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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급한 그 상사만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어요" : 예민한 상사와 일할 때 살아남는 법

사람마다 생각하는 속도가 다르다. 이른바 '정신운동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 이인혜
  • 입력 2021.04.03 18:15
  • 수정 2021.04.03 18:16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덜 예민한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덜 예민한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와는 다르게 수직적인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개성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직장에서 모여 지내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하고 이를 잘 극복해내기도 합니다. 직원들끼리 잘 지내는 것은 개개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출근할 때마다 힘들고 불편한 직장이라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장만 보면 숨막히는 현민씨,  그런 현민씨가 답답한 과장 

현민씨는 어릴 때부터 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것이 현민씨의 특징입니다. 말투도 느리고 행동도 조금 느립니다. 부모님은 그런 현민씨가 항상 걱정이었지만 그의 타고난 성향을 어떻게 바꿀 방법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 어려워 고등학교 때도 여러 과목 시험을 한꺼번에 보면 항상 몇 과목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서로 떠들고 이야기할 때도 혼자서 조용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조용히 공부만 하는 편이었고 주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캠퍼스를 다녔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현민씨가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마케팅부로 발령이 나게 되었습니다. 마케팅 부서에는 현민씨와 정반대 타입의 진영 과장이 있었습니다. 현민씨는 부서 이동 첫날부터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계획안을 짜 보세요.” “인계받은 자료 정리도 부탁해요.” “내일 브리핑할 내용은 준비가 되었지요?” “예, 알겠습니다. 예….” 대답은 했지만 결국 질책이 떨어졌습니다. “아니 아직도 준비가 안 되었어요? 지금까지 뭐 한 거지요?” “그게 아니라, 제가 업무 파악이 잘 안되어서요.” “그러면 내가 업무 인계를 다시 해야 하나요?”

현민씨는 정신이 없었고 결국 일을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뿐더러 계속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진영 과장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습니다. 현민씨는 직장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가족의 만류도 있고 이만한 직장을 다시 찾기도 힘들 것 같아 버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무기력해졌고 밤이 되면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항상 긴장을 하게 되어서 저녁이 되면 모든 체력이 소진되었고 아침에 출근하기도 몹시 힘들었습니다. 동료들은 진영 과장이 원래 그렇다면서 조금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현민씨는 자신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동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게 되자 결국 동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조바심마저 들었습니다.

진영 과장은 현민씨를 바라볼 때마다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일을 신속하게 파악하도록 하고 더 실력을 키워주기 위해 도와주고 싶어 독촉했던 건데, 현민씨는 무슨 피드백만 주면 말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할뿐더러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때마다 진영 과장은 속이 터졌습니다. 진영 과장은 이전부터 일처리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평가를 받기 위해서 업무가 주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진행해서 결과를 만드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현민씨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른 부서원들에게 현민씨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민씨의 귀에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정신운동속도가 다르다

요즘은 대인관계를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하고 성인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처럼 형제가 많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학원을 다니는 데 익숙합니다. 더욱이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학교에서 대인관계를 체험해볼 기회도 얻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다양한 대인관계와 체험을 하기보다는 입사 준비를 위한 스펙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대인관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경험하고 그 사람에 맞추어 대인관계를 유지해보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정신운동속도(psychomotor speed)라고 합니다. 현민씨는 정신운동속도가 느린 편이고, 반대로 진영 과장은 빠른 편이지요. 진영 과장처럼 정신운동속도가 빠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빠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너무 의욕이 앞서서 협력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현민씨처럼 속도가 느린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더 느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인내심 있게 잘하고 실수가 적은 장점도 있습니다.

현민씨처럼 정신운동속도가 느린 사람은 업무가 바뀌거나 처음 겪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더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민씨는 진영 과장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생각을 더 느리게 만든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결국 스스로 만든 결과물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만든 자료는 뭔가 잘못이 있고 그것을 과장도 싫어할 거야”라는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작은 결정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느리고 꼼꼼한 분들은 사소한 일에 대한 결정도 불안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신운동속도는 그 사람의 타고난 성향과 기분의 상태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들뜨거나 불안정하면 더 빨라지게 됩니다. 다만 너무 속도가 빨라지면 예민해지고 다른 사람과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이 오면 정신운동속도는 최고로 느리게 되어 마치 컴퓨터가 멈춘 것처럼 정신이 멍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드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윗사람의 지시에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어렵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Z_WEI VIA GETTY IMAGES

 

타고난 성향 생각하면서 격려해야 

어느 한쪽으로 결정을 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전체적으로 느려지고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강박적 느림(Obsessive slowness)이라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지 결정을 해야 한다면 한쪽으로 빠르게 결정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안 쓰는 것이 강박적 느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주어진 일에 몇번 성공해서 자신감을 얻게 되면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요령이 생기게 됩니다. 진영 과장은 칭찬을 통해서 현민씨의 방향성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진영 과장처럼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덜 예민한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이렇게 예민하면 뇌가 과부하에 걸릴 것입니다. 예민하기 때문에 일을 빨리 파악하고 감각이 좋기는 하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예민성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민씨가 일을 느리게 한다고 다그치는 것보다는 어떤 점이 힘든지 살펴보는 세심한 마음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진영 과장이 현민씨를 안심시켜주고 일을 조금씩 주면서 적응하기를 기다렸다면 현민씨에게도, 진영 과장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민씨와 같은 직원이 잘 적응하게 만드는 조력자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의 속도로 모든 사람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일을 마구 던지면 결국 조직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타고난 성향이 잘 바뀌지는 않습니다. 현민씨는 ‘느리지만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느린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전시키면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다만, 일 이외에 신경을 분산시키면 느린 현민씨는 결국 모든 일을 다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진영 과장은 다른 사람들이 일을 파악하는 시간을 주고 이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예민성을 줄일 수 있는 활동을 찾아서 스스로를 조절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격주 연재.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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