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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7일 18시 41분 KST

방송의 선한 영향력 보여준 착한 예능: 양심 없는 시대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 예능이 기다려지는 이유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 김영희 PD

한겨레
김영희 피디가 지난 18일,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에서 장애인 부부가 정지선을 지켰던 서울 여의도의 한 건널목을 찾아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개인의 양심적 행동이 중요해진 시대에 김영희표 공익적 예능이 소환되고 있다

 

“첫 촬영날 중간에 다들 철수하자고 했어요. 새벽 3시쯤 됐나. 차들이 너무 정지선을 안 지키니까 더 지켜볼 필요도 없다는 거죠. 날도 춥고 성과도 없고.”

양심 없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 그래서 다시 양심이 필요한 시대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이하 ‘양심냉장고’. 상품으로 냉장고를 지급해 이 애칭으로 널리 불렸다)를 기획한 김영희 피디를 만났다.

1996년 김 피디는 ‘이런 착한 프로그램이 성공할 리 없다’는 방송사 내부의 시선과 끈질기게 싸워야 했다. 첫회를 촬영하던 날에도 제작진은 꼬박 밤을 새웠다. 간절히 기다리던 ‘양심’이 나타나지 않아서였다. 그해 10월29일, 새벽 4시가 되자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철수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화가 나서 모두에게 엄포를 놨죠. 난 해가 뜰 때까지 촬영할 것이고, 주인공이 안 나타나면 내일 다시 촬영할 것이라고. 지금 끝내도 끝난 게 아니라고. 하하.” ‘단호박 보스’가 내린 판단은 신의 한 수였다. 불과 13분 뒤 대한민국 예능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적인 주인공이 등장했으니까.

이 프로그램의 첫 캠페인이었던 ‘정지선을 지킵시다’의 양심냉장고 1호 주인공은 이종익·김유화씨.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유튜브 등으로 다시 보고 있는, 바로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지체장애인 부부였다. 아무도 건널목을 지나가지 않는 새벽, 그럼에도 홀로 끝까지 빨간 신호를 지키며 정지선에 똑바로 차를 세우고 있던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사회적 울림을 가져왔다.

진행자 이경규씨의 “왜 신호를 지키셨냐”는 ‘우문’에 운전자 이종익씨는 “내가 늘 지켜요”라는 현답을 내놨고, 이들 덕분에 ‘양심냉장고’는 방영 1회 만에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시청자 요청이 많아 2회 정규방송 시간에 1회 재방송을 내보내는 파격 편성도 감행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횡단보도를 <한겨레>와 다시 찾은 김 피디는 “신호가 바뀌고 (이종익씨가) 그냥 가려고 해 잠시만 멈춰달라며 차를 막아서기도 했다”며 동작을 해 보였다. 계속 출발하려고 해 운전자가 혹시 음주를 한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며 웃었다. “아 망했다, 했었어요. 하하.”

2%로 심각하게 낮았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시청률은 김 피디가 투입된 뒤 8~10%로 올랐다가 ‘양심냉장고’ 1회가 나간 뒤에는 30%까지 치솟았다. 부부의 등장으로 힘받은 ‘양심냉장고’ 코너는 2년 넘게 이어지며 다양한 시도도 이어졌다. 4차 캠페인에서는 모든 차량 정지선 지키기, 도시고속화도로에서 시속 100㎞ 미만으로 달리기 등 교통법규에서 더 나아가, 나뒹굴고 있는 공용 쓰레기통 세우기, 어르신 짐 들어드리기 등 ‘숨은 양심’도 찾아나섰다.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팔지 않는 가게 등 다양한 양심에도 호소했다. 아이템별로 짧게 치고 빠졌다.

김 피디는 “양심 콘셉트는 비슷한 방식이 반복돼 시청자들이 금방 눈치를 채 길게 하기 힘들었다”며 “‘정지선을 지킵시다’를 할 때도 사람들이 옥상에 서서 진행하는 우리를 보고 바로 알더라”고 했다. 14차로인 영동대교 편에서는 인근 자동차영업소 직원들이 사전모의 뒤 팀플레이를 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양심냉장고는 모두 500대 정도가 나갔다. 가장 크고 비싼 걸 주고 싶어 냉장고로 택했을 뿐 협찬은 아니었단다. “대리점 가서 제작비 주고 가장 최신형으로 샀어요. 그러다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으니 그 대리점에서 그냥 줬고, 나중에는 본사에서 그냥 주더라고요. 하하.”

유튜브 갈무리
새벽 정지선 지키기로 화제가 됐던 부부. 

 

공익예능, 방송의 ‘선한 영향력’ 보여줘

‘양심냉장고’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예능사에 ‘공익예능’이라는 새로운 네 글자를 새겼고, 김 피디의 이후 행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카메라’로 입봉한 그는 ‘양심냉장고’ 이후 ‘착한 예능’을 계속 성공시켰다. 공익예능은 최근 수년 사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사실 그가 이미 시도했던 것들을 변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양심냉장고’ 이후 만든 <21세기 위원회>의 ‘칭찬합시다’는 비연예인과 함께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레전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지탱되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주변을 돌봐준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도움 준 사람을 릴레이로 칭찬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한겨레
김 피디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느낌표!>는 시즌1·2를 통틀어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독서 문화를 권장하며 전국 각지에 도서관을 세웠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시선을 바로잡자는 뜻으로 시작한 ‘아시아 아시아’ 등은 요즘 시대에도 유효한 화두를 던지는 기획이다.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둔 그의 시리즈는 특히 커다란 감동을 줬다. 아침밥도 못 먹고 비몽사몽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줬던 ‘신동엽의 하자하자’, 위험천만하게 오토바이 타는 아이들에게 헬멧을 씌워줬던 ‘얘들아 헬멧 쓰자’, 가출한 아이들과 부모님이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한 ‘얘들아 행복하니’,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도 평등하게 혜택받게 한 ‘청소년 할인하자’ 등이다.

