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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0일 06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30일 06시 25분 KST

'이케아 세대'가 온다

싼 곳일수록 지갑이 쉽게 열렸다. 900원짜리 신기한 모양의 지우개부터 20만원대 작은 소파 등 2000가지 물건이 600㎡(181평) 넓이 매장을 채우고 있는 서울 홍대앞 ‘버터’에서 필요를 따질 마음은 달아나고 가격 비교만 머릿속을 채웠다. 지난 23일 찾은 이곳은 국산 ‘패스트리빙’ 매장이다. 같은 이랜드 계열 리빙 브랜드 모던하우스에서 온 커튼과 냄비들은 모던하우스 가격표를 그대로 붙인 채 절반 값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래도 점장이 ‘핫딜’이라고 추천했던 3900원짜리 욕실 매트며 방석, 그때까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보풀 제거기 같은 걸 장바구니에 주워담다 보니 내야 할 돈은 4만원이 훌쩍 넘었다. 계산대에 늘어선 장바구니들을 보아 하니 다들 사정이 비슷한 듯했다. 물건 하나가 1만원을 넘기 어려운 이곳에서 한번에 120만원어치를 구입해 간 손님도 있다고 했다. 이곳은 아웃렛처럼 생활용품이 소비자에게 가는 마지막 시장이며, 싼값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이다.

앤티크나 빈티지 가구·소품을 주로 파는 ‘니코앤드’ 매장에선 처음엔 예상했던 것보다 비싼 가격에 망설이게 되지만 금세 서울 이태원 앤티크 가구 거리나 백화점 고급 매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까 말까’가 시작된다. 30일 개장을 앞두고 언론에 공개된 에이치앤엠홈 매장에서도 구석구석 화려하게 장식된 패브릭과 이국적 분위기에 낯을 가리는 것도 잠시, 이런 튀는 디자인도 좋겠다며 새로운 욕망이 생겨났다. 우리는 패스트리빙이 아닌 패스트디자인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최신 잡지에서 보았던 디자이너의 제품이 오늘 값싼 대용품으로 모양을 조금 달리해 패스트리빙 매장에 자리잡았다.

이케아를 북유럽 브랜드라고 하지만, 전통적인 수작업을 중시하는 북유럽 고가 제품 입장에서 보면 이케아는 북유럽 스타일의 빠르고 값싼 대체품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덕분에 이케아는 없었던 소비를 만들어내며 세계 42개국 345개 매장으로 발을 넓혔다. 무거운 가구와 커튼이나 침구 같은 가벼운 홈패션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맞추는 것을 ‘홈 퍼니싱’이라고 하는데, 이케아는 예전이라면 돈이 아주 많거나 전문적인 정보를 갖추지 않는 한 불가능했던 홈 퍼니싱을 대중화한 브랜드로 꼽힌다. 2008년부터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이케아는 한국의 가구·인테리어 소비행태를 관찰하며 <홈 비지트> 보고서를 작성해왔는데 비공개로 작성된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 가정은 “아이티 지출보다 가구·생활용품 소비 규모가 적고, 어른들 공간보다 아이방에 더 주력하는” 특이한 시장이었다.

지금까지 가구나 인테리어를 바꾸는 데는 보수적이었던 한국 문을 두드리는 것은 우선 가격이다. ‘동종 업계 최저가’를 내세운 이케아는 9500가지 제품을 거느린 디자인계의 대형 마트다. 11월 중 한국에 매장을 열 계획을 갖고 있는 자라홈은 트렌드에 맞춰 옷을 갈아입듯 쉽사리 바꿀 수 있는 테이블보, 침구, 소품들을 판매할 계획이다. “수천가지 제품을 값싸게 팔 것이며 특히 유기농 면 제품은 놀랄 만한 가격으로 팔 계획”이라고 밝힌 에이치앤엠 코리아도 계절마다 집안 분위기를 바꾸자는 제안이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먹힐지 지켜보고 있다. 디자인 가구 까사미아가 2013년 대중적인 브랜드 데일리 까사미아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까사미아 스테디셀러였던 50만원대 ‘모프 책장’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나온 데일리 까사미아의 ‘프리모 책장’은 30만원대다. 물론 값이 쌀수록 나사못이 보이거나 선반 두께가 얇다는 품질 차이는 있다. 서울 압구정 까사미아 매장을 지키던 점원은 “돈을 더 내더라도 좋은 것을 찾는 경향이 강한 이 지역에선 두 책장이 비슷한 비중으로 팔리지만 다른 곳에선 저렴한 책장이 훨씬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디자인과 품질을 따지는 한국 브랜드도 저가 라인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1인가구와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서다.

