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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12일 17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6월 12일 17시 04분 KST

20년 만에 나타난 故구하라 친모에 재산 40% 분할 : 시대 뒤떨어진 상속법이 논란이다 (+전문가 대안)

재산 기여도 전혀 없어도 최소한의 몫 정해 놓는 유류분이 분쟁 중심이다

한겨레
1인가구가 늘어나고 혈연보다 이웃·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며 전통적 가족 관계가 변하고 있지만 법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상속 분쟁이 느는 추세다. 상속 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모습. 한겨레 자료

 

ㄱ씨는 1977년 재혼했다. 당시 남편에겐 전처와 낳은 자녀 3명이 있었다. 임신이 어려웠던 ㄱ씨는 그들을 친자식처럼 키우며 30년을 살았다. 남편은 2007년 사망하면서 살던 빌라를 아내 ㄱ씨에게 증여했다. 아버지 사망 뒤에도 3남매는 어머니와 가까이 지냈다. ㄱ씨는 2017년 80살에 사망했는데, 3남매에게 빌라를 증여하기로 각서를 썼다.


재판상 이혼 줄지만, 상속은 꾸준히 늘어

그러나 3남매는 이 빌라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ㄱ씨의 상속권자라며 ㄴ씨가 나타난 것이다. 재혼하기 전 전남편이 데려온 ‘업둥이’인 ㄴ씨를 친자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ㄱ씨는 전남편과 헤어진 뒤 ㄴ씨와 교류가 전혀 없었다. 친자 관계와 다름없는 3남매는 법적으론 ‘인척’에 불과하고 법적으로 친자인 ㄴ씨가 ㄱ씨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

2019년 ㄱ씨 친언니의 딸(조카)이 나서서 ㄴ씨를 상대로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ㄱ씨 자매들의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고, ㄴ씨는 모계 혈통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ㄱ씨 본인이 없는 이상 ㄴ씨가 친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다며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남매는 ㄱ씨의 증여 각서를 토대로 ㄴ씨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냈다. 다행히 증여 각서의 효력이 인정됐다. 이번엔 ㄴ씨가 유류분(상속재산 가운데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반드시 남겨둬야 할 부분)을 주장했다. ㄴ씨의 법적 유류분은 상속재산의 절반(2분의 1)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화해권고 결정으로 3남매와 ㄴ씨가 빌라 지분의 절반씩 나눠가졌다.

상속받을 ‘자격’이란 무엇인가. 앞선 사례처럼 사망한 사람과 생전에 특별한 관계로 지냈어도 상속인이 있으면 상속받을 수 없고, 연락 한 번 안 하고 지내며 남보다 못한 사이라도 상속인이 될 수 있다. 법률이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혈연관계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상속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혈연보다 이웃·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며 전통적 가족관계가 변하고 있지만, 법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상속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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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비송사건 접수 건수 추이


대법원의 ‘사법연감 2020’ 통계를 살펴보면 상속 사건은 2010년 3만301건에서 2019년 4만3799건, 유언 사건은 2010년 224건에서 2019년 323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그림 참조). 반면 재판상 이혼 소송은 2010년 4만5351건에서 2019년 3만5228건으로 크게 줄었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과거에는 이혼 사건과 상속 사건의 비중이 8 대 2였다면, 지금은 비슷한 비중”이라며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고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 했다.

 

1977년 여성 상속 보호하려 만든 ‘유류분’

현행 민법에서는 상속 순위를 ‘자녀(직계비속)와 배우자-부모(직계존속)-형제자매-4촌 이내의 혈족’ 순으로 규정한다.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이 여러 명일 때는 균등하게 분배해야 하지만 ‘특별한 기여’를 한 상속인이 있다면 자신에게 일정 비율의 재산을 더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다면 기여분(민법 제1008조의 2)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피상속인이 상속인 중 누군가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법은 최소한의 몫은 남겨놓도록 강제하는데 이것이 ‘유류분’이다. 1977년 상속법 개정을 통해 상속에서 배제되던 여성 배우자와 여성 자녀를 보호하려는 양성평등 취지에서 이 제도가 도입됐다. 고인의 증여 또는 유증(자기 재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타인에게 주겠다는 유언)이 있더라도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몫이 돌아가도록 상속재산 비율을 정해놓았다. 유류분은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 상속액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로 규정됐다(민법 제1112조).

