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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편집장] 봉준호 감독이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어땠을까?

봉준호에 대한 찬사 중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 강병진
  • 입력 2020.02.10 17:43
  • 수정 2020.02.12 14:50
ⓒJEAN-BAPTISTE LACROIX via Getty Images

봉준호 감독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준비할 때부터 그를 취재했고, ‘괴물’(2006)의 촬영현장을 취재했던 영화전문잡지 기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현장에서 보면 봉감독은 사람 꼬시는 선수야. 자기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려고 스텝들을 어떻게든 꼬시는데, 봉감독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스텝들이 알아서 나서서 그 장면을 만들어 내는 거지.”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찬사를 덧붙였다.

″만약 봉감독이 대기업에 취직했으면 자기 동기들 중에서 가장 빨리 승진하면서도 누구 하나 적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을 거야.”

조직 내에서 적을 만들지 않는 건 쉽다. 그냥 나서지 않고, 말을 많이 안 하면 된다. 하지만 나서지 않으면 인정받기도 어렵고, 승진 가능성도 줄어든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 않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그는 이 자명한 룰을 깰 수 있었을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 감독상을 받으며 말한 수상소감을 보면 그는 분명 창사 30주년 기념식 같은 행사에서 상을 받아도 사람들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기립박수를 받게 했듯이, 회장님이 대필작가를 기용해 쓴 자서전의 한 구절을 인용했을 수도 있다. ”아카데미가 허락해 준다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등분해서 나눠 갖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제가 받은 격려금을 5등분 하겠다”며 바로 위의 상사와 팀원들에게 공을 돌릴 것이다. 분명 그랬을 사람이다.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촬영 현장의 감독은 모든 걸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때문에 TV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권위적이기만 하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예술적인 비전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라면 영화적 비전과 카리스마로 촬영현장을 호령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될 거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현장에서 고뇌하거나 소리치는 시간에 사람들을 꼬시고 있었다.

많은 영화가 거대한 제작비로 만들어진다. ‘기생충‘도 100억이 넘는 예산의 영화다. 하지만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영화라고 해도 돈을 장면으로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의 일이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찬사들은 대부분 그의 영화적인 개성과 연출적인 특징(이를테면 ‘봉테일’)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사실 봉준호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다. 여기에 그의 작품들이 호평받았을 뿐만 아니라,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에 갖게 된 신뢰가 더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약 20년 동안 사람들을 꼬시며 영화를 만들어 온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까지 이뤄냈다. 그의 이야기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곳곳에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당장 떠오르는 건, 총선을 앞둔 각 당의 지도부다. 세력의 통합, 인재영입, 창당, 공천 등 무엇하나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빨리 봉준호 감독을 섭외해서 사람 꼬시는 기술에 대한 강연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P.S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4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후보에 오른 6개 부문에서 전부 수상하기를 기대하면서 미리 축하 이미지를 만들었다.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을 위해서도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영상 디자인을 맡고 있는 박사연 에디터가 만든 이미지는 총 8개인데, 그중 5개만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내보냈다. 나머지 이미지들이 아까워서 여기서라도 공개한다.

'부재의 기억'을 위해 만든 축하 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러닝 투 스케이트보드 인 어 워존'
'부재의 기억'을 위해 만든 축하 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러닝 투 스케이트보드 인 어 워존' ⓒCJ엔터테인먼트/디자인 박사연
'기생충'을 위해 만든 축하 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포드V페라리’
'기생충'을 위해 만든 축하 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포드V페라리’ ⓒCJ엔터테인먼트/디자인 박사연
'기생충' 을 위해 만든 축하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기생충' 을 위해 만든 축하이미지. 실제 수상작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CJ엔터테인먼트/디자인 박사연
'기생충' 축하이미지. 실제 '기생충'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기생충' 축하이미지. 실제 '기생충'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CJ엔터테인먼트/디자인 박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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