경제평론가 전영수는 책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에서 “머리로는 샤넬을, 현실은 다이소를 소비하는” 2030세대를 ‘이케아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비록 전월셋집일망정 웹서핑으로 엿본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꾸미길 즐긴다. 불안정한 주거지만 코스모폴리탄의 안목을 지닌 이들이 도취할 수 있는 절충이다. 패스트리빙은 “외국 생활 경험자가 많아서 외국 트렌드에 민감하고 높은 스펙을 갖췄지만 현실적으론 언제 결혼할지,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고 늘 임시 거주하듯 살아가는 이케아 세대들”이 택하게 되는 소비행태인 셈이다.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하는 엠스타일의 유미영 대표는 “지금까진 주로 이케아 한국 진출 뒤 한국 가구 시장만 이야기해왔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살림 시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옷을 갈아입듯 침구를 바꾸게 된다거나 그동안 3~4년 차이난다고 봤던 서울과 지방의 인테리어 격차가 없어지고 전국이 균일화된다거나 기업들이 독점해왔던 주거 스타일링이 대중화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패스트’라는 말은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함의한다. 버터의 경우 매주 200가지 새로운 제품이 매장에 나오면 안 팔리는 제품은 자리를 비켜야 한다. 자라홈은 패션처럼 리빙에서도 1주일에 2번 새 제품을 낼 계획이다. ‘가구는 대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이케아도 바로 그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미영 대표는 “패스트리빙이 인테리어도 빨리 소비하고 버리는 생활양식을 새로 심을 텐데 이것이 좋고 나쁜지는 따로 평가될 것”이라면서도 “어쨌거나 피할 수 없는 트렌드”라고 내다봤다. 가격파괴 대표주자인 영국의 프라이마크홈, 미국 생활용품 크레이트앤배럴도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30대는 홈패션, 40대는 수납에 공들여

남들은 어떤 살림을 장만할까? 모던하우스와 버터 같은 중저가 살림매장을 운영한 이랜드에서 2013년 9월부터 1년 동안 매장을 방문한 회원들의 구매기록을 정리해보니 나이마다 관심 갖는 살림 목록이 확실히 달랐다. 한국인들이 연령에 따라 관심을 갖는 살림살이를 정리해보았다.

20대의 경우엔 단연 아로마 제품이 1위다. 얇은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긴 향초는 버터 매장에 나온 첫주에 완전 품절되었다. 향초에 대한 관심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찾기 힘든 현상이었는데 최근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랜드 손연지 주임은 “20대는 집을 본격적으로 꾸미기에는 경제력이 부족한 나이라서 주로 작은 소품에 관심을 갖는데, 향기를 집안 스타일링으로 생각하는 20대의 새로운 경향도 한몫했다”고 분석한다.

집을 본격적으로 꾸미기 시작하는 30대는 먼저 홈패션에 관심을 갖는다. ‘국민커튼’이라는 별명이 붙은 상품이 나올 만큼 커튼은 모던하우스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김정민 모던하우스 마케팅 팀장은 “예전엔 신혼부부가 홈패션 종류를 일체로 구입했지만 요즘은 전셋집을 구한 싱글들도 홈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같은 커튼을 사더라도 20대는 블라인드나 패널 커튼을, 30대는 천 커튼을 주로 사는 것도 다르다. 요즘 커튼 유행은 암막 커튼 쪽에 쏠려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뽁뽁이라고 부르는 단열용 에어캡을 대량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유행이다.

살림과 육아 경력이 쌓인 40대는 실용을 아는 나이다. 40대 고객이 선호하는 살림용품을 꼽아보니 식기/침구/수납가구 순이다. 김정민 팀장은 “식기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3~4년마다 쉽게 교체하는 분위기다. 충동구매 성향도 강하고 특히 명절을 앞두고 폭발적으로 소비가 늘어난다. 반면 이불은 옷이나 다른 살림에 비해 보수적이다. 할인행사를 해도 여러번 매장을 다시 방문해서 결정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수납상자나 선반장은 최근 갑자기 관심이 늘어난 분야다. 20대는 아로마, 컵, 담요, 30대는 쿠션과 커튼에 빠진다. 그러다가 결국은 수납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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