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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1일 06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31일 14시 12분 KST

거기 서 계시면 안됩니다?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오전에 손님들과 서촌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영추문 근처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건너편 보안여관 쪽에서 사복경찰이 나더러 다짜고짜 거기 그렇게 서 계시면 안되니 얼른 이동을 하란다. 황당해서 왜 멀쩡한 시민을 이동시키냐고 물으니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짜증+답답해 하는 표정으로 대통령이 지나가실 예정이라 거리에 있으면 안된단다.

어제는(10월 29일) 정말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오전에 손님들과 서촌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영추문 근처에서 설명을 하고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건너편 보안여관 쪽에서 사복경찰이 나더러 다짜고짜 거기 그렇게 서 계시면 안되니 얼른 이동을 하란다. 황당해서 왜 멀쩡한 시민을 이동시키냐고 물으니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짜증+답답해 하는 표정으로 (청와대 주변을 지키는 사람들 태도에 아주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지나가실 예정이라 거리에 있으면 안된단다.

(참고로 위에 올린 영추문 사진을 한 번 보라. 근처는 다 허허벌판인데 거리 말고 어디를 가라고?)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지나가는 거랑 여기에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지니 막무가내로 그냥 좀 가란다. 싫다고 버텼더니 그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결국 나와 답사자들은 영추문 앞에서 오도가도 못했고 몇 분 후 대통령을 태운 차들이 지나간 뒤 움직일 수 있었다. 사복경찰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지만 불쾌함만은 짙게 남았다.

나는 청와대 근처에서만 34년 동안 쭉 살아왔지만, 이번 정권 들어서 과잉경호가 정말 심해도 너무 심하다. 기본예의는 둘째 치고, 공무집행 절차도 제대로 안 지키고 있다.

거기 서 계시면 안된다? 그런데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이 이럴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딱 하나다. 조선시대 왕이 행차 할 때처럼 넙죽 절하면서 엎드리는 것이다. 자신을 그 앞에서 철저하게 낮추고 존재를 없애는 행동이다. 청와대와 그 호위무사들은 어쩌면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그런 자세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게 이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뒷 얘기가 더 웃긴데, 이왕 썰을 푼 김에 다 풀어보겠다.

아래 첨부한 글을 읽어보면 아마 더 황당할 것이다. 비슷한 일을 겪은 뒤 국민신문고와 종로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제목 : 종로경찰서 보안과에 사과 요청 드립니다. - 2014년 7월 31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종로구 옥인동에 살고 있는 설재우라고 합니다. 본인은 경복궁, 효자동 일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 기획자로서 7월 ​​29일 오후 3시경 경복궁 서쪽출구인 영추문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하고 있던 중 서울종로경찰서 보안과 서OO씨가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거냐"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는 친절하지도 않았고, 예의를 지키지도 않았으며, 소속은 질문 뒤에 밝혔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법과 절차를 무시한 불심검문이었으며,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4항, 26조 2항을 명백히 어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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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합법적으로 답변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경찰관은 본인 일행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서 있어서 진행하는데 방해가 되고 신경이 쓰이니 떠나달라고 요구했지만, 떠나지 않아서 불쾌감과 위압감을 조성했습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항의하겠다며 경찰관 얼굴을 촬영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손으로 카메라를 저지하며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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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무 중인 경찰 얼굴 촬영은 초상권 침해가 아님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또한 해당 경찰관은 영추문 일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불법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영추문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사람들이 오고가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사진 찍는게 불법이라니, 금시초문이며 허위사실입니다. 저는 어이없는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경찰관에게 신분증 혹은 명함을 요구하였으나 그는 제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의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였고 저는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기 위해서 제 명함을 주고 경찰관의 명함을 받아왔습니다.

종로경찰서 보안과 서OO씨는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법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국민을 함부로 위협하였으며, 이 같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저희 동네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해당 경찰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잘못된 관행의 시정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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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종로경찰서 보안과장이 연락을 해왔다. 직접 찾아뵙고 사과 드리고 싶다고. 난 그냥 사과 받은 셈 칠 테니, 앞으로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아니라며 해당 경찰과 함께 꼭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고 싶단다. 내심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날 일정이 바쁘기도 했지만, 보안과장이 몇 번이나 찾아오겠다고 사정을 하시길래 내가 있는 장소를 말씀드리고 그쪽으로 오시면 된다고 했다. 10분 뒤쯤 과장과 계장 그리고 해당 경찰관이 들어왔다. 담당자가 새로 발령을 받아서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며 거듭해서 업무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시길래, 난 뭐 이렇게까지 사과를 하나 싶어서 이제 그만 알겠다고 했는데, 끝에 보안과장이 슬쩍 나에게 "혹시 종로경찰서장님을 아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 전혀 모른다고 대답을 했더니 "아..... 예...." 하면서 떠나시더라. 뭔가 꺼림직해서 종로경찰서장이 누군지를 검색해봤더니 뜨는 이름 '설광섭' 아, 내가 같은 설씨여서 혹시나 서장의 가족이나 친척일까봐 그랬구만? 그 자리에서 받은 정중한 사과가 참 우스우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우린 언제까지 이런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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