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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7일 19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2월 27일 19시 50분 KST

자연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주장하다 : 옛 시인의 100년 전 시가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인간들은 서로 전염을 시키지 못하도록, 떨어져 사는 게 더 나을 것" - 로빈슨 제퍼스(188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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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제퍼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86년부터 4년간 미국 카멀시의 시장으로 일했다. 배우들이나 시인들이 시장을 지낸 이 마을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미개발 해안선 ‘빅 서’(Big Sur)가 시작되는 카멀 언덕에 있다. 그 마을에 이르는 해안선 마을 몬터레이에도 존 스타인벡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이 함께 살아 <몬터레이 철학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다.

1910년에는 마을 사람들의 60%가 예술가였던 카멀이 지금은 부자들의 휴양지가 되어 배우 출신의 보수적인 공화당 소속 시장을 뽑기도 했지만, 20세기 전반기에는 디에이치(D.H.) 로런스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찾아든 온화하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이었다.

카멀에서 약 40년 동안 전화나 전기도 없이 평생을 살면서 오전에는 시를 쓰고 오후에는 화강암으로 집을 짓고 탑을 쌓으며 저녁에는 가족과 산책을 하고 밤에는 가족에게 책을 읽어주는 생활을 아내가 죽을 때까지 되풀이하다가 그 뒤 홀로 12년을 더 살면서 쓴 시인의 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게다가 미국 최초의 생태시인이고 철학시인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심오할까?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시는 “인간의 후손이 아니라 야생 사과 속 벌레가 되겠다” “처벌만 안 받는다면 나는 매보다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시인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생태시의 선구자라고 하는 시인이 할 수 있을까? 매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해도 비인간주의자(inhumanist)를 자처하면서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을 중시하는 시인이 자연을 사랑하는 생태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에콜로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섬진강이니 낙동강이니 하는 자연을 그린 생태시만 읽어서일까?


부패한 공동체 거부하고 ‘자연’ 주목 

비인간, 반인간을 예찬하는 시를 생태시라고 할 수 없어서 나는 오랫동안 그를 무시하고 ‘양키’라며 욕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로빈슨 제퍼스라는 시인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현대 미국 시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소위 학술논문집에 두세 편 논문을 썼지만, 일반인이 찾기도 어렵고 찾아 읽어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다가 ‘피의 잔’이라는 끔찍한 제목의 시에서 “권력은 중심을 필요로 하는/ 텅 빈 거대한 정신./ 그것은 거의 무작위로 한 사람을 선택해/ 그를 흐리게 하고 그 주위를 응고시키고 그것은 그를 소유한다”는 구절을 우연히 읽고 무릎을 치면서 그를 새롭게 만나게 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피로 가득 찬 잔’에 비유하며 그 야만과 폭력의 배후에는 권력을 낳는 이데올로기가 작용해 인간을 현혹하고 지배한다고 비판하는 그의 시야말로 참된 에콜로지 시라고 느꼈다. 학자들은 그것을 에콜로지 시라고 하지 않고, 시인이 바다나 돌을 노래한 시만을 에콜로지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반권력의 시야말로 생태주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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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카멀 해안에 로빈슨 제퍼스가 손수 지은 돌집과 매의 탑


1887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장로교 목사이자 고대 언어 및 성서 역사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제퍼스는 어린 시절 유럽을 여행하고 독일·프랑스·스위스에서 학교에 다니며 고전과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18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과 유럽의 대학원에서 문학과 의학·임학을 공부하다가 기혼녀이자 연상인 우나 커스터를 만나 7년 뒤 결혼해, 1916년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의 카멀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거기에서 돌로 집을 지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노래한 제퍼스의 시는 1920년대에 범세계적으로 널리 애송됐다.

