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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이 아주대병원과 보건복지부를 비판하며 한 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기 때문에 외상센터를 하면 안 된다”

밤이어서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이국종 경기남부권외상센터장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를 부르는 이름에는 이 센터장 외에 이 교수란 호칭도 있다. 사의 표명을 하긴 했지만 아직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리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이 센터장으로 계속 부르기로 했다.

ⓒ뉴스1

이 센터장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밤 늦게 먼저 전화를 걸어온 그는 사과부터 했다. 최근 불거진 외상센터 문제로 여기저기 걸려오는 전화가 부담스러워 휴대전화를 꺼놓고 있었다고 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핫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그에게 정말 궁금한 게 많았던 터다,

다짜고짜 사의 표명한 게 정말 본인의 의지인지, 번복할 의사는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이 센터장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 반대의 답변을 기대하고 질문을 한 내가 무안할 만큼 그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고 명료했다.

“지난 10년간 생고생하며 외상센터 키워놓고 이렇게 떠나는 게 아무렇지도 않나, 남은 동료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내 목소리가 커졌다.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이 센터장은 “지금 이대로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 희망이 없다”고 했다. 더 심하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기 때문에 외상센터를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이 사의 표명을 한 이유가 간호사 인력 충원과 병상 확보 문제, 닥터헬기 운용에 있어서 아주대병원 측과의 갈등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예상 밖의 강경 발언이 당황스러웠다.

이에 대해 이 센터장은 “정부가 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외상센터를 지어주고 연간 63억원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그럼 이 돈이 외상센터를 위해 제대로 쓰여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런데 병원은 외상센터 간호사 인력 충원해 달라는 것도 안 해 주고 돈 빼 먹을 궁리만 한다”고 했다.

ⓒ뉴스1

병원측이 외상센터 지하 1층에 조성하려는 교직원 식당을 이 센터장이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현재 병원 본관 1층에 있는 교직원 식당을 외상센터 지하 1층에 옮기려는 이유가 뭐겠나”며 “식당 옮겨서 비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보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해 설명했다. 첫째, 외상센터는 정부예산으로 지은 건물이라 못 하나를 치더라도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만큼 까다롭다는 점. 둘째, 식당이 이전할 경우 현재 지하1층에 있는 간호사 대기실을 이전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 것. 마지막 셋째, 가뜩이나 협소한 외상센터 구조상 교직원 식당이 이전할 경우 정작 미래에 발생할 공간 확장성에 대처할 수 없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도 이 센터장은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2018년 9월 초 박 장관과의 대면보고를 떠 올렸다. “(간호사 충원 등) 마치 다해 줄 것처럼 하더니 하나도 개선되는 게 없어 박 장관에게 대면보고를 요청했다”고 했다.

“첫 대면이었다. 30분 동안 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하나도 개선이 안 된다. 간호사 충원하라는 장관 공문이 내려와도 (병원측이) 완전 무시하고…이대로는 안된다”고 보고했다.

ⓒ뉴스1

이 센터장의 대면보고를 받고 당시 박 장관은 몹시 흥분해 ‘자기가 나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뿐, 이후 복지부에서 현장점검도 하고 했지만 아무 일 없다며 흐지부지 됐다.

이 센터장은 이번 사태에서 박 장관이 보인 행태에도 큰 상처를 받은 듯 했다.

지난 20일 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양쪽(아주대와 이국종 센터장) 다 지쳐 있는 상황으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지난해 이 교수가 주장한 의료비 부당 사용을 조사했지만, 아주대가 법과 제도에 어긋나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사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논란이 불거진 이후 나온 아주대병원이나 복지부의 해명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며 “박 장관이 소통을 참 많이 강조하시던데, 아마 병원측 하고만 소통하시나 보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복지부가, 또 아주대병원 측이 바뀌지 않는 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고질적인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는 게 이 센터장의 진단이다.

이 센터장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쥐 잡듯이 했다. 나 때문에, 외상센터 때문에 병원 다 망하게 생겼다는 말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서 “회의석상에서 공개 망신주기·욕설은 예사고, 나만 입 닥치면 된다고 해서 실제로 지난해 6월부터는 발표도 안 시키더라. 명색이 센터장인데”라고 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센터장이 없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를 준비할 때가 된 듯 하다. 그가 없는 외상센터가 잘 상상은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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