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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와 경기도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 후 1달 지난 현재 상황 (인터뷰)

시민 4명이 돈을 쓴 결제 내역을 받아봤다

  • 박수진
  • 입력 2020.05.10 11:53
  • 수정 2020.05.10 11:57
자료사진: 3월12일 서울 망원시장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
자료사진: 3월12일 서울 망원시장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 ⓒWoohae Cho via Getty Images

재난의 고통은 개별적이고 상대적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먹고, 입고, 병원에 가야 한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재난이 주는 고통을 기존의 제도는 모두 살피기 어려웠다. 재난기본소득은 여기서 출발했다. <한겨레>는 4월 말부터 재난기본소득을 최초로 지급한 전주시(지난달 3일 지급),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이끈 경기도(지난달 9일 지급)를 돌며 ‘기본소득이 도움이 됐나요?’ 물었다. 한달의 풍경이 그려졌다.

한 60대 여성은 동네 슈퍼에서 가족이 먹을 쌀부터 구입했다. 열흘 넘게 아끼다 병원비로 절반을 들인 중증장애인, 두달째 손님 없이 멍하니 앉아 있던 동네 김밥집 사장님이 안타까워 꼬마김밥 5500원어치부터 산 실직자도 있다. 절박하진 않아도 필요한 일에 쓴 경우도 있다. 아이 둘의 학원비를 낸 사람, 한달 목욕권을 끊은 이도 있다.

누구는 기본소득만이 희망이라 하고, 반대편에선 기존 복지제도 확충을 주장하며 불편해한다.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는 이들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52만7천원을 받아 삶의 끈을 붙잡은 이가 전주에 있고, 경기도 한 시장은 20만원 덕에 숨통이 트였다.

1. 일을 잃은 30대 아들들을 부양하게 된 전주의 60대

슈퍼·식당·병원에서 ‘빨간 카드’ : 전주시 52만7천원

“받자마자 아들이랑 동네 마트 가서 쌀부터 팔고 고기도 좀 샀죠잉.”

지난 4월22일 <한겨레>는 60대 요양보호사 ㅂ씨를 만나 그가 11일 동안 쓴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의 사용 명세를 살펴봤다. 4월11일 전주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에 해당되는 건강보험료(지역 4만7260원, 직장 7만4670원 이하)를 부담한 개인에게 재난기본소득 52만7천원을 일률적으로 지급했다. ㅂ씨 등 전주시민이 받은 이 돈은 코로나19 사태 뒤 전국 최초로 지급된 재난기본소득이었다.

이날 ㅂ(62)씨의 ‘전주함께하트카드’ 사용 명세에 처음 등장한 상호는 그의 집 인근 슈퍼마켓이었다. 오전 11시18분 은행의 카드 발급과 동시에 ㅂ씨의 휴대전화에 사용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30여분 뒤인 오전 11시55분 그의 첫 사용처로 그 슈퍼마켓이 떴다. “받자마자 신나서” 30여분 만에 그는 18만5240원으로 소고기 등 식료품을 샀다. 고기 파티를 한 다음날 저녁엔 아들 둘과 오랜만에 피자(2만1900원)를 시켜 먹었다.

코로나19라는 “숭악헌” 것이 오기 전까진 풍족하진 않지만 아껴가며 살 만은 했다. 요양보호사를 택한 건 60대 여성으로서의 궁여지책이었다. 수입은 한달 100만원을 겨우 넘었다. 쪼들리지 않았던 것은 두 아들 덕분이었다. 30대인 아들 둘 모두 대리운전 기사다. 아들 탓을 할까 싶었는지, “내가 못 배우고 가난해서 더 가르치지 못해서 그렇지 성실하다”고 했다.

두 아들의 벌이만 3인가구 기준 중위소득(387만원)은 가뿐히 넘었다. 그런데 2월 말 코로나19가 전국적인 폭증 조짐을 보인 뒤로는 상황이 급변했다. 공포는 사람들의 발길을 묶었다. 거리는 텅 비었고, 결국 두 아들은 일자리를 ‘거의’ 잃었다. 대리기사를 찾는 사람이 없어 실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였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니 실업급여를 바랄 수도 없다. 게다가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은 중위소득 100% 이하(의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지급되니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두 아들 모두 대상자가 아니다. ㅂ씨의 요양보호사 일과 52만7천원으로 당분간 버텨야 했다.

