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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4일 09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4일 14시 12분 KST

'신상털기'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 딥 스로트와 닉슨 그리고 밥 우드워드

재기와 유머 넘치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트윗들이 뒤늦게 페이스북으로 전파되어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분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네티즌에 의하여 그분의 신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나중에는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속된 말로 그분의 신상이 탈탈 털리는 일까지 발생하여 결국 그분은 모든 SNS를 그만두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일들을 언론 수용자로서 겪다 보니, 미국에서 있었던, 내부고발과 취재원 보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거짓을 일삼는 대통령의 하야까지 가져왔다가 30여년 만에 충격적으로 내부 고발자의 신상이 밝혀졌던 워터게이트 사건 썰이나 풀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SSOCIATED PRESS

재기와 유머 넘치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트윗들이 뒤늦게 페이스북으로 전파되어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 분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네티즌에 의하여 그분의 신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나중에는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속된 말로 그분의 신상이 탈탈 털리는 일까지 발생하여 결국 그분은 모든 SNS를 그만두는 일까지 벌어졌다(이미 트위터를 포함한 모든 SNS를 그만둔 분이고 그만두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트윗들에서 더 이상 당신의 계정이 거론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뜻을 분명히 밝히신 것 같아 굳이 그분의 계정이 무엇이었는지 재론하지 않는다. 아울러 당사자의 뜻과는 상관 없거나 당사자의 의사에 정면으로 반하여 이른바 신상털기에 나섰던 일부 네티즌이나 일부 언론의 행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그분께 누가 될 것 같아 새삼 다시 인용하지 않겠다).

지난 여름에는 보궐선거에 나섰던 새정치연합의 모 후보 따님의 이른바 랜선효녀님 스토리가 자칭 진보적인 언론 비평을 한다는 어느 매체 '기자'의 훔쳐보기(숙녀의 이름과 나이를 캐낸 이 분의 행태를 달리 설명할 말이 있나?) 탓에 아주 이상하게 꼬여 버렸던 일도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또 다른 이른바 진보적 매체 비평 매체에서 자신에게 들어 온 업계 내부 고발 제보가 어느 업체에서 들어 온 것인지를 고스란히 공개해서 도대체 취재원 보호에 대하여 특히나 소위 진보를 앞세운 매체들이 그 개념이라도 제대로 잡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일조차 벌어졌었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이런 일들을 언론 수용자로서 겪다 보니, 미국에서 있었던, 내부고발과 취재원 보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거짓을 일삼는 대통령의 하야까지 가져왔다가 30여년 만에 충격적으로 내부 고발자의 신상이 밝혀졌던 워터 게이트 사건 썰이나 풀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 글은 내 트위터계정에 위의 사건 중 랜선효녀님 신상털기 사건이 터졌을 때 썼던 것인데 이번에 블로그용으로 다시 정리하여 보았다.

이제는 그냥 '게이트'란 이름으로 정치 스캔들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워터 게이트는 원래 호텔 이름이다. 이 호텔에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무렵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우리로 치면 중앙당쯤 될까?)가 선거 캠프를 차리고 있었다. 여기에 밤중에 침입하려고 했던 '절도' 사건이 일어났고 용의자들이 체포되어 말하자면 즉심 같은 곳에 넘겨진다. 그런데 판사 앞에서 자신의 신상;을 얘기 하면서 이 워터게이트호텔 침입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직업을 '반공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아마도 우리 언론사 같으면 경찰서 출입을 하던 말단 기자였을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 밥 우드워드는 무심히 법정에서 이들이 재판 받는 것을 취재하다가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뒤에 뭔가 정치적 배후 세력이 있겠다 싶어 밥 우드워드는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캐기 시작한다. 그는 칼 번스타인이란 동료의 도움도 받았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편집국은 물론 사주(社主)까지 포함해 전사적(全社的)으로 이들의 취재를 도왔다. 취재는 자연히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몰래 침입해서 정보를 캐낼 정치적 동기가 있어 보였던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 재선운동 캠프쪽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닉슨이 재선운동 과정에서 저질렀던 비리와 불법 그리고 무리수들이 부각되기 시작되었다.

