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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18일 17시 52분 KST

롯데 38살 단장의 스토브리그 “욕먹더라도 이기는 선택 한다”

롯데 자이언츠 단장 성민규

한겨레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리그 최고 인기팀’이란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성적으로 매년 팬들의 아쉬움을 산다. 그 아쉬움에는 성적 자체보다도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선수들의 무기력한 실루엣이 짙게 배어 있을지 모른다. 롯데 구단이 지난해 9월 당시 37살이던 성민규 단장을 영입하며 쇄신에 나섰다. 성 단장은 롯데를 바꿀 수 있을까. 그의 도전은 시즌 종료 뒤 새겨질 롯데의 순위로 평가받을 것이다.

‘기록이 없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누리집에서 ‘성민규’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통산 기록이다. 프로야구 1군에서 ‘기록이 없는 선수’였던 성민규(38)는 현재 롯데 자이언츠 단장이다. 지난해 9월 37살 ‘최연소 단장’이란 수식어를 달고 롯데 야구단 운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성 단장은 영양가 높은 선수 계약과 선수단·사무국 구성과 운영 방식의 파격적인 행보로 스토브리그(한 시즌 종료 뒤 다음 시즌 전까지 선수 트레이드 등이 논의되는 시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만년 하위권 팀을 맡은 프로야구 단장 이야기를 그린 <에스비에스>(SBS) 인기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남궁민 역할) 캐릭터와 닮은꼴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5일 부산 동래구 사직야구장에서 성 단장을 만났다.

―개인 사무실에 화이트보드(스탠드형 두개, 벽걸이형 두개)가 왜 이렇게 많나?

“스탠드형 보드 두개에는 향후 5년 동안 전체 구단에서 에프에이(FA·자유계약선수)로 나올 선수, 영입 대상 선수, 트레이드 전략 등이 담겨 있다. 비공개다. 벽걸이형 보드에는 롯데와 다른 9개 구단의 포지션별 1, 2군 선수 명단과 프로필이 배치돼 있다. 저 보드들을 보며 롯데와 다른 팀의 강점과 약점을 찾고 트레이드 전략을 구상한다. 매일 틈날 때마다 저 보드들만 본다.”

―일과는?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운동한다. 사무실은 7시30분 정도 나온다. 출근길에 2군이 있는 김해 상동야구장 연습장도 자주 간다. 퇴근은 정시에 하려고 한다. 보통 저녁 9시에 잔다.”

―취침과 기상 시간이 이르다.

“어릴 때부터 버릇이 들었다. 남보다 먼저 일과를 시작하면 앞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들한테는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 정해진 일이 있어서 그 일만 하면 된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일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성 단장은 대학교 1학년 때 다른 직업을 찾으러 뉴질랜드로 넘어가 현지 대학에서 스포츠경영을 전공했다. 거기서 취미로 야구하다 미국 네브래스카대학에 야구 선수로 편입했다. 2007년 프로야구 기아에 신인 선수로 입단해 2군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방출됐다.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그는 미국프로야구(MLB·이하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 코치 제안을 받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스토브리그> 백승수와 비슷한가?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건 똑같다. 어릴 때부터 실패를 많이 했다. 마음먹은 대로 됐던 일이 한번도 없었다. 원하는 것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걸 일찍 깨쳤다. ‘최선이 안 되면 다음은?’을 머릿속에 그리는 버릇이 들었다. 최근 선수 영입도 ‘플랜 에이(A)’대로 된 거는 없다. 일사천리로 된 듯 보이지만 계획을 여러 개 준비해놓은 결과다. 차선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성격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다.”

―지금까지 선수 영입은 애초 구상안의 몇 프로 정도인가?

“머리에 떠올린 걸 기준으로 100분의 1이고, 실제 시도한 걸로는 10분의 1이다. 다른 9개 구단 단장님들과 오가며 수시로 논의한다.”

―우리 단장 문화에선 이질적이다.