사용 명세를 살펴본 4월22일 현재 남은 돈은 12만9320원. 지난 11일 동안 39만7680원을 썼다. “내친김에 ‘아들 놈 차’에 기름도 3만원어치 넣어줬(4월14일)”고, 그다음 날 “오며 가며 장사가 너무 안되는 거 같아 자꾸 눈에 밟혔던 동네 꽃집”에서 봄꽃 화분 세 개를 사기도 했다(결제금액 1만7500원). 그래도 식재료비(간식 제외)가 26만5780원으로 제일 많았다. “일 없는 아들 둘이 집에 있다보니 식비가 평소보다 더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자잘한 병을 달고 살아온 ㅂ씨는 약국에서 파스 등(1만4천원)도 샀다.

24일만에 소진하다

기본소득을 60원 남기고 모두 소진한 것은 5월4일. 지급 24일 만이었다. 다 써보니 처음과 생각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공짜로 신세지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하다”던 그가 “참 잘 썼다. 또 받으면 아들들이랑 기분도 좀 내고 잘 쓰겠다”고 했다. ‘또’는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3인가구 80만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4월 중순이 넘어서면서부터 아들들 일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불안하다”고 했다. ㅂ씨 자신의 일도 줄어들 낌새가 보인다. 엄연한 현실이다.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환자는 대부분 고령의 환자다.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하다. 열 집을 하루 서너 군데씩 돌지만, 다음달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실제로도 요양보호사를 포함해 사회복지사, 학원 강사, 어린이집 교사 등의 일자리가 8만3천개 줄었다.(3월 고용통계 전문직 일자리 기준) 그래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80만원은 든든하다. “평생 세금 한번 안 밀리고 죄 없이 살았응께 어려울 때 이 정도는 받아도 괜찮지 않겄냐고 아들이랑 얘기했다니께요.”

전주에서 가장 많이 받은 세대는 60대

ㅂ씨는 졸지에 두 아들을 부양하는 신세가 됐지만, 수치로 들여다보면 여러 면에서 전형적이었다. 전주시가 <한겨레>에 제공한 4월28일까지의 ‘전주함께하트카드’ 이용 현황을 보면, 발급자 1만8595명 가운데 ㅂ씨와 같은 60대가 5694명(31%)으로 가장 많았다. 50대(29.8%), 40대(18.6%)가 그 뒤를 이었다.

전체 사용자의 소비패턴도 ㅂ씨와 유사한 경로를 보인다. 전주시 자료를 업종별로 보면, 재난기본소득 중 슈퍼마켓에서 쓰인 돈이 39%로 압도적이다(20억1400여만원). 다음은 식당 22%(11억3900여만원), 병원 7%(3억3400여만원) 순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에 맞게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에 사용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생계형(생존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섯번째로 많은 소비가 운동용품(4%)이다. 취재 과정에서 ㄷ목욕탕에 10만원이 결제된 내용이 있어 현장을 찾았다. 한 60대 남성이 월 쿠폰을 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에 몇번 목욕탕을 찾는 알뜰한 ‘호사’를 기본소득의 도움을 받아 누린 셈이다. 이렇게 전주형 기본소득으로 지급된 돈은 총 97억9900여만원이다. 이 가운데 52.2%(51억1600여만원)가 25일 만에 소진됐다.

ㅂ씨의 재난기본소득 선불카드 사용 내역 문자 재구성
ㅂ씨의 재난기본소득 선불카드 사용 내역 문자 재구성 ⓒ한겨레

2. 가족 중 유일한 소득원인 전주의 30대 장애인

(재난)기본소득이 가장 필요한 1순위 : 장애인

“안경을 바꾸고 싶은데….” 같은 날 전아무개(35)씨를 만난 것은 전주시 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였다. ㅂ씨가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을 대표하는 인구집단에 속한다면, 전씨는 지급이 가장 시급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명현 경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우선순위 설정에 관한 연구’(2011)라는 논문에서 “기본소득이 가장 시급한 인구집단은 ①등록장애인 ②모든 개인 ③65살 이상 노인 ④18살 미만 아동 ⑤15~29살 청년 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당 순서는 기본소득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수치화한 것”이라며 “연구자들은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돼 있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1순위로 등록장애인을 꼽았다. 특히 연구자들은 등록장애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도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전씨가 내민 휴대전화에서 명세를 살피니 지급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잔고가 49만여원이다. 그것도 동네 마트에서 라면 등을 포함해 찬거리 사느라 2만3천여원을 쓴 게 전부였다. “쓸 만한 곳이 없어서”라고 했다. 이는 ‘필요하지 않아서’와 엄연히 다르다. 의외로 많이 남았다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아껴두고 있다”고 답했다. 일자리는 늘 불안하고, 병원을 가야 할 상황도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 부모님은 은퇴해 연금에 의지한다. 가족 중 제대로 된 소득은 전씨가 유일하다. 그는 장애인이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한다.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일로 한달 벌어들이는 수입은 100만원 남짓이다. 그에게는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도 일상이 비상 상황이었다. 전씨는 “코로나19가 왔지만 마스크를 좀 더 꼼꼼하게 쓰는 것 빼면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이런 그가 재난기본소득 52만7천원을 받은 뒤 마침내 ‘큰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5년도 더 돼서요.” 안경을 매만졌다. 렌즈만 20만원이 넘어 평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기본소득이 생긴 뒤 ‘새로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전주시 재난기본소득 소비 분야 중 안경은 열번째(1%)다).

