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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10일 13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2월 10일 13시 40분 KST

한국 영화사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기까지, 봉준호의 말말말

'봉준호 장르' 20주년, 그가 했던 인터뷰들을 모아봤다

봉준호 감독이 2000년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를 내놓았을 때, 기대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드물 터다. 앞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든 그 문법을 무너뜨리고 싶다던 야심만만한 젊은 감독은 이제 ‘봉준호 장르‘라는 수식 말고는 규정할 수 없는 세계관의 주인이 됐다. 그는 끝내 일곱 번째 장편 ‘기생충’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세계를 제패하고야 말았다.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았고, 이듬해인 2020완벽한 연출가이자 이야기꾼 그리고 달변가인 봉준호 감독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한국에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겼다.

오스카 무대에서 ”시나리오를 국가대표처럼 쓰는 건 아닌데, 이건 한국이 처음 탄 상”이라는 소감을 던지기까지, 그가 국내외 매체와 진행했던 인터뷰 속 철학과 삶이 녹아 있는 말들을 모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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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1. ”지금 생각하면 참 코믹하고 부조리한 부분이 많다. 영화를 쓰고 찍고 하면서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주제나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다. 우리가 가까운 과거에 정말 이런 꼬라지로 살았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복입고 대통령 환영하고 그런 장면은 무슨 역사 다큐에서 찾아낸 것도 아니고 실제의 경험이었다. 그래서 영화 디테일에 더 신경이 쓰였다. 모든 이에게 남아 있는 경험이고 기억이라서.” - 오마이뉴스, 2003/10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 봉준호는 3년 만에 미제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을 내놓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스크린 위에 그리며 그는 자신이 지나온 80년대의 ‘꼬라지‘를 고발하고 싶었다. ‘당시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에게 패배했나?’ TV에서는 ‘수사반장‘이, 라디오에서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흘러나오는 향수 어린 배경 속에서도 봉준호는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 봤다.

2019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히며 2013년 ‘살인의 추억’ 10주년 기념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이 개최한 GV에서 했던 그의 발언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봉준호는 당시 자신이 범인으로 생각했던 용의자의 특징들을 열거하며 ”영화가 완성될 즈음엔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2. “한국영화계 스탭들의 처우개선 문제는 반드시 노조를 조직해서 가야겠지만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거다. 다른 영역에서 그만한 전문성을 가지고 노동을 한다면 터무니없는 보수다. 합리적인 임금구조로 개선하려면 일단 제작자가 키를 쥐고 있다고 하겠지만 무엇보다 도제시스템을 바꾸고 전문인력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매일노동뉴스, 2004/4

 

영상노동자들의 ‘열정페이’ 관행이 깨지기 시작한 건 사실 최근의 이야기다. 봉준호 역시 조감독 신분이던 7~8년은 거의 ‘극빈자 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꿈으로 열악한 현실을 견뎌내는 구조를 비판하며 ‘전문 조감독’ 제도 육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의 2019년작 ‘기생충’은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주52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는 표준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후 촬영에 들어갔으며, 사람을 쥐어 짜고 갈아 넣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당당히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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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3. 아직 내 나이 마흔 살이 안됐다. 긴 내 영화 인생에서 지금까지의 작품이 난 초기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은 거의 대부분 환갑이 다 돼서 나왔다. 나 역시 그 나이에 내 대표작을 내놓고 싶다. 아직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나만의 방법과 스타일이 관객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살인의 추억‘도 ‘괴물’도 그 시점에서는 새로운 것이지 않나. -연합뉴스, 2006/8

 

