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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시면 라면·김치 제사상 차리기로" 시대가 바뀌면서 차례상도 바뀌고 있다

가부장적 명절 문화가 변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새 명절 문화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SUNGSU HAN via Getty Images

독립서점 ‘스페인책방’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다미안(42·필명)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이렇게 결정했다. 훗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생전에 좋아하시던 라면에 김치를 올려놓고 제사상을 차리기로.

“아버지가 키우지 않은 사람이 차린 홍동백서를 따른 제삿상에, 아버지가 드시지도 못하는 술을 올리고 절하는 것은 아버지라는 고유한 사람을 기리는 데 적당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아버지의 제사라면, 남은 가족이 모여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봐요.”

3년 전 결혼한 그는 부모님 생일 등을 챙기러 고향집에 갈 일이 생기면 보통 혼자 간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며느리가 남편 집에 가서 전을 부치는 게 명절의 목적은 아닙니다. 자기 가족의 일은 각자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죠.”

간혹 아내 에바(37·필명)와 함께 부모님 집에 가면 그는 부모님이 아내를 ‘아들의 친구’처럼 대해주길 바란다. 이들 부부는 폐백, 예물 등을 거부하고 치른 결혼 과정을 <행여혼신>(2018)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결혼 뒤에는 가부장적 명절 문화를 바꿔나가려 노력 중이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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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ASSOCIATED PRESS

다미안과 에바 부부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겐 코로나19 전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5인 이상 모임 제한 지침은 새 명절 문화의 촉매가 된다.

2남 중 차남인 송권재(46)씨도 이번 설 연휴에 형과 자신만 부모님을 방문해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두 며느리와 손주들은 모바일 영상통화로 안부 인사를 하기로 했다. 송씨는 “정부에서 5인 이상 모이지 말라 해도 부모님께 먼저 못 간다고 말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부모님께서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두 형제만 가기로 했고, 손이 많이 가는 제사용 음식은 구매하기로 했다. 음식을 거의 안하는 방향으로 할 것 같다”고 했다.

 

57% ”차례 문화의 변화 필요”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고, 예법을 따른 차례를 지내는 전통적 방식의 명절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제법 널리 퍼져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2019년 설날을 전후로 남녀 4081명에게 명절·차례·제사 문화를 물었다. 명절에 차례·제사를 지낸다는 응답은 54.7%였다. 명절 스트레스 지수를 묻는 질문에 ‘높은 편’이라고 답한 비율은 39.4%였다. 차례·제사 문화에 대해서는 ‘지속하되 시대변화에 발맞춘 변형이 필요하다’(5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8.3%였다.

‘온라인 제삿상에 지방(종이에 고인의 이름 등을 적어 위패로 삼는 것)을 쓸 수 있어서 실제 차례 지내는 느낌이 난다’ ‘애들에게도 온라인으로 제사에 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좋다’ ‘차례 지내는 영상을 해외 가족들한테 에스엔에스로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차례상에 더 다양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해주세요’.

지난해 추석, 온라인으로 차례상을 차리고 비대면 성묘를 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이(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은 전국 346개 추모시설에 가족을 모신 이들에게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리집에서 음식 그림을 마우스로 끌어다 옮겨 차례상을 차릴 수 있다. 키보드로 지방을 쓸 수 있고, 헌화와 분향도 할 수 있다. 추모 영상을 메신저나 에스엔에스로 친척에게 공유할 수도 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연휴 23만명이 이용했고, 올해는 설을 앞두고 차례를 미리 지내려는 이용자들이 지난 1월18일부터 하루 2000~3000명 꼴로 접속하고 있다. 이번 설에 많은 이들이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있도록 지난 추석 뒤 이용자들의 후기를 반영해 시스템을 고도화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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