“그다음 신발 한 켤레 사고, 엄마한테 물어봐서 장 한번 보고.” 병원은 오히려 후순위다. 목과 허리가 좋지 않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참고 지낸다. 열흘 뒤 그에게 SNS로 메시지를 남겼다. 소비 명세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한참 걸려 “14만원 정도 남았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1분이 흘렀을까, “이틀 전(4월30일) 목과 등에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말이 떴다. “병원비만 20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지금도 목과 등… 통증이 있어서 힘드네요…”라고 연이어 메시지가 떴다. “식재료 구입비로 18만원 정도 썼다”는 문장도 추가됐다.

이틀 뒤 다시 말을 걸었다. 전씨는 “통증이 여전해 일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입원으로 일이 줄어 이달 수입은 100만원 아래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연이어 받게 될 정부가 주는 기본소득(긴급재난지원금)”이라며 “우리 집은 4인가구이니 100만원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종종 활짝 웃던 그의 표정이 궁금했다. 그는 낡은 안경을 바꿀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갑작스럽게 아파서 일을 못 나갈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라는 말로 그의 메시지는 끝이 났다.

보편 아닌 선별 소득 선택한 전주시의 입장

전주시에서 ㅂ씨와 전씨처럼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인원은 4월28일을 기준으로 1만8595명이다. 지급 대상자임을 알리기 위해 행정망을 총동원해온 전주시는 9일 이후 최대 4만5천여명이 기본소득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 전주시는 시민 전체에 고루 혜택이 가지 않은 것에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전체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했으면 좋았겠지만 시 재정으로는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이었다. 이번 제도 시행으로 기본소득의 효용성은 어느 정도 입증됐다고 본다”며 “앞으로 이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는 지급이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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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기도와 수원시에서 총 40만원 받은 40대 부부

선별지급을 택한 전주시와 달리 경기도는 ‘전도민에게 10만원씩 지급’을 전격 시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경기도의 결단으로 도내 기초자치단체 31곳까지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했거나 지급했다. 경기도민들은 적게는 1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기본소득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보편지급은 재난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선별하다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으면서 시행됐다. 재난 상황의 긴급성이 기본소득의 보편성을 보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수원시는 10만원을 지역화폐가 아니라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좀 더 완전한 기본소득제도를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처럼 그나마 운이 있었던 사람까지 인터뷰할 필요가 있을까요.” 경기도 수원에서 ㅊ(40)씨를 만난 것은 4월28일. ㅊ씨는 평소 쓰는 신용카드로 경기도로부터 10만원을, 수원시로부터는 개인 통장으로 10만원을 받았다. 개별지급이지만 2인가구라 남편 몫까지 계산하면 총 40만원이다. ㅊ씨가 말하는 ‘운’은 두 가지다. 그는 코로나19로 실직한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런데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 몇달이나마 버틸 여력이 생겼다. 비정규직 고용보험 가입률이 열 중 넷에 못 미치는 현실을 고려해 그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1월까지 일했던 병원은 1년마다 재계약을 했다. 재계약 즈음인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이 주 수입원인 병원에 예약 취소가 밀려왔고, 비정규직이던 ㅊ씨는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ㅊ씨의 상황은 고용노동부의 3월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상용근로자는 전년 동기 대비 8천명(-0.1%)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임시 일용근로자는 12만4천명(-7.0%) 줄었다. 100만원이 조금 넘는 실업급여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따져보던 중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ㅊ씨가 두번째 운이라고 한 것은 “남편의 직업”이었다. “자랑할 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경기도 소재 대기업의 정규직이다. 그래도 요즘 같은 시기에 50대까지 지금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운이 따른 이에게도 불안은 예외가 아니다. “가끔 산책 나올 때 단지 앞 ㅎ김밥에 손님이 없어 사장님이 테이블에 멍하게 앉아 있는 게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니까요.”

