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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제압한 소방관 재판, 15시간 공방 끝에 '유죄' 판결 나온 이유

구급대원 몸에 달린 바디캠 영상에 '결정적 장면'이 촬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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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1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려는 취객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힌 소방관의 행동은 정당방위였을까. 법원과 배심원은 ‘과잉대응’이라고 판단했다.  15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에서다. 

24일 새벽. 전주지법 제3형사부(방승만 부장판사)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소방관 A씨에게 ”피고인(구급대원)의 행위와 피해자(취객)의 골절상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정당방위도 아니다”며 ”유죄 의견을 낸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들여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전날 오전 11시에 시작돼 자정을 넘기며 새벽 2시 30분까지 이어진 재판이었다. 소방관 A씨와 피해자 B씨 간의 공방이 치열했던 만큼, 배심원의 판단도 일방적으로 기울지는 않았다. 배심원 7명 중 5명이 유죄, 2명이 무죄 판단을 냈다.

 

사건 당일

사건은 2018년 9월 19일 오후 8시 경에 발생했다. 소방관 A씨는 ”아들이 쓰러졌다”는 B씨 어머니(72세)의 신고를 받고 동료 2명과 함께 전북 정읍시 한 초등학교 인근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A씨는 B씨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인근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당시 만취상태였던 B씨는 ”전북대병원으로 후송해달라”며 욕설을 퍼부으며 A씨를 때릴 듯 달려들었다. 

10여분간 이어진 실랑이 끝에 A씨는 B씨 몸을 이들 옆에 주차돼있던 화물차 적재함 쪽으로 밀쳤다. B씨의 목이 꺾일 정도로 약 20초간 짓누르기도 했다. B씨가 다시 A씨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A씨는 양팔로 B씨 목을 감싸 뒤로 바닥에 넘어뜨리고 B씨 몸 위에 올라타 몇초 가량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전치 6주의 발목과 종아리뼈 골정상을 입었다. 

현장에 있던 B씨 어머니는 ”심장이 아픈 아들을 비웃으면서 왜 약 올리느냐”고 따졌고, 이후 B씨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귀가했다. 이틀 뒤 B씨는 병원에서 골절 7주 치료 진단을 받고 A씨에 대해 상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A씨 행위가 과도했다고 판단해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재판부는 직권으로 이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이후 A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B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당뇨 합병증을 앓다가 지난 10월 사망했다. 

 

소방관의 주장

A씨의 변호인은 ”피해자는 단순 주취자가 아니라 폭력을 휘두른 악성 민원인”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제압 당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골절됐다는 B씨 측 주장에 대해서도 ”피고인의 제압행위 때문에 피해자 발목이 골절됐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A씨 변호인은 또 ”피고인이 상해를 가하려는 고의가 없었고, 설사 상해를 가했더라도 피고인 얼굴에 주먹을 뻗는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3년간 119구급대를 25번 불렀다”는 사실을 알리며 “10번은 만취 상태였고, 매번 장거리 이송 요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급대원들에 대한 욕설과 폭행도 처음이 아니었다”며 ”배심원들에게 주취자가 어떤 행동을 하고, 욕설을 가했을 때 소방관이 어느 정도 제압 행위를 해야 유죄가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A씨 변호인은 B씨가 ‘전북대병원으로 후송해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정읍에서 전북대병원이 있는 전주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린다. 원칙적으로 119구급대는 골든타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근거리 이송이 원칙이다. 119구급대가 응급 환자가 아닌데도 장거리 이송을 할 경우 지역 내 구급대의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A씨 변호인은 또 ”피해자 모친은 피고인에게 ‘성의를 보여 달라’며 합의금을 요구했다”며 ”금액은 2000만원에서 5700만원까지 올라갔다. 피고인은 대출을 받아 합의를 보려고 했지만, 합의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주장

검찰 측은 ”피해자가 욕설을 하고 난동을 피운 사정만으로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일방적 폭행과 과잉 진압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제압 행위는 단순한 방어나 대응이기보다 사실상 병약했던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기소했다”고 밝혔다. ”(피고인을 처벌하지 않으면) 술에 취한 민원인에게는 부당하게 유형력(신체적 고통을 주는 물리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고, 현장 공무원에 대한 법적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B씨 어머니는 ”(제압 당시) 아들은 허리가 꺾여 아무 말도 못했다”며 사건 직후 B씨 목과 팔뚝에 생채기가 입은 사진과 오른발이 부은 사진 등을 재판부와 배심원들에게 보여줬다. B씨 어머니는 ”사건 이후 아들도, 나도 우울증에 걸렸다”며 ”죽기 닷새 전까지 아들은 ‘재판이 어떻게 돼 가냐‘고 물으며 걱정했다”는 말도 했다.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A씨 주장에 대해서는 ”(A씨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 갔다”며 ”먼저 합의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B씨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이 기브스를 한 상태에서 소방관 2명이 집에 찾아 와 ‘(소방기본법 위반은) 벌금 5000만원에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구급대원 바디캠 영상

이날 법정에선 사건 당일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과 구급대원 몸에 달린 바디캠 영상이 공개됐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배심원 다수가 검찰 손을 들어준 건 이 영상들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디캠에는 A씨가 B씨 목을 잡아 내팽개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검찰은 “A씨는 B씨에게 반말을 하거나 헛웃음과 비웃음으로 일관했다. 반면 피해자는 욕설과 반말·고성으로 일관했지만, 구급대원에 대한 구체적이고 공격적인 유형력 행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피해자 어머니는 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원들이 자기 자식을 약 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피해자가 욕설하고 난동을 피운 것은 잘못이지만, 피고인이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바디캠 영상 속에서 A씨가 B씨 모자에게 ”경찰 부르세요, 선생님” ”가만히 계실 거예요?” ”고발하세요. 법정 가게요” ”저 코치하지 마세요” ”멱살 잡았잖아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A씨가 말하는 도중 피식 웃는 소리도 담겨 있었다. 

검찰은 현장 인근 편의점 CCTV 화면을 공개하며 ”피고인의 제압행위 때문에 피해자 발목이 골절됐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A씨 측 주장을 반박했다. 편의점 CCTV 화면 속엔 사건 직후 B씨 모자가 30분간 길에 앉아 있는 모습이 촬영돼있었다. B씨 어머니가 B씨 발목을 10여분간 만지는 모습도 있었다. 이후 B씨는 어머니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 탔다. 

A씨 변호인은 검찰 측 주장에 대해 ”구급대원에게 격하게 욕설을 하자 주취자 보호는 경찰 소관이기 때문에 경찰을 부르라고 한 것”이라며 ”지극히 통상적인 절차”이라고 반박했다. 또 “A씨 어투는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다”면서도 ”피해자를 진정시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A씨 변호인은 이어 바디캠 영상 속 웃음소리에 대해  ”주취자를 많이 겪은 피고인 입장에서는 ‘일진이 사납다’고 느낄 수 있고 여기서 나오는 자조 섞인 웃음이거나 헛웃음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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