이것이 고인의 뜻과 상관없이 재산을 갖는 상속인이 생기는 이유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의 재산 분할 소송에서 구하라를 홀로 양육한 아버지의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쟁점이 됐다. 구하라의 유족은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고 인연을 끊고 살던 어머니는 상속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광주가정법원 가사2부)는 아버지가 12년 동안 홀로 양육 책임을 다했고 어머니가 구하라를 만나려고 시도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아버지의 기여분을 20%로 정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6 대 4로 유산을 분할하라고 주문했다. 유족 쪽을 대리한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에스)는 “법 개정 없이는 자식을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완전히 상실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유류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12건

유류분 제도가 개인의 재산 처분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잇따라 오르고 있다. 부산지법 민사2부(재판장 김태규 부장판사)는 2020년 9월 유류분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14년 사망한 ㄷ씨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사망 직전 두 아들에게만 부동산을 증여했다. 그러자 부동산을 받지 못한 두 아들이 유류분 반환 소송을 냈다. 이에 소송당한 아들들이 재판부에 유류분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해달라고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유류분 제도 도입 당시인 1977년엔 인구 40%가 농민으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다보니 ‘가족재산’ 개념이 가능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유류분 제도를 뒷받침하는 관념인 ‘가산’(家産)에 대한 전제가 달라졌다”며 “유언 등을 통해 자기 재산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산권의 본질”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0년과 2013년에 “유류분 제도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합헌성을 인정했지만, 현재 계류된 유류분 관련 위헌법률심판사건과 헌법소원은 12건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유류분 제도를 개선할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생존권 보호를 위해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유류분 비율을 늘리는 방안이다. 가정준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류분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중심으로 인정하되 이혼과 재혼이 증가하는 만큼 혼인 기간을 고려해 혼인 기간이 길수록 배우자의 유류분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성년자인 자녀를 유류분 청구권자로 한정한다면 성년 자녀는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배우자에게 보다 많은 유류분을 보장함으로써 노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현실적이다.”(‘유언의 자유와 제한을 통해 본 유류분 제도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안’, 2017)


영국, 재판에 의해 액수 확정

둘째, 법원이 부양의 필요성을 따져 유류분 액수를 결정하는 방안이다. 영국의 유산분여 제도가 대표적인데, 고인에게 부양이 필요한 가족이 있으면 유언과 상관없이 법원이 상속재산의 일정액을 지급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국은 부양의 필요성, 유산을 나눠주는 것이 다른 상속인에게 주는 영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재판에 의해 유산 액수와 방법을 정해준다”며 “획일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에 따른 우리나라의 유류분 제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유류분 제도의 개선방안’, 2019)

셋째, 형제자매 유류분을 폐지하는 방안이다. 법무부는 2021년 3월 ‘사회적 공존·1인 가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류분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인데, 5월10일 열린 2차 회의에서 형제자매에 대해 인정되는 유류분은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서는 현행 민법상 유류분을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관계자는 “과거 농경사회를 전제로 한 가산 개념이 약화되고, 형제자매 등 가족관계에 생계를 의존하는 비중이 낮아진 우리 사회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넷째,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를 축소하는 대신 특별연고자 상속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엄경천 변호사는 “상속에서 배우자와 딸을 배제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어서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서는 그대로 유류분을 인정하고, 형제자매 부분만 폐지할 수 있다. 또한 상속인이 있더라도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이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특별연고자의 분여 규정(민법 제1057조의 2)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