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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3일 09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13일 09시 34분 KST

'한겨레' 건축전문기자, 구본준 별세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기자 구본준입니다.’

<한겨레> 구본준 기자(46)는 블로그(blog.hani.co.kr/bonbon, 트위터 @goobonci)나 책의 자기소개란에 늘 이 말을 적었다. ‘땅콩집을 지은 건축전문기자’로 유명했지만 사실 그는 만화, 출판, 가구, 음악, 여행 등 훨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글을 때론 전문성 있게, 때로는 가볍고 재미있게 적어 올리는 그의 블로그와 트위터는 늘 많은 친구와 이웃들로 북적였다. 신문기자로서는 드물게 독자와 전문가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기자였다.

12일 오후 멀리 이탈리아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하는 ‘건축문화재 보존과 복원 과정’이라는 단기 교육과정에 참여해 마지막 이탈리아 현지 취재 일정을 거의 마친 참이었다. 일행과 밤까지 어울리고 호텔 방으로 돌아간 그는 아침이 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현지 의사는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는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애도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의 생전 관심의 폭 만큼이나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각계각층이다.

만화가 강풀씨는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이라는 글로 그를 추도했다. 육아 멘토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서천석씨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뒤늦게 만난 벗, 한겨레신문 구본준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 삶이 뭔지 알고 있던 사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 따뜻한 자유주의자. 얼마 전에도 웃으며 통화했던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라며 고인을 기억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건축을 사랑했던 사람. 그래서 동네 건축가를 꿈 꿨던 사람. 시사회에서 만나면 어깨를 으쓱하던. 정말일까. 그와 함께 일했던 전·현직 한겨레 기자들은 얼마나 상심이 클까.. 구본준 기자의 죽음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며 안타까워 했다.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씨도 “구본준 기자님 소식을 이제 접했다. 베니스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버스 안에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기자님은 한 달 반 전에 사무실에 오셔 나를 인터뷰 해주셨다. 무슨 질문을 들었는지 아득해진다”라며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했다. 영화배우 김의성씨는 “구본준 기자가 돌아가시다니...충격이 크다”는 글을 남겼다.

블로그와 책만으로 그를 접했던 많은 독자들도 그의 별세를 애도했다. 한 누리꾼은 “하고 싶으셨던 일도, 하셔야 할 일도 많았던 분. 저에게 트위터로, 블로그로, 책으로, 기사로 많은 것을 알게 느끼게 해주셨드랬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너무 늦게 보내드립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구본준 기자는 1995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등을 거치며 기동취재팀장, 기획취재팀장, 대중문화팀장 등을 두루 맡았다. 스스로 “1년에 두번씩 인사 날 때마다 내 이름이 안 붙은 적 없다”며 웃기도 했다. (스스로 늘 농담했듯) 대학 전공인 중문학을 빼고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기자였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문화’였다. 그는 문화 전문기자의 길을 걷는 데 대한 자부심이 늘 넘쳤다.

그는 대다수 신문기자들이 종이신문에만 코박고 있던 시절, 블로그를 만들고 책을 쓰면서 대중들과 교감하려고 애써왔다. 전문성을 더 쌓겠다며 국내 연수에 들어간 올해도 부지런히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SNS에 넘쳐나는 그에 대한 기억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는 <한국의 글쟁이들>,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 <서른살 직장인 책 읽기를 배우다>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건축가 이현욱씨와 함께 두 집이 마당을 공유하는 ‘땅콩집’을 지으며 <두 남자의 집 짓기>라는 책을 써 큰 관심을 모았다.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며 각종 강연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유족들은 13일 한겨레신문와 언론재단 관계자 등과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했으며 현지 절차가 마무리되는대로 서울로 고인을 모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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