‘괴물‘은 봉준호에게는 첫 번째, 한국 영화사상으로는 네 번째 ‘천만 영화’였다. 2000년 주한미군이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 방류했던 이른바 맥팔랜드 사건을 모티프로 한 만큼 개봉 당시에는 반미 논란도 일었으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처음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의 연속 흥행으로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을 봉준호는 향후 행보에 대해 이런 말들을 했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영화 초반에 괴물을 한번에 보여줌으로써 괴수영화의 전형을 깼”듯이, ”어떤 장르를 택하든 그 장르를 망가뜨리겠다”고. 다만, 뮤지컬 장르는 제외라고 했다. 춤과 노래는 본인과 영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4. “2편을 준비중이다. 먼저 할 ‘마더’(가제)는 엄마 이야기이다. 작은 영화지만 감동은 큰 작품이고, 그 다음은 SF물이다.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가 원작이다. 기후전쟁으로 눈으로 뒤덮인 지구에서 생존자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기차를 계속 달리게 한다는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가 된다. 큰 것을 연달아 하기는 너무 힘들다. 이 작품들 역시 ‘괴물’처럼 지금이 아닌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남들이 했던 영화는 물론 내가 한 영화와 비슷한 것도 절대 하지 않는다. 내 신조이자 본능이다. 적어도 내 몸에 잘 맞는 옷을 찾을 때까지는. 겁 나지만, 에너지도 생긴다.” - 한국일보, 2006/9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까지 등장한 ‘기생충’의 이 대사는 봉준호 자신에게도 적용될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으레 막판에 등장하는 향후 계획 질문에 꽤 먼 미래의 이야기까지도 숨김 없이 말해왔다. 그리고 그가 그린 미래는 대부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완성됐다. 시대와 관객들이 증인이다.

‘괴물’ 개봉 당시에는 ‘천만 시대‘의 시작점에 선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사를 운영할 생각은 없냐는 말에 봉준호는 “시나리오 쓰고, 연출하기에도 지친다. 골치 아픈 ‘갑’이 아니라 그냥 잘 나가는 ‘을’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현답이다.

 

5. ”무슨 말이냐. 이젠 민폐를 그만 끼쳐야겠다. 어쨌든 출연을 하다보니 공부가 되는 것 같다. 감독이 내게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어떤 얘기는 귀에 쏙 들어오지만 어떤 얘기는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돌이켜보면 철렁하는 거다. 나도 만날 저런 소리를 했는데….” - 씨네21, 2008/10

 

봉준호는 꽤 여러 편의 영화에 특별출연했다. 자신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이었던 ‘지리멸렬‘에 배달소년 형으로 나왔던 것이 그의 배우 데뷔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선 취조하는 형사로,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속 임필성 감독이 연출한 ‘멋진 신세계’ 편에선 사이비 시민운동단체 간사로,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에선 학원 수강생 회사원으로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명연기(?)에 대한 칭찬을 듣고는 ”이제 출연은 안 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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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 홍당무' 출연 당시 봉준호 감독

 

6. ”사회적 약자와 루저에 관심이 많다. 국가 시스템이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돈이나 빽이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살기 편한 게 사실이다. 시스템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릴 때 진정한 드라마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강자가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스토리는 재미도 없을 것 같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 어떤 만화에서 ‘불행은 부자에게 절대 가지 않는다’라는 대사를 본 적이 있는데 맞는 말 같다. - 맥스무비, 2009/5

 

봉준호의 영화 주인공은 구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개인들이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의 관객들과 다르지 않은 소시민이다. ‘마더‘에서는 이전의 작품 세계에서 발견됐던 연대도 없었다.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진짜 살인마를 쫓는 엄마가 나온다. 이 같은 캐릭터를 그린 이유에 대해, 봉준호는 ‘진정한 드라마를 위해’라는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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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배우 김혜자

 

7. “‘살인의 추억’ 때는 살인범이 찾아올까 불안했고, ‘괴물’ 때는 감당하기 힘든 흥행 때문에 불안했는데, 이번엔 이 영화가 나에게 무엇이고 관객들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때문에 불안하다. 정신불안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불안하고, 불안을 잊기 위해 영화를 찍고,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불안에 떠는 거다.” - 보그, 2009/6

 

첫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마더’ 개봉 이후 봉준호는 감독으로서의 불안감을 토로했다. 감독 데뷔 10년을 바라보던 당시 그는 영화 그 자체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봉준호는 찍고 또 찍었다. 선순환일지 악순환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이런 불안과 해소의 연쇄를 계속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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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8. ”많은 사람들이 나를 ‘봉테일‘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만들고 난 뒤 오히려 똑똑한 관객들에게 해석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살인의 추억’ 때 영화를 해석한 다양한 글들이 있었는데 그 중 50%는 나도 처음 발견한 의미들이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경계하는 이유는 스스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을 의식하고 작품을 만들게 될까봐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떡밥‘이나 ‘미끼‘를 던지게 되면 작품이 치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스트레이트한 작품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는 돌직구 영화다.” - SBS E!News, 2013/8

