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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날 버렸다" 故 이모 공군 중사가 성추행 피해 다음날, 상사와 면담 후 남긴 통탄스러운 메모 내용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려는 상관들의 대응에 절망했다.

  • 이소윤
  • 입력 2021.06.27 11:59
  • 수정 2021.06.27 12:00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1.6.11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1.6.11 ⓒ뉴스1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에 내몰렸던 이아무개 공군 중사가 사건 발생 이튿날부터 직속 상관들의 은폐 시도에 절망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사가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사건 직후부터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려는 상관들의 대응에 극단적 선택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모아 보면, 국방부 검찰단은 25일 열린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 4차회의에서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다음날인 3월3일 제20전투비행단 직속상관인 노아무개 상사와 면담 직후 자신의 심경을 남긴 휴대전화 메모를 공개했다. 이 메모엔 “조직이 날 버렸다. 내가 왜 가해자가 되는지 모르겠다. 더는 살 이유가 없다. 먼저 떠나게 돼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사는 이어 같은 날 저녁 노아무개 준위와 식사 자리에서 또 한번 ‘사건을 무마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노 준위도 노 상사와 똑같다”는 말로 큰 실망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2021.6.8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2021.6.8 ⓒ뉴스1

국방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수사심의위에서 나온 내용에 대한 공식 확인은 불가능하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그 안에서만 다뤄진 얘기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이날 심의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음을 간접 시인했다. 또 다른 국방부 당국자도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한 위원이 언론에 관련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안다. 국방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중사의 유족들은 제20비행단의 전직 상관들이 성추행 피해를 문제 삼으면 “함께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노 상사), “살면서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일”(노 준위)이라는 말로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공개된 메모와 유족들의 주장을 묶어보면, 이 중사는 특히 “함께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며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려는 노 상사의 말에 “내가 왜 가해자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큰 괴로움을 느낀 것으로 확인된다. 또 그동안엔 이 중사가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일이 흐른 4월15일 성고충 전문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건 직후부터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만큼 큰 충격과 실망감을 느낀 정황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방부는 26일 전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제4차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노 준위에 대해선 군인등강제추행죄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후 특가법) 상 보복협박죄 등으로 구속 기소, 노 상사에 대해선 특가법 상 면담강요죄 등으로 구속 기소할 것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수사심의위는 또 노 상사의 일부 혐의에 대해선 특가법 상 보복협박죄를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국방부는 “이를 존중해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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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국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