트 친선병원 병실에 잠들어 있다. 피롬은 카나디아 공단의 한국인 투자 의류공장에서 일했다. 김명진 기자

다음은 여성들의 차례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흘러든 여성들이 주로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여성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단체행동을 꾀한 여성들의 시도는 경찰 등 국가권력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세계 여성의 날’의 뿌리인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 럿거스 광장 시위의 주축이 여성 봉제공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1만5000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조 결성의 자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11년 3월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라는 대형 봉제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비상구는 밖에서 잠겨 있었고, 9층 높이까지는 소방차의 물줄기가 닿지 않았다. 모두 146명의 노동자들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하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대부분 10대와 20대 여공들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된 이 사건은 서구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와 꼭 닮은 화재가 101년 뒤인 2012년 방글라데시 타즈린패션 공장에서 되풀이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도래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거리가 훌쩍 멀어졌다. 서구의 소비자들을 위해 전후 일본이, 뒤이어 한국이 글로벌 의류산업의 생산기지를 맡았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봉제공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1970년 11월13일 재단사 전태일이 시위 도중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목숨을 끊으며 고발한 바 있다. 여성 봉제공들에 대한 폭행이나 성추행은 상습적으로 일어났다. 군부독재 정권은 국가 최대 수출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노동쟁의가 일어난 공장에는 공장주가 고용한 깡패 또는 경찰이 즉각 투입됐다. 기업과 노동부, 정보기관이 협력해 노조 설립을 시도한 노동자들의 정보를 모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재취업을 봉쇄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멀찍이 밀려난 생산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서구 사회는 무심했다. 전태일의 후예 또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피복노조는 1981년 1월 서울시장으로부터 노조 해산 명령을 받았다. 청계피복노조는 한국의 노동 탄압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기반으로 한 노동단체인 ‘아시아 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AAFLI) 한국사무소를 점거했다. 마침 전두환이 레이건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중이었다. 청계피복노조는 방한중인 이 단체 본부장 모리스 팔라디노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곧이어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 사건으로 11명이 구속됐고, 노조는 와해됐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민주주의가 진척되자 글로벌 의류산업의 생산기지는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자 베트남,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으로 옮겨갔다. 이들 나라의 임금도 오르자 방글라데시,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갭(GAP), 에이치앤엠(H&M),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 등의 브랜드로 대변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의류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따라 잠깐 입고 버릴 값싼 옷을 생산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에 노동자들의 권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무시된다. 자본과 결탁한 제3세계 국가의 공권력은 자국의 의류 노동자들을 향해 서슴없이 총을 쏘고 있다. 지난 1월9일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영원무역 노동자 파빈 악터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보다 1주일 앞선 1월2일 캄보디아에서도 공수부대와 경찰의 발포로 최소 5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숨졌다. 민주노총, 시민단체, 공익법무법인 등으로 구성된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는 캄보디아 유혈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심지어 유엔 대표부 앞에서까지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등 비무장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점은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 수호 책임을 철저하게 방기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정부가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보다 사용자와 의류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압도적인 힘의 열세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체념한다. 지난 1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숨진 파빈 악터의 어머니 카툰은 오열하며 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운이 없어서 죽었다”고 말을 맺었다. 노동자들을 때리는 경찰을 말리다 ‘노동자 대표’로 몰려 두들겨맞아 시위의 기폭제가 된 품질관리담당 모하메드 하룬은 “회사나 경찰 누구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불만 없다. 시위 이후 우리 요구대로 회사가 임금을 올려줬다. 어쩌면 그게 사과다”라고 말했다. 총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 산탄총을 맞은 노동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보상을 요구하는 이는 없다. 머리를 다친 봉제공 쇼히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됐다. 그래서 침묵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10여년 동안 일하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마숨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데,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포기가 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통제되는 저임금 덕분에 소비자들은 값싼 옷을 입는다. 영국의 바이어와 방글라데시의 여러 공장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하는 한 에이전트는 “영국에서 담배 1갑이 7파운드(약 1만2000원)다. 그런데 티셔츠 1장이 5파운드이고, 남성 속옷 4장을 묶어서 4파운드에 판다. 모든 물가가 다 올라가는데 옷값만 내려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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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우(65)씨는 1970년대 초반 인천 부평구 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스웨터를 짜는 편직공이었다. 공장은 100% 일본계 투자 기업인 삼원섬유 소유였다. 보통 하루 13~16시간 일했고, 선적 날짜를 맞추기 위한 24시간 철야 작업도 자주 있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연장근로수당도, 휴일근로수당도 없었다.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다. 6일 일하면 1일 쉬어야 했지만, 회사는 한달에 쉬는 날을 2번으로 줄였다. 유씨는 “그조차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 쉬는 날이 많았다. 추석과 설 연휴를 빼곤 거의 연중무휴였다. 그때 결근하면 바로 잘렸다.”고 회상했다.

노조 설립은 헌법적 권리였지만, 군부 독재 정권은 외자유치를 위해 수출산업공단 내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다. 유씨가 우여곡절 끝에 공단 내 외국인투자기업 최초의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노동자들은 1973년 12월 파업을 벌였다.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부평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끊임없이 유씨를 회유하고 협박했다. 회사는 파업을 주도한 그를 끝내 해고했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유씨를 구속했다.

유씨는 당시 노동자들을 “산업노예”라고 표현했다. 그는 하루 600~700원, 월 1만5000원에서 2만원을 벌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대개 하루 300~400원을 벌었다. 유씨는 “안 먹고, 안 쓰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었다. 방값과 쌀값 등을 빼면, 버티기 힘든 수준의 임금이었다. 남자들보다 임금이 낮은 여성들은 야식으로 끼니를 때워 쌀을 아꼈다. 그 때문에라도 여성들은 철야·잔업·연장 근로를 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한국은, 지금의 방글라데시다. 의류 노동자였던 한국인들의 후예는 이제 세계 2위 의류 수출국 방글라데시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로 변신했다. 과거 일본인이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 한국인들이 방글라데시에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아래 만든 옷을 전세계로 수출해 돈을 벌고 있다.

유씨는 방글라데시 등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노동자 사망사건을 전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나도 한때 같은 노동자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뭔가 한심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가 일기도 한다.” 류이근 기자

취재 류이근 유신재 사진 이정아 김명진 영상편집 정주용 기획 및 제작 조승현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6가지 (하)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