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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9일 13시 27분 KST

성폭력 신고했다가 꽃뱀으로 몰린 여성들

Shutterstock / Oleg Golovnev

성폭력에 관한 한, 한국은 무방비 사회다. 2013년 한 해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2만8786건이다. 30분마다 1건의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 어떤 사건들은 담장을 넘어 알려졌다. “딸 같아서 찔러봤다”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경기보조원 성추행 사건, “서로를 아끼는 의미의 프리허그”였을 뿐이라는 출판사 쌤앤파커스 간부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소기업중앙회의 계약직 여직원 사건까지…. 최근 두어 달 사이 잇따라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는 우리 사회의 부박한 성범죄 인식을 보여준다.

담장을 넘지 못한 어떤 사건들은 단순히 은폐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때로 ‘꽃뱀’이라는 주홍글씨와 싸워야 했다. 올해 들어 검찰은 ‘성폭력 무고 사범 집중 단속’ 기간을 갖고 성폭행 고소인들을 줄지어 잡아들였다. 처벌을 바랐는데 합의금을 노린 것이라고 손가락질당했다. 진실을 드러내고 가해자를 처벌해주길 기대했던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오히려 그들에게 ‘무고죄’라는 낙인을 새길 때 피해자들은 “차라리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호소했다.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이 마련된 뒤 꼭 20년이 지났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의 싸움은 아직 가시밭길이다. 무고 피의자가 된 성폭력 피해자들, 그들은 정말 ‘꽃뱀’이었을까. ‘한국여성의전화’의 도움을 받아, 성폭력을 신고했다가 무고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사건 기록, 관련 논문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_편집자

검사는 ‘돈’에 대해 물었다. “김씨에게 치료비 명목으로 카드를 받은 적이 있었지요?” “입원한 비용은 어떻게 결제하였던가요?” “병원비 외에 다른 명목으로 김씨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있나요?” 지난 5월29일, 경기 지역의 한 지방검찰청 조사실에 앉아 있던 한지선(45·가명)은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참고인 조사 하는 줄 알고 나왔다가  

한씨는 이날 자신이 고소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하는 줄 알고 검찰청에 나섰다. 지난해 그는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왼쪽 가슴 부위를 잡아 비틀어 상해를 입힌 혐의로 동네 이웃인 김중남(35·가명)을 경찰과 검찰에 각각 신고·고소했다.

“조사 받으러 나오라”는 말엔 어떤 설명도 없었다. 4월에 이어 추가 조사를 받는 줄 알았다. 조사실에 도착하고서야 그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강제추행 피해자 신분이 아니었다. “죄 없는 사람을 신고하고 고소한, 죄질이 나쁜” 무고의 피의자 처지가 되었다.

형법 제156조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고소·고발했는데 그것이 허위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가기관을 기망하고 상대방의 일상을 파괴한 것이므로, 무고는 죄가 무겁다. 한씨도 성폭력 피해 수사를 받는 동안 인터넷 검색과 주변의 조언으로 무고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 피의자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만 자살하고 싶어졌습니다.”

집단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냉담한 사회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 의 한 장면.

처음 조사를 받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긴 했다. 자신이 피해자인 성폭행 고소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으러 왔는데 검찰 수사관은 자꾸 그를 닦아세웠다. “내가 성폭력 전담 수사관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피해자의 반응은 두 가지다. 화를 내면서 가해자의 뺨을 때리거나 매우 수치스러워하면서 피하는 경우다. 그런데 당신은 둘 다 아니다. 당신 같은 피해자는 처음 본다.” 한씨가 가슴을 추행당한 뒤에도 별 태도 변화 없이 회식 자리를 지킨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한씨는 억울했다. 당황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동호회원들의 거나한 송년회 자리였다. 새벽까지 마신 터라 다들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아주 많이 아팠고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순간 너무 창피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 술 취한 사람에게 당장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검찰에 낸 진정서에서 한씨는 이렇게 적었다.