열흘 동안 5km 이내에서 10만원 소비

ㅊ씨와 함께 4월14~24일 동안 그의 카드 명세(경기도 지급)와 통장 명세(수원시 지급)를 되짚어봤다. 첫 소비 장소는 ㅎ김밥이었다. ㅎ김밥집에서 두번 사용했다. 그외에 국밥집 1회, 죽집 1회, 수원 못골시장 ㄷ반찬 1회, 동네 커피숍 1회, 약국 1회, 병원 1회 등 5㎞ 반경 안에서 경기도 기본소득 9만5380원을 썼다. 수원시가 준 10만원은 어머니·언니와의 하루 밥값(점심·저녁·야식 등)에 썼다. 서울에 사는 김씨의 언니는 선별지급 대상(50% 이하)이 아니어서 ㅊ씨가 “한턱내게 됐다”고 했다. 수원시 기본소득은 지역화폐처럼 사용 지역과 업소가 한정되는 꼬리표가 붙지 않아 더 자유롭고 조금은 호기롭게 쓸 수 있었다.

ㅊ씨 남편 ㄱ씨의 소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4월29일 ㅇ정육점 3만1270원, 5월1일 ㅊ김밥 1만4천원, ㅇ곰탕 2만6천원 등을 제외하면 마스크나 상비약을 약국에서 구입한 게 전부였다. 3830원이 남았다. 그리고 수원 기본소득 10만원엔 따로 계획이 있었다. 오는 주말 둘은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ㅊ씨처럼 경기도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한 인원은 1천만명을 넘었다(1일 0시 기준 1031만9331명). 이는 전체 지급 대상자(1327만명)의 77.7%다. 현금 10만원을 지급하는 수원시는 신청 첫날에만 43만명이 몰렸다.

4. 안정적인 일자리와 수입 있는 상태에서 120만원 받게 된 40대 4인가족 가장

화성시에 사는 ㄱ씨는 도내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한다. 경제적인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4인 가족이니 경기 기본소득을 더해 120만원이 생긴 셈이다. 물론 식료품비, 식당(외식)비 등 씀씀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이 항목들은 곧바로 정상화됐다. ㄱ씨가 7일 공개한 소비 명세를 보면, 아파트 단지에 있는 ㅎ마트에서 9만3470원으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하고, 가족과 ㅎ식당에서 10만5천원어치 갈비를 먹은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다른 패턴도 보였다. 교육비(학원비)로도 기본소득을 쓴 것이다. ㄱ씨의 두 자녀는 초등학생, 중학생이다. ㄱ씨 가족은 “외식도 하고 장도 보면서 아이들 엄마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가족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정육점에 재난기본소득 사용이 가능하다는 알림글이 붙어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한 정육점에 재난기본소득 사용이 가능하다는 알림글이 붙어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한겨레

작은 가게들에 사람들이 오고 있다

개별의 삶에 숨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곳이 들썩이고 있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한 동네 상권이다. 선별지급인 전주든, 보편지급인 경기도든 대형마트를 사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시장 이용의 증가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4월15일 총선 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확진자 감소 등 여러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기본소득이 마중물이 됐다는 사실이다.

4월22일 찾은 전주 남부시장. ‘동래분식’은 20년이 넘은 팥죽집이다. 스무개가 안 되는 테이블이지만 시장에서는 꽤 큰 규모로 꼽힌다. 무엇보다 팥죽, 팥칼국수는 회전율이 빨라 ‘대박집’으로 한 종편채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달에 벌어들이는 수입만 4천만원이 넘었는데, 점심때 전체 손님이 서너 차례 회전할 정도였다. 그러다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하루에 한두 테이블이나 들었을까.

매출의 절반이 복구된 게 빨간 카드(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카드)가 보이기 시작한 4월 중순 이후다. 카드 결제 10건을 기준으로 3~4건이 빨간 카드로 지불됐다. 팥죽을 휘젓는 이정미(54)씨는 “회복될 기미는 보인다”고 했다. 마침 한 손님이 앉자마자 “이걸로 팥칼국수 한 그릇 될랑가”라며 카드를 꺼내 든다. 빨간색이다. 한아무개(61)씨는 “52만원이 생긴 김에 얼마 전 다리를 다쳐 밥상머리에 앉기 힘들어진 남편이랑 쓰려고 시장 안 중고가구점에서 20만원짜리 식탁을 흥정하다 돌아서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이렇게 4월3일 지급 이후 28일까지 전주시 슈퍼마켓에서 소비된 금액이 20억원이 넘는다.