그러나 암만 그래도 현직 대통령을 타겟으로 한 취재가 쉬웠겠나. 그런데 취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나타나 방향을 알려준 이가 익명의 내부 고발자인 딥 스로트(Deep Throat)이다. 그저 닉슨 행정부의 고위직으로만 알려졌던 이 내부 고발자의 이런 닉네임은 당시 유행한 성인 영화의 제목이었다고 한다(쿨럭;). 우리로서야 흥미로운 지점은 1972년 미국 대선이 재작년 모국(某國) 대선처럼 박빙도 아니었고 오히려 닉슨이 미국 50개주 중에서 상대방 후보 조지 맥거번의 고향과 매사추세츠 사회주의공화국(Commonwealth of Massachusetts 응?)을 제외한 48개주에서 압승하였던 선거였음에도, 이렇게 큰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도 불법이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물고 늘어졌던 점이겠다. 결국 닉슨은 자신의 백악관 내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들이 있고 거기 불법적 선거 개입등을 논의한 것이 담겼으리라는 추측에 미국 법원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국민의 알 권리는 이럴 때 나오는 겁니다, 미디어 오늘, 미디어스, 국민일보 기자님들!!!) 이를 공개하라고 명령하고, 미 의회 법사위원회에서 탄핵결의안이 통과되는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임한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 닉슨이 사임하고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나서도 밥 우드워드는 자신의 취재에 결정적 도움을 줬던 닉슨 행정부 내의 내부고발자 딥 스로트의 신상을 밝히지 않는다. 밥 우드워드는 제보자가 원하지 않아서라는 취지로 답했고 그 후 30년 이상(!) 숱한 매체들의 추측과 캐묻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딥 스로트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권을 무너뜨린 이런 초대형 특종을 한 직후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회사인 워싱턴 포스트지에 요청해 장기 휴가를 받아 둘이서 각잡고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기를 책으로 썼다. 밥 우드워드는 이때 책을 써서 정리하지 않았으면 영영 정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니 사회생활 초년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도 참으로 냉정하고 무서우리만치 자기 관리를 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것이다.)

아울러 근 30년 가까이 딥 스로트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자 밥 우드워드에겐 슬금슬금 제보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 기자한테 이야기하면 안전하겠구나, 내가 부당하게 여긴 사실들을 이 사람한테 털어 놓으면 공적인 문제제기도 되고 내 신상은 철저히 보호해주겠구나 그런 믿음을 밥 우드워드는 주게 된 것이라고 할까. 밥 우드워드는 그래서 그 후 묵직한 특종들을 여럿 낸다. 베일 속에 감추어졌던 미 연방대법원의 속사정이라든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의 삽질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딥 스로트의 신상이 배너티 페어에 의해 공개될 상황에 이르게 되자 드디어 30여년 만에 밥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 신상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충격적이게도 딥 스로트는 닉슨 행정부 때 FBI 부국장을 지낸 마크 펠트였다ㄷㄷㄷ 이게 참 놀라왔던 것이 48년간 FBI 국장을 지냈던 에드거 후버 후임 자리를 마크 펠트는 노리고 있었는데 닉슨이 자기 측근을 FBI 국장에 임명하니 시쳇말로 빡쳐서 공익제보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양반이 무슨 대단한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분이 아니라 데모꾼들은 색출해서 깜방 처넣어야 한다는-_-; 지극히 보수적 사고방식을 가졌던 분이었던 것. 그런 공권력 남용이 문제가 되어 심지어 이 딥 스로트 즉 마크 펠트는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다. 사실 밥 우드워드가 좀 야속한 게 그쯤 되면 이 양반이 실은 딥 스로트이다라고 털어 놓아 동정여론이라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을 터인데 그때도 밥 우드워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때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니 자기 부하였던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로 실은 자기 등 뒤에서 칼을 찌른 것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닉슨은 대통령 사임 후에 칩거하다가 옛 부하 마크 펠트가 곤경에 처한 걸 알게 되자 그를 위해 법정에서 증언을 해주기로 한다ㅜㅗㅜ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를 구명하기 위해, "이 사람은 비록 공권력을 남용했다며 형사재판을 받고 있지만 조국을 위해 봉사한 사람이니 선처를 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실은 그 자가 무늬만 부하고 자신을 파멸시킬 정보들을 기자에게 준 이란 건 전혀 모른 채로;; 그리고 그가 그런 내부고발을 한 것은 인사불만이었고 그것만 문제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재선까지 되고도 그렇게 불명예스럽게 퇴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완전히, 깜깜하게 모른 채로;

