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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권 축소, 목조르기 금지 : 미국 민주당은 이렇게 경찰을 개혁하려고 한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경찰 개혁 요구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이 광범위한 개혁안을 공개했다.

  • 허완
  • 입력 2020.06.09 15:01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 가운데)을 비롯해 의사당에 모인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워싱턴DC, 미국. 2020년 6월8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 가운데)을 비롯해 의사당에 모인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워싱턴DC, 미국. 2020년 6월8일. ⓒCaroline Brehman via Getty Images

미국 민주당이 경찰의 인종차별적이고 강압적인 법 집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경찰 개혁 법안 초안을 8일(현지시각) 공개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관의 ‘목조르기 체포’ 과정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지 2주 만이다.

법안에는 경찰관들의 면책 요건을 크게 축소하고, 목조르기 체포와 긴급 가택 수색를 금지하는 한편, 직권을 남용해 해고된 경찰관들이 다른 지역에서 쉽게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들이 담겼다. 

민주당 하원의원들과 상원의원들은 법안 패키지를 공개하기에 앞서 강압적 법 집행 과정에서 숨진 흑인들의 이름을 읊었고, 정확히 8분46초 동안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백인 경찰관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던 시간인 8분46초는 경찰 폭력을 고발하는 일종의 상징이 됐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인 만큼 이 법안들이 발의되면 하원을 손쉽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은 일단 내용을 검토하고 자체적인 개혁 방안들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있는 모습. 올랜도, 플로리다주. 2020년 6월8일.
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있는 모습. 올랜도, 플로리다주. 2020년 6월8일. ⓒASSOCIATED PRESS

 

일부 시위대가 주장하는 경찰 예산 축소 또는 지원 중단에 관한 내용은 이번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의 선거캠프 대변인은 경찰 예산을 축소하는 방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바이든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번 법안에 포함된 내용 중 상당수는 연방정부의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예산 지원을 제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다. 미국 경찰·사법제도의 특징 때문이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중앙집권적인 단일 경찰 조직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담당 분야에 따라 1만8000여개에 달하는 서로 다른 경찰(보안관 등 다른 법 집행기관 포함) 조직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찰력이 집행 되는 일선의 경찰조직들을 관할하는 지역 정부 차원의 개혁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들은 연방정부 차원의 광범위한 경찰 개혁안이 제안된 건 근래 들어서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바이든 정부’에서 도입될 수 있는 경찰 개혁 조치들을 엿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로이터가 요약해 소개한 이번 법안의 주요 내용 10가지를 보충해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민주당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경찰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광범위한 개혁 조치들이 담긴 법안 초안을 마련해 공개했다. 워싱턴DC, 미국. 2020년 6월8일.
민주당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경찰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광범위한 개혁 조치들이 담긴 법안 초안을 마련해 공개했다. 워싱턴DC, 미국. 2020년 6월8일. ⓒBRENDAN SMIALOWSKI via Getty Images

 

1. ‘공무 면책권(qualified immunity)’ 보호 조항 폐지

그동안 경찰을 비롯한 법 집행관들은 체포나 수색 과정에서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더라도 광범위한 면책권을 인정받아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연방대법원도 판례를 통해 이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피해자들이 헌법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해도 이기기 어려웠던 핵심적인 이유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를 손 보려고 한다.

2. ”고의로”를 ”알았거나 개의치 않고 묵살”로

폭력이나 공권력 남용 등의 혐의가 제기된 경찰관들을 기소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해당 경찰관이 ”고의적(willful)”으로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연방법의 해당 조항에서 이 문구를 수정해 경찰관이 행동의 결과를 ”다 알면서도 또는 개의치 않고 묵살(knowingly or with reckless disregard)”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명확한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더라도 일종의 ‘미필적 고의’로 간주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법적 책임을 지우도록 한 것이다.

3. 치명적 무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국에서 경찰관들은 스스로 생명의 위협에 처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상대방(용의자 등)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력(총기 등)을 동원할 수 있다. 그 ”타당성”은 손쉽게 인정된다. 총기 보유가 보편화되어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은 그와 같은 무력 사용 허용 기준을 ”타당성” 대신 ”필요성”으로 제한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수단들을 전부 활용했음에도 죽음이나 신체적인 부상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에만 ‘치명적 무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4. 경찰관 징계 이력 데이터베이스 구축

민주당은 법무부가 전국의 연방 경찰, 주 경찰, 지역 경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에 대해 제기된 소송 기록과 이들의 징계 이력들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기구를 설치하도록 할 계획이다. 비위행위나 공권력 남용으로 해고된 경찰관이 다른 지역의 경찰부서로 옮겨 쉽게 재취업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5. 인종 프로파일링 금지

오랫동안 미국 사법기관에서 관행으로 굳어져왔던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인종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특정하거나 추론, 수색하는 이 수사기법에 대해서는 인종차별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료사진) 2020년 5월25일 - 행인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경찰관 데릭 쇼빈은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8분 넘게 누르고 있었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전 세계 경찰들이 오랫동안 활용해왔던 제압 수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료사진) 2020년 5월25일 - 행인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경찰관 데릭 쇼빈은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8분 넘게 누르고 있었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전 세계 경찰들이 오랫동안 활용해왔던 제압 수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Darnella Frazier via AP

 

6. 목조르기 금지

부검 결과, 플로이드의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됐다. 민주당은 목조르기나 ‘무릎으로 목 누르기’처럼 호흡이나 혈액순환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일체의 체포 수법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7. 긴급 가택수색 금지

민주당은 마약 관련 사건 수사에서 용의자의 집에 예고 없이 처들어갈 수 있는 긴급 가택수색(이른바 ‘no-knock’ 수색) 영장 발급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시킬 계획이다.

지난 3월 켄터키주에서는 잘못된 주소가 적힌 이 영장을 들고 수색에 나섰다가 벌어진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흑인 응급의료사 브레오나 테일러(26)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8. 바디캠 착용 의무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연방정부에 소속된 모든 사법기관의 경찰관은 몸에 바디캠을 착용해야 한다. 차량에도 ‘대시보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지역 경찰조직들은 연방정부 예산을 활용해 바디캠과 대시보드 카메라 도입을 확대하도록 했다. 다만

9. 군용 무기 및 장비 이전 규제

법안은 군부대가 군용 장비를 지역 일선 경찰서들에 이전하는 것을 제한하도록 했다. 대테러 작전이나 마약 단속, 국경 안보 등을 담당하는 경찰 부서 및 조직에만 예외가 적용된다.

10. 법무부 감독 강화

민주당은 연방정부(법무부)가 각 경찰 조직의 부당한 법 집행 사례들에 대한 조사를 벌일 수 있도록 소환장 발부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 주 검찰이 이와 비슷한 권한을 갖고 수사를 벌일 수 있도록 향후 10년 동안 총 1억달러의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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