“나이 어린 단장이 혼자 설친다고 욕도 많이 하시지 않을까 싶다.(웃음) 미국은 단장이 자기 소신대로 하되 책임 소재도 분명히 한다. 나도 임기가 보장됐다고 생각 안 한다. 하루살이와 같다. 내일도 잘릴 수 있다. 다만 언제 그만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나가야 후회가 없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연 배우 남궁민

26살에 은퇴한 이유

성 단장은 마이너리그 시절 매일 아침 확인하는 선발 명단에 자기 이름이 빠질 때면 종일 우울했고, 언제까지 불행하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는 잘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찾고 싶었다. 26살 젊은 나이에 코치직 제안을 수락한 이유다.

코치가 된 이상 최고가 되길 원했다. 배팅볼 던져주기, 커피 타주기, 구단 버스 운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성 단장을 눈여겨본 구단은 2009년 환태평양 스카우팅 업무를 맡겼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6년부터는 환태평양 스카우팅 슈퍼바이저 겸 컵스 단장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한국에서 제안이 올 거라고 예상했나?

“4~5년 전부터 여러 팀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팀장급은 내 구상을 펼치기 어려워 단장 아니면 무의미했다.”

―맡고 싶었던 한국 팀은?

“세 팀이 있었다. 1순위가 롯데였다. 스카우트 때 사직구장 오면 팬들이 엄청났다. 2순위는 고향인 삼성이었고, 마지막은 역시 팬이 많은 엘지였다. 사실 롯데가 연락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미국과 한국의 구단 운영 방식 차이는?

“분업화다. 메이저리그는 구단 직원들의 업무역할이 분명하다. 누구 한명 일을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업무역할이 불분명하면 누가 무슨 일 하는지 모르고,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 일이 잘못되면 윗사람은 ‘왜 안 했어?’라고 하고, 아랫사람은 ‘안 시켰잖아요’라고 한다. 롯데도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 방식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바꿨나?

“아예 다 바꿨다. 다 뒤집었다. 우선 모든 직원의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 직원은 거기 적힌 업무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지휘계통을 명확하게 했다. 업무분담과 구단 운영 방식을 담은 책을 만들었다. 스카우트는 어떤 프로세스로 무엇을 하고, 코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전부 나와 있다. 업무분장표 같은 거다.”

―이유는?

“시스템 야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이번에 롯데 마무리캠프 훈련을 매뉴얼에 따라 전부 자료로 남겼다. 왜 훈련하는지, 어떤 훈련을 하는지, 누가 왜 훈련 대상인지, 선수들 반응은 무엇인지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세웠다. 이 자료들은 매년 쌓일 것이다. 새 감독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후보 감독들 인터뷰와 선임 이유를 기록으로 남겼다. 나중에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면 감독 선발 과정의 오류가 무엇인지 잡아내 다음 감독 선임 때 참고로 활용할 거다. 이런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한다. 그때그때 기분대로 하면 실수한 거 또 실수한다. 그 실수를 기억도 못 한다.”

한겨레
롯데 자이언츠 성민규 단장이 지난 15일 부산 동래구 사직야구장에 있는 롯데 자이언츠 박물관에서 1992년 우승트로피 쪽을 바라보며 구단 운영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롯데는 1992년 이후 아직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실패가 실패를 줄인다

성 단장은 컵스에서 시오 엡스타인 단장(지금은 사장)을 보좌해 스카우트 업무를 수행했다. 29살에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 올랐던 엡스타인은 컵스로 옮겨 2016년 108년 만에 팀에 우승트로피를 안겼다.

 

―단장 시절 엡스타인의 인상적인 점은?

“첫째는 프로세스다. 이는 업무 수행 과정에 필요한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다. 지난해 컵스에서 혼자 500명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썼다. 영입하지 않을 선수 리포트도 썼다. 헛일 같지만 좋은 선수를 뽑는 하나의 준비 과정이다. 그 선수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자료가 축적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데이터가 있어서 믿음을 갖고 행동할 수 있다. 실패한 자료가 쌓여 점점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당장 쉽고 편하게 ‘저 선수 괜찮네’ 하고 데려올 수 있다. 그런데 왜 컵스가 스카우트 30~40명에게 엄청난 인건비를 쓰며 리포트 쓰게 하겠나. 실패의 교훈으로 우리가 1승을 더 하면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거다. 둘째는 냉철함이다. 일할 때는 정에 이끌리지 않는다. 자기 판단이 서면 차갑게 결정한다. 욕을 먹지만 성적이 나니까 할 말이 없다.”

