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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4일 06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24일 06시 33분 KST

'뜨는 동네' 서촌, 건물주들만 신났다

[월요리포트] 도심 속 ‘뜨는 동네’의 역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통인시장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작은 전통시장이다 보니 골목길의 폭이 2m 정도밖에 되지 않아 6~7명의 무리만 만나도 가던 길을 멈춰야만 했다. 사람들은 이곳의 명물인 기름 떡볶이 가게 앞에 모여 길을 막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던 한 상인이 혀를 끌끌 찼다.

“주말에 오는 사람들은 여길 놀러온 거니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계속 있어. 그걸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더라고. 즉석 먹거리 파는 곳만 좀 손님이 있는데, 건물 주인들만 좋아졌지.”

시민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겨레

통인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하는 ㄱ(59·여)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씩 내던 임대료가 지난해 9월부터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그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오른 것인데, 실제 매출은 오히려 조금 줄었다”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ㄴ(73·여)씨는 “최근 건물주가 바뀌면서 월세가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랐지만, 매출은 이전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된다”고 전했다. “월세를 곱배기로 올려 놓고 조만간 또 올린다고 하더라고. 시장 버려놨다고 다들 그런다니까. 골이 아파. 가게를 안 할 수도 없고….”

이곳에 있는 정육점 역시 10~20%가량 매출이 줄었다고 했다. 즉석 먹거리를 파는 곳에만 손님이 몰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양은냄비를 팔던 곳은 월세가 오르면서 분식집으로 바뀌었다. 이곳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었다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70만원 수준으로 훌쩍 뛰었다.

이 작은 시장 골목에 떡볶이를 파는 곳만 5곳이다. 먹자골목처럼 변하는 이곳에 주민들은 발길을 끊고 있다. 통인동에서 40년 살았다는 김성준(49)씨는 “시장에 생선이나 야채 같은 거 사러 가는데, 그런 건 없어지고 먹자골목처럼 바뀌니까 안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아무개(55·여)씨는 “주말엔 사람들이 거치적거려 통인시장에 안 간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의 이런 상황은 서촌 지역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네에서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해지고 있다. 김성준씨는 “통인시장이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사람이 너무 많아 뒷골목으로 다닌다”고 말했다. 한철구(45)씨는 지난 7월 10년 동안 살았던 체부동 집을 팔고 서촌의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 “옆의 옆 집에 2010년부터 찜닭가게가 생겼는데, 사람들이 식사를 하다 나와 우리 집 앞에서 담배를 피워요. 담벼락에다 토하고, 오줌싸고, 시끄럽게 떠들고. 관광버스가 골목길에 들어와서 매연도 걱정이고 아이들 다칠까봐 걱정도 되고….”

한씨가 판 한옥집은 한 달 만에 술집으로 바뀌었다. 찜닭집을 시작으로 한씨가 살던 골목이 상업화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반건축물대장을 분석한 결과, 한씨의 집이 있던 골목길(자하문로1라길) 주변 집 8곳 중 4곳이 최근 소유권이 바뀌었다. 새 주인이 온 4곳 중 3곳은 음식점과 술집,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고, 1곳은 공사 중이다.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옥인길 주변에 사는 김아무개(52)씨는 음식점과 술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음식 냄새가 너무 많이 올라와요. 그게 아주 역겨워서 힘들어요. 특히 주말엔 집에서 좀 쉬어야 하는데…. 술집 때문에 밤에도 시끄럽고….” 지난 8월 문을 연 술집 건물 3층에 살던 조아무개씨는 이런 불편 때문에 “곧 전세계약이 끝나면 이사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촌의 골목길에 있던 쌀집과 전기용품점, 정육점, 슈퍼마켓 등이 카페와 커피숍으로 획일화되는 현상 역시 통인시장이 먹자골목으로 변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배안용 청운효자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주민들이 슬리퍼 신고 나가, 동네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이웃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구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긴 주민들끼리 정말 살갑게 지내는 곳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아이들이 집 앞에서 ‘누구야~ 놀자’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주민들 다 떠나면 그냥 박제화되는 거지.” 서촌이 좋아서 이곳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는 박아무개씨는 “애들 20살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여기가 애들 고향이 되는데”라며 “임대료가 오를 것 같아서 너무 걱정”이라고 말했다.

광고 관련 일을 한다는 김아무개(45)씨는 서촌의 고즈넉한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옛날 골목 분위기를 찾아 이곳에 왔거든요. 이젠 지붕만 한옥처럼 보이지, 너무 빨리 변했어요. 삼청동에서 6년 동안 살다가 거기가 박살나서 여기로 온 건데, 여긴 3년 만에 박살이 났어요.” 그는 조만간 이사갈 예정이다.

김한울 서촌 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은 “서촌의 주거 기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되면 관광객 등 외부적 요인에만 기대게 되고, 밤에는 공동화되는 등 도시 자체의 경쟁력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상업용 변경 땐 주민 동의 ‘불문율’

도심 속 ‘뜨는 동네’ 의 역설

“용도 변경 최대한 규제 필요

역사도시로 정체성 확립해야”

서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까.

23일 전문가의 분석과 서촌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우선 외부인이 진입해 건축물을 카페나 음식점으로 용도변경 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런 점에 주목한다. 외부인이 주거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들어와 주거지를 상업화하는 결과를 낳는 용도변경은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재산권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는 그런 규제가 있다. 조경설계업체인 그룹한의 최이규 뉴욕지소장은 “뉴욕에서는 용도변경을 하려면 지역 주민들의 위원회인 ‘커뮤니티 보드’의 논의를 거쳐야만 한다. 이들의 결정은 법적으로 강제성이 없긴 하지만, 시정부에서는 이들의 결정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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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체부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

다만 우리나라는 지역사회의 공동체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은 “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지역의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대처할 수 있다”며 “지역에 시민사회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법으로 용도변경을 규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계 최대의 갤러리 지구로 불리는 뉴욕 맨해튼 첼시 지구의 경우 1990년대 말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영세 갤러리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지만, 갤러리로 쓰이던 옛 공장 건물을 상업용으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한 지자체의 규제 덕에 지역의 정체성이 유지됐다. 서울연구원 맹다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지구단위계획 등을 통해 이런 식의 규제가 가능하긴 하다. 다만 이런 강한 규제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남는다”고 말했다.

서촌의 도시재생 방향과 관련해 서울시의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나중에 규제를 풀어주는 한이 있어도 우선 서촌에서의 용도변경을 최대한 규제해 (도시가 망가지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둔 뒤, 이곳의 발전방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서촌이란 공간이 갖는 문화적 가치를 가장 잘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을 끌어들이는 등의 정책을 통해 이곳이 갖는 ‘역사도시’로서의 공간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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