 

봉준호를 수식하는 단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봉테일‘이다. 견고하게 짜여진 그의 영화 속 세계와 숨겨진 ‘디테일‘을 눈 밝은 관객들은 잘도 파헤쳤다. 때로는 영화를 만든 자신도 의도와 다른 해석들도 나왔다. 그만큼 ‘봉준호 장르’가 사랑받았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봉준호는 ‘봉테일‘이란 별명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해석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매거진M과의 2017년 인터뷰에서 ”봉준호에게 ‘봉테일’은?”이라는 질문을 받고 ”날조된 신기루”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설국열차‘가 기차를 배경으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길 노골적으로 한 건, ‘봉테일’이란 별명에 대한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9. ”‘내 자신이 계속 변해야 한다’에 대한 강박은 없는데, 남이 했던 걸 하고 싶진 않다. 창작자들이 하늘 아래 새로운 거 없다고 말하는 거, 저는 되게 싫어한다. 그건 남의 것을 베끼거나 적당히 흉내 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괜히 스스로를 정당화할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엄청나게 새로운 게 많다고 생각한다. 제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 제 영화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그건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시는 건데, 최소한의 자부심이 있다면 남이 했던 걸 하진 않았다라는 것. 내 영화와 비슷한 영화는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우여곡절이 많았다.” - izm, 2014/3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송강호)가 나오는 장면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봉준호는 부랑자에 약물 중독자인 남궁민수가 끝내 구조를 뚫고 나가는 순간의 쾌감이 이 영화의 진정한 비전이었다고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시쳇말에 질색하는 봉준호는 감독으로서 남궁민수가 보여준 ‘변화‘의 길을 줄곧 걷고 있다. ‘남이 했던 걸 하진 않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창작이라는 변화의 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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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보드

 

10. “감독의 일이라는 게 뭐야. 샷을 설계하는 거잖아. 내가 짠 프레임과 카메라 움직임, 난 그건 절대 양보 못 해.” - 매거진M, 2017/7

 

봉준호는 영화를 찍으며 ‘스토리보드’라는 설계도를 가장 적확하게 활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의 스토리보드만 봐도 하나의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봉준호는 알프레드 히치콕과도 닮았다. 스토리보드를 제대로 완성해 꼭 그대로 영화를 찍는다는 부분이 말이다.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되는 영화일수록 감독의 스토리보드는 무용해지는 경우가 많다. 제작사며 배급사의 입김에 감독의 편집권이 축소되는 탓이다. 봉준호도 ‘설국열차‘를 촬영할 때 하비 웨인스타인과 지난한 싸움을 벌였다. 봉준호는 끝내 ‘양보할 수 없는 감독의 일‘을 지켜냈고, ‘설국열차‘는 감독판으로 세상과 만났다. 이후 ‘옥자’에서는 봉준호의 스토리보드가 100% 현장을 컨트롤했다.

 

11. “영화 학교에서 Q&A를 받다보면 학생들이 ‘자기검열을 어떻게 하냐’, ‘관객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걸 만든다. 되게 이기적이 돼야 한다’고 단순무식하게 대답한다.” - 서울경제, 2017/7

 

봉준호의 영화에는 각종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가 있지만, 그 중심에는 본인이 있다. 철저히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창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때문에 그의 세계관은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대중 예술인 탓에 관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이에 대해 봉준호는 ‘관객‘이란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어떤 장면을 잘못 만들면 관객이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나’도 한 사람의 영화 팬이니까 이기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오히려 영화가 간결해진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12. ”‘옥자’ 개봉 당시에는 개봉, 배급 방식만 가지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니 피곤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나도 좀 천천히 할걸 그랬다. 너무 앞서서 했다가 지뢰제거반처럼 온갖 지뢰를 다 밟은 것 같다.” - 씨네21, 2019/4

 

봉준호는 2017년 넷플릭스와 손 잡고 만든 ‘옥자’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었다. 개봉과 배급 관련 문제였다. 먼저 ‘옥자‘를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 상영한다는 방침에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체인이 상영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또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으나 심사위원장 부터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가 상을 타는 건 모순’이라고 하는 등 냉대를 받았다.

