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메인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한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마지막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AIDS)에 걸렸음을 세상에 알리고, 바로 다음 날 부고 소식을 전했다. 1981년 공식적으로 에이즈 환자가 의료계에 보고되면서 병증을 고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그가 사망한 1991년까지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에이즈는 의료계의 발전으로 매일 알약, 한 알 씩만 복용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1985년 보고된 우리나라 1호 HIV 감염인 또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즉, 지금이었더라면 프레디가 여전히 음악 생활을 하며 우리를 감동시킬 주옥같은 노래들을 만들어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에이즈와 죽음으로 전세계 신문을 도배했던 날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의료계가 바이러스로부터 승기를 얻어내고 환자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무수한 날 동안 우리가 에이즈를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코로나19로 달라진 ‘감염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겪었던 2020년 대구, 그때 모두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을 기억하는가? 서울에서만 하루 확진자가 1천 명 이상씩 나오는 2021년 12월 요즘과 비교하자면, 감염 확률이 훨씬 높아졌음에도 이전보다 자유롭게 활동한다. 확진자의 동선도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건 정보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약 20개월 사이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와 특징이 드러났고, 국민의 80%가 백신을 접종하고 치료제 개발로 희망도 생겨났다. 감염성 질병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보와 치료제가 핵심 키워드라는 점을 지난 2년간 몸소 깨달은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HIV/AIDS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닐까?
지난 9월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20년 HIV/AIDS 신규 감염 건수가 전년 대비 1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결과를 긍정의 신호가 아닌 HIV 검사 중단으로 일한 일시적 현상으로 읽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배포한 ‘최근 10년간 전국 보건소 HIV 선별검사 현황’(2011~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선별 검사 수는 17만 8653건으로 전년 대비 59.4% 감소했다. 2011년 조사 이래로 9년간 연평균 HIV 선별 검사 수는 44만 3609건이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HIV 익명검사를 실시해온 전국의 보건소가 코로나19 검사로 인해 잠정적으로 검사를 중단했던 점이 감염수 급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염전문과가 있는 대학병원의 문턱이 높아진 점도 한몫했다. 방문 목적을 밝혀야 하는 등의 익명성 보장이 불투명해진데다가 감염내과가 코로나19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기에 방문도 어려웠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영향도 있겠으나 암암리에 바이러스가 퍼져 감염인들이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는 HIV자가진단키트인 오라퀵 사용 후 포털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라온 무수한 글 속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으나 검사자들은 글을 올려 확실하게 음성임을 확인하려했다. HIV가 내포한 두려움과 압박감의 크기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발병해서 죽는 에이즈 감염인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수치심과 죄책감,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나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2020 HIV및 AIDS에 대한 HIV 감염인 인식조사보고’ 결과에 따르면 HIV 감염인 중 대다수는 죄책감, 수치심을 느끼고 특히 자기탓을 하며,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 이전에도 HIV/AIDS는 공포의 질병이었고, 본인 또한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질병을 얻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HIV 감염인은 세금도둑’이라는 혐오 표현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서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들다’는 답변이 23.5%가 나왔으며, 더욱 가슴 아픈 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질문에 72%가 그렇다고 대답한 점이다. 이는 HIV/AIDS에 대한 혐오가 감염인 자신에게도 내면화되었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또한, ‘HIV에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주위에서 듣는 AIDS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라는 응답에는 전체의 94.2%가 그렇다고 답했다. HIV 감염사실보다 주위의 시선이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전히 HIV/AIDS는 사회적 질병이라는 뜻이 된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HIV 감염인보다 40배 많다. 호흡기로 익명의 사람에게 마구 전파되는 코로나19에 비해 HIV는 감염 방식이 폐쇄적이다. 2020년 HIV 신규 감염인의 99.7%가 성접촉에 의해서 발생했다. 밥을 먹거나 수영장 혹은 목욕탕 등 일상 생활에서 걸릴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HIV의 감염 경로, 예방법을 모른채 무작정 회피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테다. 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생활시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이 질병에 대해 어째서 호흡기로 전파되는 코로나 19 보다 더 큰 혐오를 갖게 되는 것일까? HIV를 예방하고 싶다면, 마스크를 쓰듯 콘돔을 사용한 안전한 성관계로 본인을 지켜야 한다. 또한 감염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HIV/AIDS를 양지로 이끌어낼 필요성이 있다. 코로나19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빠른 진단과 치료만이 전파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