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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기후위기 : 수돗물 유충 사태는 한반도에 보내는 위기 신호일지 모른다

수돗물 유충 사태는 국내에선 처음이다.

  • 이인혜
  • 입력 2020.07.24 18:03
  • 수정 2020.07.24 18:08
충북 청주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수못물 유충 신고를 한 가정에서 확보한 나방파리 유충
충북 청주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수못물 유충 신고를 한 가정에서 확보한 나방파리 유충 ⓒ뉴스1/청주시 상수도사업본부 제공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왔다. 고도정수처리에 쓰는 활성탄(숯)이 문제였다. 활성탄은 수돗물의 맛과 향을 위해 쓴다. 활성탄이 제 기능을 하려면 미생물이 살아 있어야 한다. 살균을 위해 오존을 쓰지만, 과하면 인체에도 좋지 않아 한계가 있다. 미생물이 있어 물리적 접근이 가능하면 벌레도 번식한다.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 건 미국 등지에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선 처음이다. 앞으론 이런 일이 잦아질지 모른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온이 오르면 물 안의 조류나 플랑크톤이 풍부해지면서 깔따구과의 곤충이 번식할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다. 깔따구를 대상으로 한 국내 한 실험에선 평균 기온이 30도일 때 개체수가 가장 많아졌고 기온이 24~26도로 내려가자 줄었다. 대벌레, 매미나방, 노래기 같은 곤충들도 최근 전국에서 출몰한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지난겨울 이상고온 현상이 곤충의 개체수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겨울 기온이 높아 벌레들이 죽지 않고 부화했다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와 미국 해양대기청은 올해가 기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름이 더울 거란 일반의 예상과 달리 겨울이 따뜻해도 그해 평균기온은 올라간다.

기후의 변화로 인한 곤충의 종, 개체수 변화는 한반도에서 이미 오래전 시작됐다. 2014년에 발간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한반도 나비의 분포는 한국전쟁 이전(1938~1950년)과 이후(1976~1999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나비 131종은 늘고 40종은 줄었다. 특히 큰수리팔랑나비, 산부전나비, 상제나비, 시골처녀나비, 들신선나비 5종은 분포가 크게 감소했다. 한국에선 조만간 아예 볼 수 없는 종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외래종이자 과실 피해를 낳는 감관총채벌레의 급증도 인상적이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전남에선 1995년부터 확대됐고, 전북은 익산에서 2001년 처음 나왔다. 경북과 충북에선 2000년과 2002년에, 제주도에선 2001년에 처음 발생했다. 경남 지역의 경우 2000년대 들어 14개 시·군에서 발생했고 창원시, 밀양시에서 가장 피해가 컸다.

감관총채벌레는 감나무 잎에서 기생하며 산란하는데, 해를 입은 잎은 세로로 길게 말리고 황록색을 띠다 검게 변한 뒤 심하면 낙엽이 된다. 열매엔 황갈색 반점이 남아 상품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기온이 오르고 해충이 늘면서 말라리아나 쓰쓰가무시 같은 질환도 함께 는다. 기후 자체의 변화는 우리가 감지하기 힘들 만큼 미세하게 이뤄지지만, 들여다보면 그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역동적이다.

국외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 사례로 최근 보도된 것 중엔 알프스의 눈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가 대표적이다. 알프스의 눈은 분홍색으로 변해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는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프레세나 빙하에 쌓인 눈이 최근 분홍색으로 변한 건 조류 때문이다. 물속에서 포자로 번식하는, 일종의 식물인 조류 그 자체는 위험하지 않지만 이 조류 때문에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프레세나 빙하에 쌓인 눈이 최근 분홍색으로 변해 있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프레세나 빙하에 쌓인 눈이 최근 분홍색으로 변해 있다  ⓒ한겨레/아에프페 통신

 

태양 복사열의 80%를 대기로 반사하는 빙하는 일종의 거울 구실을 해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데, 이런 빙하가 조류로 인해 변색되면 열을 흡수하고 더 빨리 녹는다. 조류는 그린란드의 빙하를 검게 물들이기도 했다. 전 지구 해수면 상승분의 4분의 1이 그린란드 빙하가 녹아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프레세나 빙하 근처엔 등산로와 스키 리프트가 있다. 한 관광객이 <아에프페>(AFP) 통신과 한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는 절멸의 상징처럼 보인다. 전세계 산호의 절반이 지난 30년간 사라졌다. 2015~2017년에 피해가 가장 컸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스트레일리아 대산호초는 91%가 백화 현상을 겪고 있다. 우리가 아는 바다 생물종의 3분의 1이 산호에 의지해 산다. 이대로면 금세기 말 지구상의 모든 산호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절멸로 가는 길은 장애물이 없는 대로다. 기후변화 문제에서만큼은 우리는 언제나처럼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실패할 것이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무엇이든 필요한 조처가 급한데도 사방은 지뢰밭이다.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과 바람에서 에너지를 얻는 일이 시급하지만 야당과 보수언론은 재생에너지 헐뜯기에 혈안이다. 다음주 6년 만에 기상청과 환경부가 발간하는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가 나온다. 2014년 직전 보고서 발간 이후 나온 관련 국내 연구 1800여편의 내용을 분석,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들여다보면, 절멸로 가는 대로가 좀더 섬뜩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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