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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2일 07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12일 14시 12분 KST

염갈량의 눈물

삼국지를 보면 제갈량이 숙적 사마중달을 기망하고 유인해 호로곡에 가두는 대목이 나온다. 화약이 가득한 호로곡에 갇힌 사마중달은 죽는 길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폭우가 쏟아져 화약에 붙은 불을 껐고 사마중달은 살아남는다. 염갈량(염경엽)은 사마중일(류중일)을 호로곡에 완벽히 가뒀고 사마중일에게 희망은 없었다. 그 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OSEN

거두절미하고 묻자. 넥센 히어로즈가 우승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당분간은 어려울 듯 싶다. 올해가 넥센이 우승할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올해 넥센은 MVP후보를 네 명 배출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다.

더구나 그 네 명의 포지션이 선발투수(벤 헤켄), 4번 타자(박병호), 유격수(강정호), 리드오프(서건창)인데, 이 포지션들은 야구의 중추를 이루는 포지션이다. 이른바 빅4가 올 페넌트레이스에서 이룬 성취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벤 헤켄은 역대 최고로 극심한 투저타고 시즌에 20승 투수가 됐고, 4번 타자 박병호는 52홈런을 기록함과 동시에 타점왕에 올랐다.

유격수 강정호의 기록은 눈을 의심할 정도다. 강정호의 정규 시즌 기록은 타율 0.356, 40홈런, 117타점, 103득점인데, 이 기록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3할-40홈런-100타점-100득점 기록일 뿐더러 유격수 역대 최고 공격시즌에 해당한다. 특히 강정호는 풀타임 유격수 가운데 역대 최소 실책인 9개의 범실만 저질렀다. 리드오프 서건창의 활약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건창은 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저 위대한 이종범조차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다.

4년 연속 통합우승에 도전한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전문가들이 넥센의 근소한 우세를 점쳤던 건 넥센 빅4가 이룬 성취가 하나 같이 역대급인데다 넥센의 공격력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넥센이 삼성에 확연한 열세를 보인 부문은 선발투수였다. 오죽하면 염갈량이라 불린 엽경엽 감독이 3인 로테이션(벤 헤켄, 헨리 소사, 오재영)으로 한국시리즈에 임했겠는가?

넥센 히어로즈는 잘 싸웠다. 염려했던 선발투수들은 호투에 호투를 거듭했다. 불펜도 삼성에 밀리지 않았다. 타선이 정규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승리할 수 있을 정도의 점수는 뽑았다. 삼성의 전력도 예전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넥센 히어로즈는 한국시리즈에서 최강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승리는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강정호가 두 차례나 저지른 클러치 에러가 승리를 거머쥔 넥센의 손아귀 힘을 뺐다. 넥센은 각각 1 : 0으로 이길 수 있었던 3차전과 5차전을 강정호의 클러치 에러 이후 1 : 3, 1 : 2로 패했다. 그것도 경기 막판에. 어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은 싸움이라기 보다는 학살에 가까웠다. 기실 올 한국시리즈는 5차전에서 넥센이 삼성에 9회말 2사 후 끝내기 패배를 당하면서 끝난 셈이다.

넥센의 빅 4가 올해 거둔 성적은 커리어 하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단 넥센의 빅4만이 아니라 넥센 야수 대부분이 그렇다. 선발이나 불펜이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기도 어려워보인다. 더구나 이들이 포스트시즌에서 올해 같은 호투를 할 가능성도 적다.

결국 넥센 히어로즈는 전력이 최강이었던데다 포스트시즌 내내 상대편보다 나은 투타밸런스를 유지했던 올해가 우승할 수 있었던 최적의, 당분간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해였던 것이다. 염경엽 감독이 흘린 통한의 눈물은 그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삼국지를 보면 제갈량이 숙적 사마중달을 기망하고 유인해 호로곡에 가두는 대목이 나온다. 화약이 가득한 호로곡에 갇힌 사마중달은 죽는 길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폭우가 쏟아져 화약에 붙은 불을 껐고 사마중달은 살아남는다. 염갈량(염경엽)은 사마중일(류중일)을 호로곡에 완벽히 가뒀고 사마중일에게 희망은 없었다. 그 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강정호의 클러치 에러가 사마중일을 살린 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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