‘유흥 관련 직업, 전과, 이혼 경력, 성력’이 있다면

“일반적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요. 내가 무슨 꽃뱀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몰아가는 데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70조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경찰이나 검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는데 수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결정하는 경우 반드시 신고자의 무고 혐의 유무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이미 고소인의 ‘무고’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은 ‘성폭력 피해자’의 전형을 상정해두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고소인에게는 무고 혐의에 초점을 두면서 사건을 진행한다. 이를테면 ‘유흥 관련 직업, 전과, 이혼 경력, 성력’(강경화, ‘성폭력 피해 여성 무고죄 적용 요인 분석’) 등은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못함’을 부각시킨다.

2010년 2월 주점에서 함께 일하던 관리자를 성폭행으로 고소했다가 무고로 기소된 윤아무개(41)씨도 남편과 이혼한 여성이라는 점이 수사 과정에서 내내 그의 진술의 신빙성을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했다. 검사는 윤씨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윤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당신이 원했던 거 아니냐. 아줌마가 좋아서 해놓고. 남자가 무슨 죄 있냐. 한 남자 인생 범죄자로 만드느냐.’ 검사가 검사실에서 말했어요. ‘너는 나쁜 여자다’로 해석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돈’이 개입될 때도 피해자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성폭력 피해자는 돈을 말해선 안 된다는 통념 때문이다. 돈을 언급한 순간 ‘꽃뱀’의 낙인은 깊이 새겨진다. 한씨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사과를 받는 과정에서 김중남으로부터 체크카드를 건네받았다. 김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면서도 “이사를 가라면 가고 모임을 그만두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한씨 부부가 체크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을 한사코 김씨와 함께 나온 모임 회원들이 권했다.

‘탈수, 유방통, 유방의 타박상, 영양실조, 변비, 식도역류, 만성 표재성 위염’ 등으로 입원한 한씨의 병원비가 200만원 가까이 계산되자 김씨는 돌변했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돈 없어요.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나올 데도 없고. 고소를 하세요 그냥.” 경찰서 한번 찾아본 일 없던 한씨가 이웃을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다.

그러나 담당 수사검사는 공판에서 치료비 부분을 자꾸 캐물었다. 실비 영수증을 구비한 치료비였음에도 한씨가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무고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비친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합의금은 심리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고 죄에 대해 인정하는 의미로 감경을 위한 하나의 절차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서 합의금은 성폭력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23건 보도자료 중 16건 성폭력 무고 사례

2010년 5월 노래방에서 일하다 업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종업원 박아무개(53)씨는 신고 단계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처벌을 원한다”고 강하게 의사를 밝혔다. 담당 형사가 박씨와 아무 상의 없이 “합의금 받아놨으니 가져가라. 300만원을 만들어줬으니 고맙게 생각하라”고 했다. 박씨는 돈을 원한 적이 없는데 검사는 그를 무고 혐의로 기소하면서 “피의자는 강간당했다고 고소하여 합의금을 받아내기로 마음먹었다”고 주장했다. 업주의 성폭행 혐의는 그가 “의수이고 65살 많은 나이여서” 불기소 처분으로 결론지어졌다. “조사 받다보니까 자꾸 나를 그쪽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어요. 돈하고 연결해서 꽃뱀으로. 내가 살다 살다 꽃뱀 소릴 다 듣고 산다고 (검찰) 계장한테 얘기하고 왔어요.”

2003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법조인을 대상으로 성인식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검사들의 경우 34%가 “다른 범죄와 비교해 강간 사건에서는 고소인이 가해자에게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허위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이미 수사 전 성폭력 피해의 많은 수가 허위 고소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출발함을 방증한다. 그러나 실제 성폭행 사건에서 허위 고소는 전체의 2% 정도로 다른 범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검찰의 이같은 통념이 성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정하고 척결을 약속한 박근혜 정부 들어 노골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은 모순적이다. 대검찰청 누리집 보도자료에서 ‘무고’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면 2013년 이후 23건의 각 검찰청 보도자료 가운데 16건이 성폭력 무고 사범을 주요 사례로 올리고 있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늘어나는 성폭력 무고, 더 이상 안 돼요’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1~4월 “성폭력 무고 사범 6명을 적발해 2명을 구속 기소하고,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의정부지검은 “이 기간 성폭력 무고가 2012~2013년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해 친고죄 폐지 이후 성폭력 무고가 대폭 증가했다. 향후에도 성폭력 무고 사범에 대해 적극 수사하여 구속 기소하는 등 계속 엄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친고죄 폐지 이후엔 고소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기관이 수사를 이어갈 수 있으므로 합의금 등 목적성을 가진 성폭력 무고가 줄어드는 게 예측 가능한 상식이다.