논란이 가라앉은 2019년, ‘기생충’ 후반 작업 마무리 단계에서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단 2년 사이 영화 플랫폼은 한 걸음 더 변화했고, 콧대 높은 영화제도 넷플릭스 작품들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에 봉준호는 ”좀 천천히 할걸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13. ”‘이 사람의 영화에 대해 어떤 장르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할 필요가 없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문구를 봤는데, 영화제 기간 통틀어 제일 기뻤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앞으로 제 영화를 설명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인용구가 생겨서 기분 좋다. - 인터뷰365, 2019/6

 

‘봉테일‘은 봉준호를, ‘봉준호 장르‘는 그의 영화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말로 굳어졌다. ‘기생충’ 공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의 필모그래피들을 훑으며 작품별로 하나의 장르를 부여하는 작업에 모두가 지친 듯하다.

특히 인디와이어는 봉준호의 영화 제목들을 늘어 놓으며 ”항상 특정 장르의 좁은 파라미터에 맞추기를 거부해 왔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평했는데, ‘봉테일’과는 달리 봉준호 본인도 싫지 않은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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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14.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아주 지역적이다.” - 벌쳐(Vulture), 2019/10

영화 ‘기생충’이 국내외 유수 영화상들을 석권하며 북미 최고의 권위를 가졌으나 외국어 영화에게는 인심이 박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도 노려봄직하다는 관측이 팽배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년 동안 미친 막대한 영향에도 왜 한국 영화는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 했을까?”라는 물음에 봉준호 감독은 어깨를 으쓱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15. ″개인적으로 못 하는 이유가 있다. 수퍼히어로 영화 고유의 창의성을 존중합니다만, 저는 현실이나 (보통) 영화에서 그런 타이트한 옷 입는 사람들을 못 견디겠다. 저는 절대 그런 걸 입을 일이 없을 거고, 그런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것도 정신적으로 좀 힘들다. 어딜 봐야 할지도 모르겠거니와, 숨 막히는 기분도 들어서다. 수퍼히어로들은 다 타이트한 수트를 입으니까, 제가 그런 걸 연출할 일은 없을 거다. 누가 저한테 연출해달라 제의할 일도 없을 것 같고요. 박시한 옷을 입은 히어로라면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버라이어티, 2019/11

 

마블 프랜차이즈의 공고한 아성 뒤에는 ‘영화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 저명한 감독들이 이에 힘을 실었다. ‘기생충‘으로 해외 영화 매체 인터뷰를 돌던 봉준호에게도 마블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인상 깊게 봤던 마블 영화들의 이름을 밝히며 이 작품들에 ‘영화적 순간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어진 ”마블 영화를 감독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는 ”수퍼히어로들의 타이트한 의상을 못 견디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후에도 ″마블이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6. ”(언어의)장벽은 이미 다 깨져 있었는데 제가 뒤늦게 얘기한 것 같다.” - 로이터, 2020/1

”‘인셉션’ 같다. 그리고 저는 곧 깨어나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 전 아직 ‘기생충’ 촬영 현장에 있고 모든 장비는 고장 난 상태고. 밥차에 불이 난 걸 보고 울부짖고 있고.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다.” - 데드라인, 2020/1

 

압도적인 평단의 호평 속에 ‘기생충’은 예상돼 있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뿐만 아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등 주요 부문에도 최종 지명됐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다.

봉준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탄 후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던 소감을 고쳐 말했다. 그 장벽은 이미 깨져 있었다고. 또 그는 이 모든 상황이 꿈 같다며 행복하다는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17.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국가대표처럼 쓰는 건 아닌데, 이건 한국이 처음 탄 상이다.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제 아내와 제 대사를 잘 옮겨 주는 ‘기생충’ 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 후

″이름 바뀐 첫번째 상을 받게 돼서 더 기쁘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지지를 보낸다. 오늘 밤 술을 마실 준비가 됐다. 내일 아침까지!” - 동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후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감독상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나누고 싶다” - 동 시상식 감독상 수상 후 

 

그리고 봉준호는 9일(현지시각)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4관왕이라는 기적을 끝내 써내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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