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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7일 13시 31분 KST

노량진역 대합실에서 숨진 이를 위한 레드카펫이 깔렸다

서울역 광장에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됐다.

한겨레
지난 한 해 동안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계단에 마련돼 무연고 사망자 등 이름이 적힌 액자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다. 41개 시민사회 단체의 연대체인 ‘2019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부터 22일까지 ‘홈리스 추모주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1959년생 신모씨는 지난 10월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여인숙에서 숨졌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는 물론 연고자도 알 수 없었다. 동료는 있으나 가족이 없는 그의 죽음은 ‘무연고 죽음’으로 분류되었다. 1959년생 윤모씨도 지난달 20일 노량진역 대합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찬가지로 숨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족이 있으나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윤씨 역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엔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한 고운 레드카펫이 깔렸다. 카펫 위엔 166개의 액자가 가지런히 놓였다. “1957.12.3~2019.3.4 고 김종용님”, “1982.?.?~2019.4.6 고 신애란님”. 액자 속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의 거리와 쪽방 등에서 연고 없이 숨진 166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세상을 떠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살아서 꽃길을 걷지 못했던 이들의 영전엔 166송이의 장미가 놓였다. 2019 홈리스(노숙인) 추모주간을 맞아 설치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다.

홈리스행동 등 41개 시민단체가 꾸린 ‘2019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한해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고 노숙인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발언에 나선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난 10월에 발표된 정부 대책에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임대주택 2천호를 제공하겠다고 나와 있다. 이는 매년 정부가 책정해온 숫자다”라며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비주택 가구가 45만 가구인데 2000호 공급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공급계획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0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중구 양동지구 재개발 사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양동지구엔 남대문 쪽방촌이 몰려 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와 중구청의 양동재개발구역 계획을 보면 쪽방 주민을 위한 계획은 단 한 글자도 없다. 공원이 세워지든 건축물이 세워지든 주민 못 들어가는 건 명약관화다”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쪽방 주민들이 쫓겨나는 개발이 아니라 다시 주거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양동 쪽방 개발 거주민에 대한 대책 마련하라”나 “양동지역 정비계획보다 쪽방주민 주거대책 우선이다”는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한겨레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행동 등 41개 단체가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선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명의도용 범죄’ 피해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선 통장이나 카드를 대여해준 이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징역형이나 벌금을 매긴다. 명의범죄 피해자들을 가해자 공범으로만 취급하는 국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며 “경제적으로 궁박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묻는 것은 실질적 평등이 아니다. 실제로 이익을 보거나 소득을 얻지 않은 사람이 모든 채무 부담을 지고 평생을 국가 빚에 신음하는 결과 또한 정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열아홉 해를 맞은 홈리스추모제는 22일 저녁 6시 40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다. 추모제에선 추모발언과 노래공연, 홈리스 권리선언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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