딥 스로트, 마크 펠트는 이렇게 처벌받았는데 그 다음에도 닉슨은 마크 펠트의 구명을 위해 노력한다. 다시 공화당이 레이건 때 정권을 잡자 마크 펠트는 닉슨의 호소도 영향을 끼쳐서 마침내 사면복권되는데 닉슨은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며 와인과 카드를 보내어 축하-_-; 닉슨은 끝내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다ㅠㅠ

한편 이제 딥 스로트의 신상이 털리게 된 마당이 되자 밥 우드워드는 30년간 꾹꾹 눌러온 *레기 본능을 폭발시키는데(뭐래니?) 실은 그가 공개할 무렵에 딥 스로트/마크 펠트는 고령이라 정신이 온전치 않았는데도 밥 우드워드는 마크 펠트의 가족들을 찾아가, 자신이 밥 우드워드라고, 당신들 가족인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마크 펠트의 지인이란 부분적 진실만 말하고서는. 마크 펠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그가 왜 닉슨을 배신하고 워터 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가 되었는지에 관한 보충 취재를 근 30년만에 시작;;

솔까말 그 장면을 밥 우드워드가 쓴 딥 스로트 신상공개에 관한 책 [The Secret Man]에서 읽다 진심 쌍욕이 터져 나왔었다. 기자라는 당신들을 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싶었음. 더군다나 마크 펠트는 밥 우드워드의 멘토였다. 막 군복무를 마치고 신문사에 취직한 밥 우드워드는 군복무시 일종의 문서수발을 갔다가 마크 펠트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의 주요 행로에서 마크 펠트의 조언을 받았었다. 그리고 워터 게이트 사건 초기에 밥 우드워드는 취재가 벽에 부딪치자 멘토 마크 펠트를 떠올렸고 그를 컨택했는데 마침 승진 좌절이란 개인적 감정이랑 겹쳐 마크 펠트는 폭로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기자 경력에서 제일 빛나는 부분이었고 향후 경력에서도 밑거름이 되었던 워터 게이트 사건의 제보자 딥 스로트의 신상이 까발려지고 딴 매체가 먼저 보도해 낙종할 위기에 처하자 30년간 취재원을 보호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참 언론인 밥 우드워드도, 아니 파릇파릇한 사회 초년병으로서 인생과 사회 대선배의 말씀을 귀를 쫑긋해 가면서 들었던 멘티 밥 우드워드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다만 낙종을 하지 않기 위한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치매에 빠진 노인을 닦달하는 밥 우드워드란 황색 언론인이 있었을 뿐이었다.

모르겠다, 스스로의 치부조차 이렇게 그대로 드러내고 반면에 부하를 끝까지 감쌌던 닉슨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스스로 기록에 남긴 것이 밥 우드워드의 한가닥 양심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리얼리즘의 승리'란 것일까? 발자크같이 암만 반동적 사상을 가진 작가라도 그 작품에선 그가 평생 동경해마지 않던 귀족들의 몰락과 그가 혐오해마지 않던 부르주아들의 부상을 그리게 된다고 프리트리히 엥겔스가 말했다고 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 마크 펠트(왼쪽)가 1981년 닉슨 정부 시절 불법행위에 대한 사면을 받은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