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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2020년의 신년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된 이유

그래도 낭만적인 한 해가 될 것 같아.

ⓒOlivier Le Moal via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새해 계획을 제대로 세운 지 상당히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새해 계획을 세운 건 2015년 1월 1일, 신랑과 맞이한 첫 새해였다. 그 당시 나는 1년 간의 인턴생활 끝에 복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i) 복학버프 받아 학점 장학금 받기 ii) 채플 올출석 상품 받기 iii) 5kg 감량 iv) 토익 930점 달성 등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되... 되고 있는 거 맞지?
계획대로 되... 되고 있는 거 맞지? ⓒ마미손

그러나 모두가 예측 가능하게도 당연하게도 지켜진 건 하나도 없었고 2015년 12월,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연초 목표와 마주하게 됐다.

대체 나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채플 올출석 선물? 토익 930? 진짜 웃기지도 않았다. 채플이 있는 날이면 ”아 화장 안 하고 가야지” → ”아 안 씻고 가야지” → ”아 지하철 내려서 뛰어야지” → ”아 택시타야지”하고 뜨-끈한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리다가 결국 채플 끝나고도 30분이나 지나서야 정문에 도착하던 내 모습과, 각각 리스닝과 리딩 앞부분만 새까맣게 변한 채 노트북 받침대로 전락해버린 ‘고오오급단계 토익문제집’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 아아....

새해가 되면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라도 돼서 게으름피우지 않고 술 줄이고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낼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통렬한 자기객관화가 나를 강타했다. 그렇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도 않을 거야. 난 원래 술을 좋아하고 게으름 피우고 주어진 본분을 망각해 결국 요령이나 부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딴 식으로 사는 거잖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더니, 딱 내 얘기잖아!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냥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편-안

세워봤자 어차피 난 바뀌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지키는 기간이 6주 즉 발렌타인데이 무렵 때까지라는데, 나는 남들이 안 하던 운동 하고 안 하던 공부 해서 고통받는 6주간 굳이 고생하지 않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차피 6주 해 봐야 연말 되면 나나 쟤나 다 연말에 ”올해 뭐 했냐”하고 후회하는 건 똑같았다.

그래도 마냥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 수만은 없으니까, 크고 굵직한 인생의 목표는 세우기로 했다. 마치 가훈처럼, 예를 들면 이런 거: “적어도 그른 일은 하지 않기” “영어를 섹시하게 말하기” “격주 금요일마다 뉴디터의 신혼일기 쓰기” 등등. 이건 인생 전반을 두고 세운 계획이라, 제한 기간이 없기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했다. 죽기 전에만 되돌아보면 될 일인 것이다.

그런데 2020년에는 뭔가 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2년차 부부라면, 이제 슬슬 아기를 가질 계획을 좀 가지고 준비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020년 계획으로 ‘출산 준비’ 같은 걸 세워놓고,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철저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장은 신랑과 이렇게 재미있게 놀고 많이 사랑하는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지금보다 늦게 아기를 갖고 싶지는 않은데, 근데 또 둘이서 곱도리탕 안주로 소주 6병을 끝장내고 집에서 각종 사이키델릭 조명을 켜놓고 블루스를 추는 나날이 영원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건 싫은데 신년계획은 무슨 신랑이랑 펭수 흉내 내면서 애들은 못 가는 환상의 섬으로 떠나는 휴가 계획이나 짜고 싶다고. 내 마음 나도 몰라. 결국 그렇게 갈팡질팡하다가 신년 계획은 올해도 보류됐다.

전국민이 텔레비전으로 한복 입은 펭수의 모습, 아니 보신각 상황을 지켜보며 경자년을 맞이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을 세던 2019년 12월 31일 11시 59분. 나와 신랑은 꽤 취해 있었다. 신년은 아무 생각 없이 하이한 상태에서 찾아왔다. 순도 100% 알콜이 묻은 미소로 신랑과 손을 잡으면서 그냥 올해도 재밌게 놀고 많이 사랑하자고 한 것 같다. 낭만적인 새해 계획이었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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