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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재통일' 주장하는 신페인당이 돌풍을 일으킨 배경 : 경제 불평등

정부 재정지출 확대 등 '좌파정책'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 허완
  • 입력 2020.02.10 17:39
  • 수정 2020.02.10 18:06
DUBLIN, IRELAND - FEBRUARY 09: Sinn Fein leader Mary Lou McDonald celebrates with her supporters after being elected at the RDS Count centre on February 9, 2020 in Dublin, Ireland. (Photo by Charles McQuillan/Getty Images).
DUBLIN, IRELAND - FEBRUARY 09: Sinn Fein leader Mary Lou McDonald celebrates with her supporters after being elected at the RDS Count centre on February 9, 2020 in Dublin, Ireland. (Photo by Charles McQuillan/Getty Images). ⓒCharles McQuillan via Getty Images

아일랜드 재통일을 주요 목표로 삼는 좌파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Sinn Fein)당이 8일(현지시각) 실시된 아일랜드 총선에서 1위를 달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아일랜드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아이리시타임즈에 따르면, 신페인은 1순위표의 24.53%를 얻어 각각 22.18%와 20.86%를 얻은 야당인 피어너팔(Fianna Fail)과 집권 여당인 피너게일(Fine Gael)를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최종 확정될 경우, 신페인은 100여년 동안 공고하게 이어진 피어너팔과 피너게일의 양당구도를 깨뜨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다만 신페인이 미처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구가 많은 탓에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는 각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서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순위를 고르도록 하는 ‘단기 이양식 투표제도(STV)’를 채택하고 있다. 1순위 당선자가 없으면 자동으로 표가 다음 순위 후보에게 넘어가는 구조다. 개표 작업이 다소 복잡한 만큼 정당별 최종 확보 의석수가 확정되기까지는 며칠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Election posters of Michael Martin of the Fianna Fail party are displayed during the build-up to Ireland's national election in Cork, Ireland, February 6, 2020. REUTERS/Henry Nicholls
Election posters of Michael Martin of the Fianna Fail party are displayed during the build-up to Ireland's national election in Cork, Ireland, February 6, 2020. REUTERS/Henry Nicholls ⓒHenry Nicholls / Reuters

 

세 정당 중 어느 한 쪽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게 확실시 됨에 따라 정부 구성 협상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신페인이 새로운 정부에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기존 두 거대 정당이 ‘정책적 차이’를 이유로 신페인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모두 활동하는 신페인은 아일랜드공화국(아일랜드)과 북아일랜드(영국)로 ‘분단’된 아일랜드의 재통일을 정치적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이들은 1900년대초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던 독립군 세력이 결성한 무장조직 IRA과 역사적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도 하다.

IRA는 특히 1960년대부터 1998년 ‘굿프라이데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극렬한 무장투쟁을 벌여 전 유럽에 악명을 떨쳤다. 이 기간 동안 나온 희생자는 3600여명에 달한다. IRA의 정치 조직이었던 신페인은 이런 역사 탓에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일랜드 정치권에서 소수파에 머물렀다.

그러나 신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시행된 긴축정책과 그에 따른 불평등 확산에 분노한 유권자들, 그 중에서도 젊은층을 공략하면서 조금씩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재통일 같은 민족주의적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 대신 주택난과 건강보험 약화 등에 주목하면서 경제 성장의 혜택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Thousands of demonstrators gathered in Dublin city centre to stage a protest against the housing crisis 'Raise the Roof."
On Saturday, May 18, 2019, in Dublin, Ireland. (Photo by Artur Widak/NurPhoto via Getty Images)
Thousands of demonstrators gathered in Dublin city centre to stage a protest against the housing crisis 'Raise the Roof." On Saturday, May 18, 2019, in Dublin, Ireland. (Photo by Artur Widak/NurPhoto via Getty Images) ⓒNurPhoto via Getty Images

 

젊은층은 IRA 무장투쟁의 시기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이기도 하다. 중장년층에 비해 신페인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신페인을 이끌었던 게리 애덤스가 2018년 물러나고 현재의 메리 루 맥도널드 대표 체제로 전환하면서 세대교체에 성공한 것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RA 지도부라는 의심을 받아왔던 애덤스가 ”강한 북아일랜드 억양”을 가진 반면, 맥도널드는 수도인 더블린 태생인 데다가 평화협정 체결 이후 정치인이 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맥도널드는 ‘민족주의 정당‘이라는 성격보다는 ‘좌파 정당’의 면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어왔다.

처음으로 신페인을 찍었다는 한 22세 유권자는 ”그(게리 애덤스)의 얼굴은 과거의 폭력과 범죄들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며 ”그들(신페인)은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신페인은 지난 총선(2016년)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율(13.9%)을 기록해 제3당으로 떠오르면서 마침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부유층 증세, 임대료 상승 억제, 대규모 주택 공급과 건강보험 강화 등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 등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친 ‘좌파 정책’들을 공약했다.

아일랜드 코크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테레사 라이디는 ”신페인에 대한 지지가 늘어난 건 당의 경제·사회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 내에) 민족주의적 목표를 주장하는 세력도 (물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인해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이같은 더 폭넓은 논의가 이뤄진 것이지, (당 지지층 여론의) 밑바닥에서부터 민족주의 정서가 급증해서가 아니다.”

DUBLIN, IRELAND - FEBRUARY 09: Sinn Fein leader Mary Lou McDonald motions a number one with her finger after being elected at the RDS Count centre on February 9, 2020 in Dublin, Ireland. (Photo by Charles McQuillan/Getty Images).
DUBLIN, IRELAND - FEBRUARY 09: Sinn Fein leader Mary Lou McDonald motions a number one with her finger after being elected at the RDS Count centre on February 9, 2020 in Dublin, Ireland. (Photo by Charles McQuillan/Getty Images). ⓒCharles McQuillan via Getty Images

 

둘 다 중도우파 성향인 피너게일과 피어너팔은 1922년 아일랜드가 건국된 이래로 한 번도 빠짐 없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집권해왔다. 선거기간 동안 두 정당 모두 신페인과의 연정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다만 선거 이후 두 정당의 입장은 다소 엇갈렸다. 리오 버라드커 총리(피너게일)은 선거 다음날인 9일 ”신페인과의 연정은 옵션이 아니”라고 말한 반면, 피어너팔 대표 마이클 마틴은 정부를 구성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국가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신페인 대표 맥도널드는 ”이번 선거는 역사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라며 ”투표 혁명”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 구성 협상에서 신페인의 뜻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권자 4분의 1을 대표하는 우리 당을 (정부 구성) 협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건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이다.”

아울러 그는 두 거대정당을 뺀 나머지 소수 정당들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어너팔이나 피너게일 없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지 최우선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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