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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확진자가 발생한 2월, 국군대구병원에 지원했던 평범한 두 영웅의 이야기

그렇지만 공감이 간다

  • By HuffPost Korea Partner Studio
  • 입력 2020.07.31 11:00
  • 수정 2020.08.03 11:02

2월 18일,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12일 만에 대구 누적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어섰다. 전체 확진자가 4천 명 대였으니 확진자 중 75%가 대구에 있다는 의미였다. 온 나라가 패닉에 빠졌다. 험한 말들이 오고 갔다. 유언비어도 떠돌았다. 그 와중에 국군대구병원을 돕겠다고 직접 나섰던 두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전출을 앞둔 군인이자 엄마였으며, 누군가는 말년 휴가를 며칠 앞둔 어린 병장이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말년 휴가를 며칠 앞둔 어린 병장은 대구에 남았다

지난 2월, 말년 병장이었던 정세문 예비역 병장은 전역을 3주 앞두고 있었다. 휴가를 보내던 중 31번 확진자가 나왔다. 외부 활동을 삼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는 국군대구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복귀 후 달려온 병원은 공사장이 되어 있었다. 국군대구병원이 국가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압병실을 만드는 공사에 바로 투입되었고, 비감염자와 감염자가 다니는 길을 분리하고 유리 벽을 설치한 뒤 바로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진다는 말년 병장 시기, 그는 전역 전 남은 휴가를 반납하고 코로나 19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말년 휴가를 반납하고, 국군대구병원에 남았던 정세문 예비역 병장
말년 휴가를 반납하고, 국군대구병원에 남았던 정세문 예비역 병장 ⓒ질레트 코리아 제공

Q. 어떤 업무를 맡았나? 간호 행정 부문을 담당했다. 구호품이 들어오면 필요한 곳에 지급하고, 환자에게 온 택배를 받는 업무를 맡았다. 생필품을 주문하는 환자가 많아 도착하는 택배량도 상당했다. 본래 군 병원이다 보니 일반 환자가 지내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Q.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나 환자 지원 업무이기도 했고 특히 병원 측에서 일반 병사는 환자를 접촉할 일도, 가까이 갈 수도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줘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가 물밀 듯이 밀려드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인지 코로나19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염려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4일, 육군 제2작전사 예하 1117공병단 장병들이 4일 국군대구병원에서 음압병상 확충공사를 위해 자재를 운반하고 있다.
지난 3월 4일, 육군 제2작전사 예하 1117공병단 장병들이 4일 국군대구병원에서 음압병상 확충공사를 위해 자재를 운반하고 있다. ⓒ뉴스1(육군 제공)

Q. 사실 전역 전 휴가를 반납하겠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가감염병전담병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는 작게나마 일손을 보태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니 휴가 때 집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셨다. 전역한다 하더라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으니 차라리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전역 연기도 신청했지만, 전시 상황이나 훈련 상황에서는 연기할 수 없어 휴가만 반납하게 되었다.

Q. 같이 근무하던 동료나 후임 장병들은 든든했을 것 같다. 말은 ‘대체 왜 남는 거냐’, ‘왜 여기 더 있느냐’ 하면서도 다들 좋아했다. 함께 근무하던 간호 장교님이나 행정관님도 남아줘서 고맙고 힘이 된다고 말씀하셨고, 전역 날 함께 식사도 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함께 고생하다 보니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

Q. 상황이 긴박한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 공사를 진행한 일주일은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다. 정신없이 공사를 하고, 공사 후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병동 청소와 예행연습을 했다. 환자를 받고 체계가 갖춰진 뒤에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았다. 민간인 환자다 보니 통제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아 힘들었고, 흡연하던 환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Q. 지치고 힘들 때 힘이 되어준 것이 있나? 아무래도 함께하던 동료와 간호 장교님이었다. 병사들보다 더 고생하는 간호 장교님들을 보면 안타까워 구호품을 더 많이 챙겨드리기도 했다. 병사 입장에서는 배달 도시락이 질릴 무렵 들어온 ‘프라이드 치킨’ 같은 음식이 무척 반가웠다. 외지 음식을 자주 못 먹는 병사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됐는데, 너무 많이 보내주셔서 병사 한 명당 한 마리씩 먹을 정도였다.

Q. 힘이 되는 순간이나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전역 직전 표창장을 받았을 때, 그리고 전역 날 첫 완치자와 함께 병원을 나왔을 때,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며 뿌듯했다.

