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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전면 폐지해야 하는 이유 : 음성화된 불법 시술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피해 사례)

모든 여성은 안전하고 위생적인 곳에서 '낙태'할 권리가 있다.

  • 이인혜
  • 입력 2020.10.08 20:00
  • 수정 2020.10.08 22:56
비위생적 환경에서 이뤄지는 불법낙태. 자료사진. 
비위생적 환경에서 이뤄지는 불법낙태. 자료사진.  ⓒdanishkhan via Getty Images

임신중단(낙태)을 ‘기꺼이’ 하는 여성이 있을까? 여성이야말로 임신중단 따위 안 하고 싶다. 임신중단으로 정신적·육체적 타격을 가장 심하게 입는 사람은 바로 해당 여성이다. 역설적이게도 임신중단을 완전히 허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적·육체적 타격을 받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낙태죄’를 존치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던 ‘낙태죄’ 처벌이 부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처벌한다고 해서 결코 임신중단은 줄어들지 않는다. 음성화될 뿐이다. 음성화된 시술은 여성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음성화된 임신중지는 여성들의 삶과 건강을 어떻게 위협할까. 비위생적이고 질 낮은 의료기관에서 ‘불법’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얘기를 모아봤다.  

임신은 여성의 선택이다. 자료사진. 
임신은 여성의 선택이다. 자료사진.  ⓒNatty Blissful via Getty Images

 

“일부러 외곽에 있는 작고 허름한 개인병원을 찾아갔어요. 왜, 누가 봐도 눈에 띄지 않는 병원 있잖아요. 수술 후에 배가 계속 아프고 하혈이 심했는데, 산부인과에 가보고 싶어도 (중절)수술했다고 말을 못할 것 같아서 못 갔어요. 혼자 앓다 보니까 ‘혹시 병원이 낙후됐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더라고요” - 여성 A씨 

 

“(이미 임신중지 수술을 한 상태에서) 의료 과실로 태아 일부가 자궁에 남아있다는 연락이 병원으로부터 왔어요.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이전 수술과 같은 금액을 요구하더라고요. 그 병원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지만, 불법 중절 수술을 받았다는 걸 말하기도 어렵고, 도움을 청할 데도 없고, 다시 수술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너무 막막합니다” - 여성 B씨 

 

“외국에서 살다 온 제 친구 말로는 임신 초기에는 약물로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제가 갔던 병원에선 그런 이야길 들은 적이 없어서 수술밖에 선택지가 없었어요. 전 워낙 초기에 임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수술하려면 아기집이 보여야 한다고 해서 심지어 몇 주 더 기다렸어요. 시간을 지체한 만큼 더 비싼 돈을 내고 수술 받아야 했죠” - 여성 C씨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불법 낙태‘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제 백발에 주름이 가득한 70~80대 여성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이들이다. 특히 1960~70년대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일했던 생존자들의 피해는 참혹하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안김정애 대표는 ”기지촌 주변에 전문의가 아닌 이들이 ‘야매’로 운영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며 ”당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불법 시술을 받다 사망하는 여성도 많았다”고 말했다.

 

″설령 생존했더라도 몸이 망가져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아요. ‘온몸이 저리다‘거나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하시죠. 동료가 ‘불법 낙태’ 후유증에 시달리는 걸 보다가 트라우마가 생겨 자살 시도를 한 분도 계시고요.”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안김정애 대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겨레

기지촌여성인권연대 한 활동가는 이런 사례도 전했다. ”체질적으로 마취가 잘 안 되는 분이었어요. 마취가 안 되다 보니 맨 정신에서 수술을 받다가 중간에 기절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었다면 다른 마취약을 써서라도 그렇게 인권에 반하는 수술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임신중지가 ‘죄’인 세상은 여성의 삶에 참혹한 흔적을 남겼다. 

지난해 2월 공개된 보건복지부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받은 건수는 약 5만 건이었다. 의료계는 실제 시술은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임신중단이 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시술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2018년 발표한 ‘낙태 수술 시행 여부 실태조사’에서도 30%의 병원은 암암리에 임신중단 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임신중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수술의 음성화는 여성의 건강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 35조는 이렇게 명시한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다. ”그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이제 응답할 때다.  

이인혜 에디터 : inhye.lee@huffpost.kr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형법, 모자보건법(낙태) 개정 입법예고안 강력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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