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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1층이 무조건 '화장품 아니면 잡화'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백화점 '층별 구성 공식'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허완
  • 입력 2020.01.22 21:30
(자료사진)
(자료사진) ⓒ뉴스1

지난 10일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리빙관. 가방 등 잡화를 팔던 1층이 식품관으로 바뀌었다. ‘푸드마켓’이라는 안내판 아래로 붉은색과 노란색 파프리카, 초록색 브로콜리, 자주색 고구마 등이 포장되지 않은 채 각각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매장 한쪽에 마련된 수산코너에는 도미, 민어, 아귀 같은 생선이 마치 수산시장처럼 얼음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정육 코너·양곡 코너·베이커리 코너 등이 자리해 대형마트 지하 식품관을 방불케 했다. 기존에 이곳을 차지하던 잡화 품목은 2~6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화점 1층이 변신하고 있다. ‘백화점 1층=화장품, 잡화’라는 오랜 공식에서 벗어나, 일부 백화점은 지하에 있던 식품관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던 생활용품관을 접근성이 좋은 아래층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1층은 백화점의 얼굴”이라며 “(1층의 변신은) 차별화와 업계 혁신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신세계

 

■ ‘1층=화장품·잡화’는 일제강점기부터

백화점 1층의 변화에 대해 ‘혁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백화점 매장 구성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1층이 잡화 및 화장품으로 꾸려졌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백화점의 층별 구성은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은 1930년에 생긴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이다. 1906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서울 명동에 ‘미쓰코시 오복점’이란 임시출장소를 낸 후, 일제강점기인 1929년 임시출장소를 ‘경성 지점’으로 승격하고 1930년 충무로 입구(현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곳)에 지하 1층, 지하 4층의 신관을 세워 영업을 시작한 게 한국의 첫 근대적 백화점이다.

일본 회사가 연 백화점인 만큼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은 일본식 구성을 충실히 따랐다. 당시 충무로 미쓰코시 백화점은 1층에 신발 같은 패션잡화와 화장품을 팔았고 2층에는 여성 기성복을, 3층에는 신사복, 꼭대기 층인 4층에는 가구매장과 식당을 뒀다. 지하에는 식품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수십년째 상당수 백화점이 유지하고 있는 ‘화장품·잡화-여성복-남성복-스포츠·아웃도어-리빙-식당가, 지하 식품관’ 구성과 다르지 않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일본 백화점이 이와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 백화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층에서 화장품, 잡화를 판매한다는 공식은 2010년 말쯤까지 대체로 모든 백화점 지점에서 유지가 됐다. 물론 수입화장품 브랜드가 다수 입점하거나 명품 브랜드를 1층에 공격적으로 배치하는 수준의 부분 변화는 있었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1993년 한국에 대형마트가 세워지면서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수입화장품과 명품 등이 1층을 메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1층에 구두 등 잡화가 많았던 건 90년대 말쯤까지고, 2000년대 초반부터 화장품으로 (메인 상품군이) 변경됐다”며 “수입화장품도 이때쯤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1993년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등 다양한 유통업태가 등장하면서 백화점도 ‘소비의 프리미엄화’를 추구해 수입 브랜드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현대백화점

 

■ 소득 증가·이커머스 성장으로 변화하는 백화점

이랬던 백화점이 최근에 생활용품관(리빙관)을 경쟁적으로 낮은 층에 두는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우선 국민소득 증가를 꼽는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생활용품(리빙) 시장도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면 가구를 비롯한 리빙 시장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패션연구소의 2017년 자료를 보면, 2010년 8조원 수준이었던 국내 홈 퍼니싱(가구 등) 시장 규모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를 넘긴 2017년 13조7천억원까지 성장했다.

지난해 11월 강남점 1, 2층에 고가 리빙 편집숍 ‘더 콘란샵’을 연 롯데백화점은 “2016년부터 2019년 10월 기준으로 매년 리빙 쪽 매출이 10% 이상 성장했다”며 “고가상품과 리빙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그만큼 공급이 없어 프리미엄 리빙숍을 강남에 연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센터점에 고가 리빙숍을 운영하는 현대백화점도 “2018년쯤 리빙 부문이 전체 매출비중의 10%를 넘기는 등 매출이 늘어 저층부에 리빙관을 열게 됐다”고 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생활품목과 연계 측면에서 영등포점 리빙관 1층을 식품관으로 꾸미게 됐다며 “리빙관 2~6층을 생활전문관으로 구성하다 보니 1층 잡화나 화장품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생활용품과 관련 있는 게 뭘까 고민한 결과 식품관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침투에 따라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잡화, 화장품 보다 직접 보고 사는 게 중요한 가구, 식품 등으로 집객 효과를 노린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백화점 상품군별 매출비중’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잡화의 매출비중은 전체의 19.4%→18.7%→15.6%→14.1%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의 발달로 잡화나 패션, 생필품은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백화점도 다른 품목을 강화하고 있다”며 “리빙, 식품 등 집객요소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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