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옷과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위해 30년 경력의 장인이 나섰다

더 멋진 옷을 입기 위한 사투가 아니다

동묘 구제시장을 방불케 하는 자유분방한 옷방의 풍경. 우리는 아침마다 옷 하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서랍장을 뒤지는가 하면 옷더미를 파헤치는 등 옷과의 전쟁을 벌인다. 완벽한 코디를 하느라 옷을 수십 번 벗고 입은 적, 한 번쯤 있지 않은가.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사력을 다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정말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입고 있을까?

뇌병변 장애를 가진 변자영 선수는 아침 준비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2~3배로 걸린다. 예쁜 데일리 룩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옷을 입는 것이 어려운 그녀는 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는다.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전 보치아 경기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그녀지만, 옷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훈련 중에도 몇 번이고 바지가 흘러내려 집중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오른쪽 변자영 선수
오른쪽 변자영 선수

소근육 장애가 있는 고등학생 제성민 군도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손동작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 셔츠 단추를 잠그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성민 군의 등교를 돕는 가족들 역시 정신없는 아침 시간을 보낸다.

뇌병변장애는 뇌성마비나 뇌졸중 등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돼 보행 및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장애이다. 이들에게 옷은 일상을 돕는 보조기구다.

일반적인 쇼핑도 어렵다. 자신의 취향보다 입고 벗기 편한 옷, 자신의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를 선택해야 한다. 옷을 수선해 입기도 힘들다. 이들을 위해 리폼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보기 드물뿐더러, 있더라도 수선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엔 환복 시 골절상을 입기도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장애 정도나 소득수준에 따라 직업훈련이나 보조공학기기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옷’은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뇌병변 장애인의 옷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모였다

매일 아침, 말 그대로 옷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이들을 위해, 베테랑 장인과 장애인의 보조기기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공학사가 나섰다. 지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맞춤옷을 만들어온 의류 재단사가 뇌병변 장애인들의 옷을 리폼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조공학사는 스타일 리스트를 자처해, 장애인의 체형과 취향에 맞춰 옷을 만드느라 머리를 싸맸다.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지원으로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캠페인(이하 리폼 캠페인)’이 진행된 덕택이다. 리폼 캠페인은 서울시,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진행하고, 유니클로가 지원하는 뇌병변 장애인 맞춤 리폼 서비스다.

경력 30년 이상의 베테랑 맞춤 의류 재단사는 장애 당사자의 취향을 살려 세련된 옷을 만든다. 편안한 아우터는 물론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릴 수 있는 셔츠까지. 셔츠를 입을 때 편하도록 단추 자리 안쪽에 지퍼를 달았다. 팔이 구부러진 채 굳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겨드랑이 밑, 팔 안쪽에 지퍼를 달았으며, 후드 집업은 망토 형식으로 변형했다.

근육 경직으로 팔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이 팔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옆라인에 지퍼를 추가했다
근육 경직으로 팔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이 팔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옆라인에 지퍼를 추가했다

유니클로 리폼 캠페인은 지난해 총 405명의 뇌병변 장애인들에게 9천5백만 원 상당의 맞춤형 리폼 의류 약 2,370벌과 1억 1천만원의 사업 진행금 등 총 2억원 규모의 의류 및 기부금을 지원했다.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반영함에 따라 참가자의 72%가 리폼 의류를 통해 일상생활이 편리해졌다고 응답했다. 올해는 지원이 더 확대된다. 실시 지역을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까지 확대해 총 800명의 뇌병변 장애인에게 맞춤형 리폼 의류 4,000벌을 지원할 예정이다. 벌써 전국 각지에서 “우리 지역에서도 캠페인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자수 한 땀을 더 들이는, 예쁜 리폼이 아니다

재단사와 보조공학사는 바늘 한 땀으로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꿈꾼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옷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옷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재단사는 사이즈 등 의류에 대한 요청 사항이 다양하고 형태 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맞춤복 수준의 난이도로 제작했다고. 김지현 보조공학사는 “장애인 의류 리폼은 때에 따라 옷을 거의 다시 재단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재단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유니클로의 지원으로 30년 이상 경력의 재단사 등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단사가 밤낮으로 고민해 만든 바지 한 벌이 어느 장애인에게는 생애 첫 맞춤옷이 됐다. 변자영 선수도 새로 받은 옷이 훈련 내내 든든한 조력자가 돼 줬다. 보조기기 때문에 뒷부분이 뭉쳐지기 일쑤였던 옷은 새로 디자인돼 그녀가 보조기기를 착용하고서도 딱 맞다. 덕분에 옷에 방해받지 않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성민 군은 지퍼로 쉽게 잠글 수 있는 셔츠와 단추를 교체한 바지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었다. 등교 준비도 훨씬 빨라졌다.

이들에게 리폼 캠페인은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맞춤 리폼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는가. 유니클로는 ‘옷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라는 지속가능경영 이념 아래, 뇌병변 장애인들이 장애와 상관없이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선택하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리폼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다.

‘2020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캠페인’ 신청 관련 자세한 내용은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또는 서울시보조기기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