김 피디는 “1970년대 말~80년대 초 대학 생활을 해서인지 사회 부조리, 부정부패 등을 경험하면서 그걸 바로잡는 게 책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예능이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웃게 하며 행복하게 만들면 된다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의미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영희표 공익예능의 시작인 ‘양심냉장고’도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신동엽의 하자하자’는 중학생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그린 신문 만평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만평을 10년 동안 회사 책상에 붙여두고 언젠간 청소년 콘셉트를 해야지 하며 오가며 봤어요.”

문화방송 제공
독서·청소년 문화 등을 바꿨던 <느낌표!>. 

 

이런 의식은 예능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원상복구되기는 했지만 당시 그의 활약으로 ‘0교시’가 폐지됐고, 각막 이식 수술을 지원하는 ‘눈을 떠요’를 통해서 시각장애인 23명이 빛을 찾았다. ‘정지선을 지킵시다’ 방영 당시 에너지관리공단(현재 한국에너지공단)의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8%가 “과속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김 피디는 “‘학생 할인’ 대신 ‘청소년 할인’으로 교통정책이 바뀐 것에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실제로 버스에서 학생이 아니면 어른 요금을 내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티브이 프로그램이, 그것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교육·사회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작고 선한 행동이 세상 바꾼다

하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메신저라는 점에서 몸고생, 마음고생은 컸다. 이경규씨는 ‘양심냉장고’ 코너를 진행할 때마다 야외에서 고생했다. 추운 겨울에 옥상에서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았고, 어떤 차가 정지선을 지키는지 보려고 일어서서 매번 고개를 내밀고 확인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한다. 과거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양심냉장고’를 할 때 내가 ‘시대의 양심’처럼 되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피디도 “이경규씨의 차를 같이 타고 다닌 적이 많았는데 ‘정지선을 지킵시다’가 잘되고 나서는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가야 해서 둘이서 많이 답답해했다”며 웃었다. 방송사 근처에서 스태프들과 회식을 할 때는 ‘왜 술을 마시냐’며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난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공익예능을 하게 되면서 따르는 책임감에 사고 안 치고 규범적인 사람으로 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양심냉장고’ 첫회를 만들던 그때로 돌아가, 이제 그만 철수하자는 스태프들의 의견을 따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금껏 쭉 써내려간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을까? 아니면 조금 에두르더라도 결국 비슷한 길을 걸어오게 됐을까? 정답은 후자가 아닐까. 김 피디가 ‘양심냉장고’를 기획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엄청난 각오나 계기가 아니라 그가 일상에서 무심하게 했던 작지만 선한 행동에서 ‘공익예능’의 싹이 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일상의 정직하고 자그마한 행동이 쌓이면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믿어온 사람 같다.

“회의 끝나고 새벽에 퇴근하다가 우연히 그냥 정지선을 지켰어요. 너무 뿌듯한 거예요. 그 마음이 좋아서 이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볼까 생각했어요. 그 전까지 새벽에는 정지선을 안 지켰죠. 하하. 그날따라 왜 지키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하하하.”

 

‘칭찬합시다’를 하면서 그는 일주일에 두번씩 울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울고, 편집하면서 울고. “사람들의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 소소한 사연 등을 담는 게 너무 좋고 또 슬프고. 프로그램을 하면서 늘 힐링이 됐죠.”

문화방송 제공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지어줬던 <느낌표!> ‘신동엽의 하자하자’.

 

물론 공익예능이 지나치게 계몽성을 갖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가 겪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5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방송 채널과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지만 허전함을 메우기 힘든 요즘, ‘김영희표 예능’의 필요성은 새삼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각박해진 세상, 양극화가 심할수록 ‘양심’이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환하게 웃으며 외환위기 전후 어렵던 한국 사회를 위로하던 ‘쌀집 아저씨’(김 피디의 별명)가 이 시대에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김 피디는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예능에서도 그것이 적용돼야 할 것이고. 다만 그런 좋은 프로를 다시 만들고 싶지만 요즘 시대와 트렌드와 맞게 잘 변형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피디가 꼽은 기억나는 사람들>

-‘칭찬합시다’ 시설 운영 중증장애인

손도 들 수 없는 중증장애인인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운영했다. 이분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꿔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장애인 관련 특집을 많이 했다. 좋아하는 친척 형 결혼식에 이분이 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 또 다른 친척이 원하지 않아서였다. 내가 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다. 아직은 못 했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얘들아 행복하니’ 아들과 아빠

환경미화원 아버지와 가출한 고1 아들. 홀로 아들을 키운 아버지는 함께 집에 돌아가길 바랐지만 당시 아이는 친구들을 택했다. 뒤돌아 가는 아들을 아버지는 부르더니 바지에서 주섬주섬 십만원짜리 수표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밥 굶지 마라.” 그 뒷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에도 편집하면서 계속 눈물이 났었다.


-‘숨은 양심’ 14차로 영업소

당시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다. 14차로라는 것만 알려줬는데 인근 영업소 분들이 작전을 짜서 정지선을 지키려고 몇번이나 도로를 돌았다. 한마디로 박장대소. 끝내 다 지키지 못한 것도 웃겼다. 다 지켰더라도 냉장고는 받지 못했을 테지만, 재미있었다.

 

한겨레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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