인류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사물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해 만든 그의 비인간주의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종래의 사랑이나 증오, 시기나 질투가 아닌 인간 행동의 원칙으로서 합리적인 거리두기를 제안했다. 루크레티우스, 헤로도토스, 쇼펜하우어, 니체를 존경하는 제퍼스는 인간이 유아론(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초인간적인 자연의 장엄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아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서양의 전통적 신념에 반대하면서, 부패한 공동체적 생활 속에서 사는 관계를 거부하고 자연에 주목하게 했다. 그래서 “바다가 우리에게 보여주리라/ 비인간의 길을” “그리고 산이 남으리라”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인간을 돌과 같이 보는 그의 비인간주의는 1930년대의 진보적 분위기와 맞지 않았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것에 반대한 뒤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잊혔다. 그는 2차대전의 영웅으로 찬양된 루스벨트나 처칠을 히틀러나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자국민을 전쟁으로 이끈 점에서 마찬가지 악당이라고 비난해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당시 그는 ‘역사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우리는 잘못 인도되었다/ 사기와 공포에 의하여, 우리의 공공기관의 바보들과 사랑받은 지도자의 야망에 의하여/ 쇠퇴하는 유럽의 열광의 꿈에 간섭하도록.” 또한 예수를 그런 지도자의 원조로 비난하며 기독교가 인간을 참된 신인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이반시켰다고 비판해 더 분노를 샀다. “애국주의가 피로 물든 아주 많은/ 호수를 통하여 이 세상을 운영해왔고, 우리는 항상 빠져 있다”고 하면서 모든 전쟁을 반대한 그가 1962년 죽을 무렵에야 완성된 그 집과 탑에서 시인은 외롭게 살다가 그곳에 묻힌 뒤 최근에 다시 에콜로지 시인으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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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제퍼스.


코로나 시대에 읽는 100년 전 그의 시

애국주의를 반대한 위 시구절이 나오는 ‘별은 외로운 바다를 지난다’는 아름다운 제목의 시에서 야생 멧돼지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에도 나는 공감한다. “민주주의랍시고 떠드는 사기꾼들/ 말에 취해 혁명이랍시고 떠드는 개들,/ 거짓말쟁이들, 숭배자들을 깨끗이 쓸어버려라./ 나는 내 송곳니를 믿는다./ 자유여 영원하고 이데올로기는 저주받아라.”

멧돼지가 민주주의나 혁명이나 이데올로기를 알 리 없다. 멧돼지는 오로지 자유·자연일 뿐이다. 반면 인간이 하는 말들은 자연과 자유에 어긋나는 사기·거짓·숭배에 불과하다. 인간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 즉 기만·폭력·지배·복종의 반복에 불과하며 인류의 문명은 그 결과라고 시인은 본다. 그 원인을 인간이 인간에게만 몰두하는 탓이라고 보는 제퍼스는 영원한 자연적 사물에 눈을 돌리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외부를 환상이라고 보고 내면에서 신을 찾는 신비주의나 범신론을 인간 중심이라고 비판한 제퍼스는 그러한 사고와 반대로 내면을 환상이라고 보고 외부 자연 자체를 신으로 보았다.

이미 100년 전에 자연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주장한 ‘전투’라는 그의 시를 코로나 시대에 읽는다. “수많은 세월 동안 예견된 이 악행들, 이 극악무도한 폭력,/ 이 육중한 고통. 견디기가 더 이상 쉽지 않은/ 우리는 이것들이 느린 돌 걸음처럼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그것들을/ 보았다. 우리는 눈을 감고 그것들을 외면했고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 가까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잤다. 그것들은 더 가까이 왔다./ 가끔 우리는 웃었다. 그것들은 가까이 있었다. 지금/ 그것들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장님이 그것들 다음에 무엇이 따라올지 예견한다./ 타락, 기근, 절망 그리고 다른 것. 그리고/ 전염적인 광기. 하지만 죽음이 충분하지 않다./ 인간들은 서로 전염을 시키지 못하도록 소수로 그리고 떨어져 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러면 들판과 산의 제정신이/ 그리고 차가운 바다와 빛나는 별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 박홍규: 전 영남대 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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