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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3일 12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02일 14시 12분 KST

삼국지와 상상력의 가격

원래 <삼국지>는 1,700여 년 전 진나라의 관리였던 진수가 집필한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다. 그런데 1,100년 이후 나관중이라는 백수작가(?)의 출몰이 역사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촉한 정통론을 바탕으로 역사의 프레임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을 세우고 도원결의라는 드라마를 결합시킨다.

500년간 믿어온 역사보다 역사 같은 소설.

죽여주는 생각은 역사의 인식도 바꾼다. 600년 전 중국의 소금장사꾼 출신의 작가 나관중이 그랬다. 그가 찻집을 드나들며 허송세월을 하던 중에 삼국희곡(三國喜曲)을 즐겨 들으며, 이 내용을 외워서 집필한 것이 <삼국지연의>다. 한국에서 태어나 안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삼국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읽은 삼국지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팩션이다.

원래 <삼국지>는 1,700여 년 전 진나라의 관리였던 진수가 집필한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다. 진수는 촉나라의 관리였었지만 천하를 통일한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은 진나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위나라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기술했다. 다시 말해 애초의 <삼국지> 역사의 주인공은 진나라의 <사마염>이 되는 것이 맞는다는 말이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제갈량 등이 아니라.

그런데 1,100년 이후 나관중이라는 백수작가(?)의 출몰이 역사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촉한 정통론을 바탕으로 역사의 프레임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을 세우고 도원결의라는 드라마를 결합시킨다. 사실 진수의 <삼국지>는 훗날 습착지와 주희 등의 촉한 정통론에 의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나관중은 이 논쟁에 구전되던 야사를 결합하는 기발한 생각을 실천했다.

도대체 왜 삼국지가 위대한 이야기인가?

논술 세대라면 필독서로 읽었을 삼국지, 도대체 삼국지는 어떤 이유로 600년 넘게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삼국지는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280년 삼국의 통일까지를 다룬 이야기다. 100년 가까운 장대한 역사를 드라마로 각색했다. 딱딱한 정보를 부드러운 이야기로 바꾸었다. 또한 현재의 영웅 사마염이 아니라 가난한 멍석 장수이지만 황손 출신인 비운의 유비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뭐니 뭐니 해도 삼국지가 위대한 이유는 1,0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모두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삼국지 캐릭터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를 두고 그 사람의 성격을 예측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역시 관우야, 의리 있잖아. 삼국지는 조자룡이지, 그 용맹함! 아니야, 삼국지는 조조야, 그의 지략이 없으면 무의미한 이야기지. 무슨 소리! 삼국지는 제갈량이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전략도 몰라!

그렇다. 삼국지는 실존 인물이 만들고 진수가 옮기고 나관중이 각색한 이야기지만, 또한 삼국지는 읽은 사람들에 의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창조되어 왔다. 600년 넘게 수억 명의 독자들을 거치면서 삼국지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 부족한 인물정보는 상상력으로 채워졌고, 평범한 사건에는 내러티브가 입혀졌다. 한 마디로 삼국지는 수많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력이 600년간 공동으로 창조한 위대한 이야기다, 모두의 소설이다.

100년 넘게 기억되는 이야기의 원동력.

삼국지처럼 오래도록 재창조되는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많다. 중국의 서유기, 프랑스의 삼총사, 아일랜드의 드라큘라, 영국의 햄릿 등. 모두 100년 넘게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재소비되는 이야기들이다.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는 나름의 특징들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유니크한 상상력이다. 원숭이가 주인공이 되고, 무사들의 의리가 역사를 바꾸고, 피를 마시는 저주를 받은 귀족과 귀신이 된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왕자 등.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는 유니크하지만 보편적인 소재를 다룬다. 독자들이 이야기에 자신의 현실을 몰입시킬 여지를 충분하게 남겨둔다. 구름을 타고 나는 나, 왕을 지키는 의리의 기사가 된 나, 영생을 사는 나, 복수를 하는 나. 보편성이란 독자의 공감을 받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야기의 숙명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는 낯설지만 공감된다. 새로움과 익숙함이 교차되는 바로 그 지점에 100년의 기억을 만드는 힘이 숨어 있다.

한국에는 100년 넘게 기억되는 이야기가 없을까? 있다. 분명히 존재한다. 서자 출신으로 나라를 건국한 홍길동의 이야기, 최초의 판타지라 일컫는 금오신화의 이야기, 꿈속에서 8선녀와 사랑에 빠지는 구운몽의 이야기 등. 역사에도 좋은 소재는 많다.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세운 주몽과 박혁거세의 이야기, 지금은 전설이 된 게임 바람의 나라가 다룬 대무신왕 무휼의 사랑 이야기 등. 이렇게 훌륭한 소재들을 우리는 제대로 상상하지 못 했다. 왜일까?

제발 상상력에 제대로 가격을 매기자, 응?!

생각에 페이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표라고 4개월 전에 말씀드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다. 집, 옷, 음식, 명품, 자동차 등. 모두 큰 가치가 있는 것들임에 분명하다. 이들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된다. 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우정, 사랑, 생각, 진심 등. 공기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은행 잔고도 디지털 코드일 뿐이다. 이야기도 그렇다. 생각의 값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마친다.

어느 날, 자동차의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가 경영하는 공장의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 공장의 가동이 중지되었지만 공장의 수리공들은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 했다. 결국 헨리 포드는 발전기를 제작한 찰리 스타인메츠를 초빙했다. 스타인메츠가 몇 시간 동안 모터를 이곳저곳 두드리고 스위치를 올리자 발전기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며칠 후, 도착한 청구서에는 무려 1만 달러가 적혀있었다. 놀란 헨리 포드는 편지를 보냈다. 이 청구서의 금액은 모터를 두들기며 몇 시간 일한 것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다시 며칠 후, 스타인메츠는 다시 청구서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터를 두들기며 일한 공임 10달러,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알아내는 데 들어간 경험 9,990달러, 합계 10,000달러. 결국 헨리 포드는 머리를 끄덕이며 1만 달러를 지불했다.

본 원고는 마케팅 전문 매거진 월간 '아이엠'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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