―프로스포츠는 불공정 게임이기도 하다. 돈 많은 팀이 이긴다. 이를 깰 수 있나?

“남들 하는 대로 하면 절대 못 이긴다. 누군가 성공하면 그걸 똑같이 하는데 그때 따라 하는 건 이미 늦은 거다. 자꾸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타자들이 스윙할 때 올려치는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해보자. 이때 타자들이 같이 올려치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몇가지를 연결지어 앞을 내다봐야 한다. 타자들이 올려치니까 투수들은 낮은 공보다는 오히려 높은 공으로 뜬공을 유도하도록 하고, 내야보다는 외야 수비 자원을 강화해야 한다.”

―야구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야구는 선수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좋은 선수를 뽑고 키워야 한다. 단장은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감독은 그렇게 모인 선수들이 ‘원팀’으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시설 개선에 투자를 많이 했다.

“선수는 구단이 투자한 일종의 상품이다. 선수 영입으로 끝이 아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기대하려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고의 팀이 되려면 모든 걸 최고로 바꿔야 한다. 2군 상동야구장 연습장은 식당까지 싹 다 바꿨고, 사직야구장도 웨이트 장비만 4억원을 들여 개선했다. 타자들이 혼자 배팅 연습할 수 있는 장비도 들여놨다. 환경을 만들어주고 연습하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렇게 바꾸니까 선수들 스스로 와서 연습한다.”

 

 

“2군은 승리 중요치 않아”

―롯데 맡았을 때 처음 한 일은?

“조직 진단부터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여가 안 돼 있었다는 점이다.”

―취임 5개월 동안 가장 큰 변화는?

“선수들의 인식이다. 좀 편안한 팀이라고들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방출도 많이 하고 좋은 선수도 들어오면서 조금이라도 정체되면 예외 없이 도태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사실 방출이 제일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단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또 패배의식을 없애려고 경기장 복도 색깔까지 바꿨다. 강요가 아니라 환경적 변화로 선수들 스스로 인식을 바꾼 점이 큰 수확이다.”

―2군 육성에 신경을 많이 쓴다.

“2군은 승리가 중요하지 않다. 1년에 한두명이 1군 자원으로 올라와줘야 한다. 2군 감독 선임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이 ‘1군 감독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욕심이 있으면 선수 육성이 아니라 승리에만 관심을 갖는다.”

―팬 반응은?

“지금의 칭찬이 언젠가 욕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선수를 볼 때 무엇을 가장 눈여겨보나?

“우리 팀에 필요하냐다. 외국인 선수 한명을 수비형 유격수로 뽑았다. 솔직히 한국에서 이만큼 수비하는 선수가 없다. 홈런 20개 이상 치는 1루수 뽑았으면 팬들은 환호했을 거다. 그런데 홈런 8개 치는 선수를 데려오니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다. 쉽게 가려면 나도 홈런 타자 뽑고 환호받으면 된다. 하지만 단장은 팀이 이기는 데 필요한 선수를 뽑아야 한다. 롯데는 수비가 필요하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한다면?

“수비가 돼야 성적이 날 수 있다. 수비 실력은 사실 눈에 잘 안 띈다. 그만큼 변수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즉, 수비가 안정되면 변수가 줄어든다. 투수가 스트라이크 던지고 팀이 수비 잘하면 상대 타자가 10번 쳐서 7번 아웃되는 게 야구다. 이게 기본이 되면 변수를 최소화해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단장이란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욕먹는 자리다. 연봉에 욕먹는 일이 들어 있다.(웃음) 욕 안 먹으려 선수들 편하게 해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타협하면 일이 어긋난다. 그러면 욕먹는 건 둘째 치고 내가 먼저 잘린다.”

―성 단장의 리더십은?

“자율과 규율의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개인훈련을 미친 듯이 한다. 추신수는 새벽 4시에 연습하러 간다. 오리가 수면 아래에서 물갈퀴질 하지 않나. 자율 속에 엄격함이 있어야 한다.”

―롯데에 어떤 영감을 불어넣고 싶나?

“승리를 향한 열망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 서면 마지막 아웃카운트 끝날 때까지 다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