‘혹시 바이러스가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는 함께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보태던 장형정 소령도 있었다. 누군가의 딸이자 세 남매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군인인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주저 없이 ‘군인’을 선택했다. 지난 2월 ‘포천’으로의 전출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대구, 경북 상황이 급격히 심각해지자 장 소령은 대구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전출 전 휴식을 취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주말 사이 급변하는 상황을 보며 자의로 내린 판단이었다.

포천으로의 전출을 앞두고, 대구에 남겠다고 자원했던 장형정 소령
포천으로의 전출을 앞두고, 대구에 남겠다고 자원했던 장형정 소령 ⓒ질레트 코리아 제공

Q. 대구에 남기로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군인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면 포천으로 가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6·25전쟁 참전 용사인 외할아버지는 “나라의 녹을 먹고, 나라를 위해 일하기로 했다면 나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치셨다. 좌우명이 된 외할아버지 말씀 따라 군인인 이상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구에 남기로 했다.

Q. 국군대구병원에서 맡은 임무는 무엇이었나?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상급 부대와 유관 기관 간 업무 연락을 통해 부족한 인력을 지원받고, 파견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 후 관리하는 역할이다. 민간 간호조무 인력 관리, 방역과 안내 팀 업무도 총괄했다.

Q. 당시 대구의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가? 국군대구병원이 국가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된 2월 24일부터 첫 확진자를 받은 3월 5일까지 하루하루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확진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개소 일자도 앞당겨졌다. 결국, 시설 공사를 비롯해 인력과 물자 배치 등의 시스템을 5일 내에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장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 3만 보 이상 걸었고, 겨우 짬을 내 의자에 앉으면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에 5t 트럭 3대 분량의 물자를 옮기고 정리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Q. 준비를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마스크와 장갑만 낀 채 확진자 초진 장소였던 교회를 소독할 때는 ‘혹시 바이러스가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보며 절망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공포가 극에 달했던 시기라 환자 대면 업무를 꺼리는 일부 간부들이 있었다. 그 마음도 이해되어 억지로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력 공백을 채울 방도가 없어 암담하던 차에 신임 간호 장교들이 투입됐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결 방법이 생기더라.

지난 4월 10일, 5주간의 국군대구병원 의료 지원을 무사히 마친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신임 간호 장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지난 4월 10일, 5주간의 국군대구병원 의료 지원을 무사히 마친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신임 간호 장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뉴스1(육군 제공)

Q. 그렇다면 반대로 힘이 되는 순간이나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개소를 3일 남긴 긴박한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민간 간호 조무 인력 40명을 요청했다. 이곳에서 전달받은 연락처로 한 분 한 분 연락해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턱없이 촉박했는데도 ‘가겠습니다’, ‘안 돼도 가야죠’ 하며 흔쾌히 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힘을 많이 얻었다.

Q.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기부 물품이 국군대구병원에도 많이 도착하지 않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사탕과 초콜릿을 하나하나 포장하고 정성스러운 손편지까지 써 보내준 어린 남매의 선물이 기억에 남는다. 펼쳐 보는 순간 아이들의 정성과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아이들도 이런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어렵사리 구한 KF94 마스크 한 장, 수많은 격려 편지, 양구 군청에서 준비한 사과즙과 시래기 등 감동적인 기부 물품이 무척 많았다.

 

# 숨은 영웅들과 함께한 특별한 기부

군인에겐 영웅이란 말이 늘 세트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갈등이나 노력은 ‘군인’이란 신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군인이라는 포, 차를 다 떼고 생각해보면 그들도 감염이 두려운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의무’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 질레트가 나섰다. 질레트는 ‘#덕분에챌린지’의 일환으로 숨어있는 ‘코로나19 영웅’을 선정해 특별한 기부를 진행했다.

숨은 영웅에는 이제 민간인이 된 정세문 (예)병장, 장형정 소령, 그리고 인천국제공항 검역소 및 국군대구병원에서 헌신한 국군수도병원 서지원 대령까지 총 3명이 선정됐다. 질레트는 이들의 이름으로 면도기 및 면도젤 세트, 그 외에 각 병원에 필요한 위생용품과 장비 등을 지원했다. 질레트 제품 외에도 정세문 (예)병장은 근무했던 부대에 병사들의 필수품인 선크림을, 장형정 소령은 소속된 국군포천병원에 환자들을 위한 그늘막 캐노피, 마지막으로 서지원 대령은 국군수도병원에 자동 센서형 손소독제를 기부하면서 마지막까지 동료와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보여줬다.

장형정 소령이 기부한 질레트 면도기 및 면도젤 세트를 들고 있는 국군포천병원의 장병들의 모습.
장형정 소령이 기부한 질레트 면도기 및 면도젤 세트를 들고 있는 국군포천병원의 장병들의 모습. ⓒ질레트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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