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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투의 상징 '시토 시오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결정적 진술

가해자의 진술이 모순됐다

  • 박세회
  • 입력 2019.12.19 11:52
  • 수정 2019.12.19 11:55
TOKYO, JAPAN - DECEMBER 18: Shiori Ito arrives at supporters gathering at Nihon Christ Kyokai Kashiwagi Church on December 18, 2019 in Tokyo, Japan. A Tokyo court awarded 3.3 million yen (US$30,000) in damages to journalist Shiori Ito, who accused a former TV reporter of rape in one of Japanese #MeToo movement cases. (Photo by Takashi Aoyama/Getty Images)
TOKYO, JAPAN - DECEMBER 18: Shiori Ito arrives at supporters gathering at Nihon Christ Kyokai Kashiwagi Church on December 18, 2019 in Tokyo, Japan. A Tokyo court awarded 3.3 million yen (US$30,000) in damages to journalist Shiori Ito, who accused a former TV reporter of rape in one of Japanese #MeToo movement cases. (Photo by Takashi Aoyama/Getty Images) ⓒTakashi Aoyama via Getty Images

″감사합니다. 길었습니다.”

지난 18일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 이토 시오리가 전 TBS 기자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위자료와 손해배상으로 1억1000만엔(약 1억1700만원)을 청구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330만엔(약 3500만원)의 위자료와 손해배상을 지불할 것을 명했다.

도쿄지방법원은 되려 피해를 봤다며 이토 시오리 측에 1억3000만엔(약13억8300만원)의 손해배상과 사죄 광고를 요구한 야마구치의 반소를 기각했다. 그렇게 2015년 성폭행 사건 때부터 이어진 약 4년간의 싸움은 이토 씨의 승리로 끝났다. 법원이 이토 씨의 손을 들어준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 측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2015년 4월 4일이다. 당시 로이터의 인턴 기자였던 이토 시오리는 TBS 기자인 야마구치 노리유키와 도쿄의 한 이자카야에서 진로 상담을 겸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당시 둘은 술을 마셨으며, 이토의 기억은 2차에서 끊겼다. 고통과 함께 깨어났을 때는 야마구치가 숙박 중이던 호텔이었고, 야마구치는 피임 도구도 없이 성행위하고 있었다.

법원은 이토 씨의 주장에 대해 ”강(强)도의 명정 상태였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명정 상태’는 기억을 잃을 정도로 취한 상태를 말한다. 이토 씨는 그 상태로 의식을 회복하고도 몸을 짓눌려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토 씨의 주장에 대해 샤워를 하지 않고 혼자 호텔을 나온 이토 씨의 행동이 합의된 성관계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성급하다”라며, ”호텔에서 빨리 떠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또한 이토 씨가 다음 날 사후 피임약을 처방받았다는 사실이 이 성행위가 예기치 않은 사건이었음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특히 가해자인 야마구치가 TBS의 워싱턴지국장에서 해임되기 전에 경찰이나 친구에게 사건을 알린 것을 두고 ”굳이 허위 신고를 할 동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상대방의 주장대로라면 취업 알선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TOKYO, JAPAN - DECEMBER 18: Shiori Ito smiles during supporters gathering at Nihon Christ Kyokai Kashiwagi Church on December 18, 2019 in Tokyo, Japan. A Tokyo court awarded 3.3 million yen (US$30,000) in damages to journalist Shiori Ito, who accused a former TV reporter of rape in one of Japanese #MeToo movement cases. (Photo by Takashi Aoyama/Getty Images)
TOKYO, JAPAN - DECEMBER 18: Shiori Ito smiles during supporters gathering at Nihon Christ Kyokai Kashiwagi Church on December 18, 2019 in Tokyo, Japan. A Tokyo court awarded 3.3 million yen (US$30,000) in damages to journalist Shiori Ito, who accused a former TV reporter of rape in one of Japanese #MeToo movement cases. (Photo by Takashi Aoyama/Getty Images) ⓒTakashi Aoyama via Getty Images

법원은 야마구치 측의 주장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합의 하의 성관계’라는 야마구치 씨의 진술에 큰 허점이 있었다. 야마구치는 이토 가 자신의 호텔 방에서 깨어나 ”나는 왜 여기 있나요?”라고 물었으며 이후 취업 활동에 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나는 왜 여기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것 자체가 호텔 방에 들어서는 데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또한 법원은 앞서 이토 씨가 2차인 초밥집에서 명정상태가 되어 호텔 거실에 도착한 후에도 구토했을 만큼 취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야마구치 역시 ”혼자서 옷을 벗지 못할 만큼”이라고 진술했다. 법원은 그런 상태에서 약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취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는 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야마구치는 사건 이후 이토 씨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이토 씨가 자신이 자고 있던 창가 쪽 침대로 들어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 진술에서는 ”이토 씨가 자신을 불러서 창가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가 이토 씨가 자는 입구 쪽의 침대로 이동했다”고 진술해 이야기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은 침대가 두 개 있는 트윈룸이었다.

법원은 이토 씨의 진술이 야마구치 씨의 진술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해 음주 상태로 의식이 없는 이토 씨에게 야마구치가 합의 없는 성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토 씨가 의식을 회복한 후에도 몸을 짓누르며 성행위를 계속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야마구치는 이 판결에 불복한다는 기자 회견에서 ”내가 말한 것, 내가 목격한 것, 내가 설명한 부분들이 모조리 부정당했다”라며 항소의 의지를 밝혔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18일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연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기자. 
18일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연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기자.  ⓒCHARLY TRIBALLEA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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