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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상처 부끄러워 숨겼던 8살 소녀는 73년 지난 뒤에야 "이제야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오탈자 "부모님, 상랑합니다"

제주 4·3트라우마센터가 발간한 예술치유프로그램 작품집에 실려있는 4·3 유족인 오옥순씨의 손편지 
제주 4·3트라우마센터가 발간한 예술치유프로그램 작품집에 실려있는 4·3 유족인 오옥순씨의 손편지  ⓒ뉴스1

 

″지금은 아들, 딸, 낙코(낳고) 잘 살고있읍니다. 아버님, 어머님 가삼합니다.상랑합니다(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73년 전 제주4·3 당시 아버지를 잃고 6년 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오옥순씨가 쓴 손편지다. 삐뚤삐뚤한 글씨에 틀린 맞춤법이 오히려 오씨의 진심과 부모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잘 나타내는 듯 하다.

”얼굴도 못은는(모르는) 아버지 정말 보고 십씁니다(싶습니다). 수물네살때 대전 형무소로 끌였가서(끌려가서) 산 중턱에서 총살신켜따은대(총살시켰다는데) 그때 아버님은 무수 생각을 하였슬까(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하며서 항상 아버님을 이즐수가 업씁니다(잊을수가 없습니다)” - 오옥순씨가 쓴 글 中

 

오씨는 이어 ”아버님 여기에 걱정은 하지 맛심시요(마십시오).언재가은 저도 아버님 겼트로 가서 오소도소 살라니 이개짓요(언제가는 저도 아버님 곁으로 가서 오손도손 살날이 있겠지요). 어머님이랑, 언니, 오빠 잘살고 이개짓요(있겠지요)”라고 했다.

이 편지는 4·3유족과 피해자들이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모은 작품집 ‘그리움의 안부를 묻는다’에 실렸다. 이 작품집은 지난해 문을 연 4·3트라우마센터에서 마련한 치유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문학과 미술 등을 통해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을 표현하는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취지다.

 

“그 아픈 상처를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왔구나” 4·3으로 온몸에 상처 입은  자신에게 쓴 편지 

김경자씨는 4·3으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어머니는 4·3미망인에게 매달 주는 3만원을 손주들에게 나눠주며 하르방 보낸 세뱃돈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이들 아버지께서 주신 세뱃돈 잘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8살이던 4·3 당시 불발탄이 폭발해 온몸에 흉터가 남은 상처를 입은 서근숙씨는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학창시절)너도 다른 친구들처럼 고운 다리를 갖고 싶어했다. 교복을 입을 때는 다리를 보며 속상하고 원망스러워했지. 그렇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 상처가 감사하다했다. 병신이 돼 방구석에 앉아만 있어도 좋으니 목숨만 붙어달라고 애월하며 빌었기때문이었다”

서씨는 ”너는 상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옷으로 애써 가렸고 상처가 왜 생겼는지도 떳떳이 말할수가 없어 가슴 속에 꽁꽁 숨겨 살았지”라고 빨갱이라 비난받아 피해를 호소할수조차 없던 날들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8살 아이의 육신은 파편 속에 묻혔고 어머니는 딸의 영혼을 품어 세상을 버틸 사랑과 힘을 주며 온정성으로 지켜주었다”며 ”아이야 이제야 큰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아픈 상처를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왔구나”라고 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잘 버텨 가고 있습니다” 2살 때 잃은 아버지께 쓴 편지 

강능옥씨는 2살때 잃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어린딸이 모질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할머니라는 호칭을 들으며 잘 버티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손자손녀가 사남매고 증손녀도 네명이나 됩니다”라고 썼다.

강씨는 “20세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가 94세입니다. 그곳에 찾아가시면 늙었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잘 영접해주십시오. 이승에서 못다한 얘기도 나누시구요. 저를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신 어머니십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라고 아버지에게 전했다.

 

‘불타는 집을 뒤로 하고...’ 당시 상황 묘사한 그림도 

제주 4·3트라우마센터가 발간한 예술치유프로그램 작품집에 실려있는 변영수씨의 그림. 괴한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와 울고있는 자신을 묘사했다© 뉴스1
제주 4·3트라우마센터가 발간한 예술치유프로그램 작품집에 실려있는 변영수씨의 그림. 괴한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와 울고있는 자신을 묘사했다© 뉴스1 ⓒ뉴스1

 

이 작품집에는 피해자들이 당시 상황을 직접 묘사한 그림과 그림을 설명하는 짧은 글도 실렸다. 아버지와 언니가 희생된 고영옥씨는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맨발로 눈위를 뛰어가는 슬픈 이야기’라는 제목의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군인들의 방화로 불이 났어요. 연기가 막 덮이고. 저 뒤에 업힌 거는 나고 업은 건 어머니고. 아래쪽의 아버지는 언니를 업고가다 군인들이 데리고 가 총으로 쏘아버려거든요. 아버지는 그래서 못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업어 가다가 이불을 씌웠어요. 난 저 이불 덮혀서...어머니가 하는 말이 그냥 맨발로 도망갔다는거라. 눈 위를. 너를 업어서 뛰다 뒤돌아보니 너희 언니가 울면서 맨발로 눈 위를 걸어가더라는거야”

 

박무옥씨는 ‘고통받는 아버지’라는 그림을 통해 억울한 수형생활을 하던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표현했다.

″저 낳아가지고 3개월만에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갔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감옥에 있을때도 면회도 여러번 다녔다는 얘기를 듣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 애기를 업고 경찰서에 찾아갔어요. 편지를 왕래하기도 했는데 6·25가 터졌어요. 행방불명됐어요.시체도 찾지 못해요. 진짜 시신만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변영수씨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시절을 그렸다.

″내가 5살이었으니까. 내가 기억이 나는거는 집 안에 있으니까 나오라고 해서 엄마가 애기를 업었는데 엄마를 죽여버렸어요. 신원미상의 괴한들이 돌아가고 내가 가서 ‘어머니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막 매달려서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질 않았어요. 죽었으니까 일어날 수 없는거죠. 그래서 저 아이가 우는 거죠”

 

“4·3이 아니었다면 훌륭한 선생님이 되셨을 우리 할머니”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3일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사연을 낭독한 고가형양(17·대정여고)의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생중계 화면 캡처)
3일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사연을 낭독한 고가형양(17·대정여고)의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생중계 화면 캡처) ⓒ생중계 화면 캡처

 

한편 3일 제주 평화공원에선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3월 할머니의 큰 꿈이 이뤄졌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빠의) 행방불명 수형인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신 것입니다. 할머니는 이번 재심에서 이 한마디만 전하셨답니다. ‘우리 오빠 명예회복만 해줍써(해주세요)’.” 

 “4·3 당시 할머니는 지금의 저보다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부모님도 ’우리 딸은 꼭 대학공부까지 시켜 선생님이 되게 해주신다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무슨 죄가 있어 도망가냐셨던 아버지와 함께 불타버린 집, 함께 피난 중에 총살 당한 어머니,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 후 행방불명된 오빠. 할머니는 그렇게 홀로 남아 끼니 걱정에 공부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친구들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했다고 하십니다. ‘엄마’라고 얼마나 불러보고 싶으셨을까.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은 엄마를 부르는데 저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가끔 할머니께 여쭈어봅니다. 4·3이 아니었다면 훌륭한 선생님이 됐을텐데 억울하지 않냐고…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겅해도 살암시난 살아져라(살다보면 살 수 있다)’ 하십니다.”  - 고가형 양 

 

뉴스1/허프포스트코리아 huff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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