전주 신중앙시장도 “예전 같지는 못해도 이 정도면 버틸 만은 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왔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반봉현 신중앙시장상인회장은 “한 건을 팔기도 어려운 3월을 지나고 평소의 3할 정도는 회복했다”고 했다. 물론 모두가 나아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점포별 편차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고사 직전이던 전통시장 등 동네 상권에 최소한 ‘버틸 수 있도록’ 호흡기를 댔다는 평가가 나온다.

“5월1일부터 시작된 연휴는 명절 못지않은 대목이었죠.” 수원 못골시장(팔달구)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충환(49·경기도상인연합회장)씨는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28일 못골시장을 찾았을 때 평일임에도 가게 곳곳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붐볐다. 닭강정집을 운영하는 권경래씨는 “3월만 해도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하루 10여명 될까 말까였다. 4월 중순 이후로 늘기 시작해 지금은 이렇게 사람이 많다”고 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9천원짜리 닭강정을 끝으로 모든 메뉴가 매진됐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경기도 시장상권진흥원이 지난달 22~28일 도내 자영업자 1014명을 대상으로 재난소득 효과를 물어보니,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7명꼴로 매출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특히 54.9%는 재난소득이 지급된 지난달 9일 이후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소비 현황을 알 수 있는 지표는 또 있다. 한국신용데이터가 전국 주요 지역 카드 가맹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경기도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5% 선을 유지했다. 2월 마지막 주 75%까지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회복세가 눈에 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달 11일부터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 신용카드와 지역화폐로 지급됐다.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후인 4월 셋째 주부터 신용카드 사용 회복률이 현격하게 높아졌는데 이는 재난기본소득 이외에 달리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시장의 호의적인 반응 뒤로 일부에서는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으로서만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도 지속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재원이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장은 “토지세 등 조세로 확충하는 방안이 주요하게 거론되지만 도로 등 에스오시(SOC) 사업을 줄이는 등 기존 재원 배분을 달리해서도 가능하다”며 “결국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재원 확보가 불가능한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으로 모자란 점이 물론 있죠. 다만 저는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를 얘기하고 싶어요.”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을 설계한 핵심 관계자로 꼽히는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산이 충분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주시민 모두에게 주지는 못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고집한 것은 지원금이라는 말이 주는 낙인효과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실의 제약 안에서 재난의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해서 선별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본소득을 논할 때 핵심적인 개념으로 보편성(인구집단 등 지급 제한 없음), 무조건성(소득 등 조건 무관), 개별성(개인 지급) 등을 꼽는다. 여기에 충분성(기본욕구 등 충족), 현금지급 등을 필수요건으로 삼는 연구자들도 존재한다. 전주소득은 이 요건 가운데 무조건성이 결락됐다. 재정적 한계 때문이다. 중위소득 100% 이하에 해당되는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지역 4만7260원, 직장 7만4670원 이하)의 조건에 맞는 시민 4만5천여명을 추려서 지급한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4월2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보편성이나 무조건성은 정부가 관철시켜줬으면 한다”며 “대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정 최저생계비(52만7천원)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김미곤 위원도 “재난은 모든 당사자에게 동질적이지 않다. 기본소득이라는 취지를 지키면서도 재난의 충격을 더 받은 그룹을 특정한 다음 생존을 유지하도록 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선별성과 충분성의 의미를 더했다.

전북 전주시 전북은행 본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대상자로 확정된 시민에게 선불카드인 '전주 함께하트 카드'가 지급되고 있다. 2020.4.3
전북 전주시 전북은행 본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대상자로 확정된 시민에게 선불카드인 '전주 함께하트 카드'가 지급되고 있다. 2020.4.3 ⓒ전주시 제공

전주소득이 ‘과도기적’ 기본소득이라면, 경기소득은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간 ‘부분’ 기본소득으로 분류된다. 매달 지급처럼 정기성을 갖추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경기도 내 31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시군별 기본소득 지급에 참여하면서 효과는 배가됐다.

벌써부터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이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이미 찾아온 뉴노멀 사회의 새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장은 “경기지역은 이번 기본소득 지급과 관련해 면밀히 분석한 다음 평상시에도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제도로 기본소득을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본소득이 시장에 풀리면서 시장 활성화 등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청년기본소득 등 여러 지원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효과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방식 등이 중요해진 만큼 지역화폐 소비 등을 현장에 맞게 조정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자체 등 실행 주체의 의지가 기본소득 도입에 가장 중요하다. 전주시는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한 별도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승수 시장은 “일회적으로 가져다 쓴 개념은 아니다. 재난 뒤 효용성을 따져 복지제도로서 정착할 수 있도록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기본소득의 현실화 측면에서 이재명 도지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을 만큼 의지가 확고하다. 이 지사는 지난 5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상적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현재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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