트라우마 앓는 이의 거짓말탐지기 결과 갖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경우 ‘성폭력 사범 및 성폭력 피해자로 위장한 악질적 무고 사범 수사 결과’라는 제목을 달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 안전을 중심축으로 제시하면서 4대 사회악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며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였음에도 악의적으로 마치 성폭력 피해자인 것처럼 허위 고소하는 무고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이 자료에서 “단순히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법적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 자체를 허위라고 판단하여 무고 인지 하여서는 아니되고 무고 판단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은 다르다.

성폭력 사건은 다른 형사사건에 비해 당사자들의 진술 의존도가 높다.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사관과 검사의 주관적 판단뿐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에서 고의적인 무고를 판단하는 경우에도 허위 사실 여부를 엄격하게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검찰이 한씨의 무고 혐의를 추정하는 근거 중 하나는 한씨와 김씨를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결과에 있다. 이 검사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김씨는 진실 반응으로, 한씨는 거짓 반응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단정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해당 검사는 자율신경계 반응을 측정해 화자의 정서적 각성 정도를 통제질문과 비교해 평가하는 것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이 자율신경계의 흥분의 조합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이 방식에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깃발 뒤로 보이는 대법원 건물

실제 심리생리검사에서 검찰은 당시 트라우마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장기 복용하고 있던 한씨에게 ‘정서적 각성’이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날 김아무개씨가 손으로 당신 가슴 부위를 잡아 비틀었다는 게 틀림없습니까.”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질문을 듣고 “감정의 기복이 평균 수준보다 훨씬 심각하게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악의적인 고소·고발을 막고 사법 질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성폭력 고소에서도 무고죄 적용을 막을 수는 없다. 고미경 소장은 “무고죄가 적용되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기능할 수 없어 2차 피해를 겪게 되거니와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도 모르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맡고 있는 황은영 부장검사 역시 2007년 작성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실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무고와 명예훼손의 가해자의 지위에 서게 되어 피해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황 부장검사가 당시 내놓은 해법은 여성단체의 주장과 일치한다. “위축되기 쉬운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심리적 특성을 고려하고, 피해자로서의 절차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조사 과정에서 비록 무고나 명예훼손의 고소를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성폭력특별법상의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무고나 명예훼손 혐의는 성폭력 사건의 실체가 잡히는 수사 절차의 종국 단계에서 그 혐의 유무를 엄격히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조사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남편 “수사기관이 더 원망스러워”  

누군가의 무고로 억울한 성폭력 범죄자로 몰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자가 법과 제도의 외투조차 벗겨진 채 맨몸으로 2차 피해를 겪는 일을 막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씨 부부는 사건 이후 운영하던 식당을 접었다. 가해 남성을 피해 집도 옮겨야 했다. 사법부의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내도 건강을 되찾지 않을까, 한씨의 남편은 생각한다. “남편인 저조차 그 문제(성폭력)를 가볍게 생각했어요. 아내 마음만 잘 추스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저의 무지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한씨는 가해 남성보다 이제 수사기관이 더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제 인생 1년이 그 뒤로 구렁텅이에 빠졌어요. 우리 사회에서 검사님은 하느님이란 걸 이제야 알았어요. 저는 돈도 없고 빽도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그런 분이 칼 한번 휘두르면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라는 거….”

참고 문헌 ‘성폭력 피해 여성 무고죄 적용 요인 분석’(강경화·2012), ‘성폭력범죄에 대한 실효적 대응 방안’(황은영·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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