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9년 12월 16일 17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1월 31일 13시 05분 KST

[마이너리그] 불확실성에서 살아 간다는 것, 럭비선수 류재혁 이야기

27살 비인기 종목 스포츠 선수의 삶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과 비슷하게도.

새벽녘에 눈을 비벼 일어나 헐레벌떡 탄 오전 8시 기차의 종착지는 포근했다. 포항으로 향한 이유는 꽤 긴 인스타그램 DM때문이었다. 메시지는 ″전 현재 럭비선수의 여자친구이고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란 문장으로 시작했다. 

스튜디오허프의 ‘마이너리그’ 제작진은 그동안 총 두 종목(수구, 기계 체조), 네 명의 선수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메달의 무게가 아닌 불안의 무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HUFFPOST KOREA/SUJONG LEE
럭비선수 류재혁

직업 운동선수들의 삶은 이렇다. 빠르면 초등학교, 늦으면 중학교 때부터 종목을 결정하고 엘리트 체육의 길로 들어선다. 엘리트 체육이란 각종 대회를 위해 운동에 집중하는 교육 코스인데 이 때부터는 각종 주니어 대회를 준비한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대학팀 혹은 실업팀에서 전국체전 메달 획득과 국가대표 발탁을 위한 훈련에 들어간다. 엘리트 체육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 최소 10년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은퇴하면 뭘 할까”가 이들의 최대 고민인 이유다. 

포스코건설 럭비팀 소속 류재혁 선수(27)는 ”지금부터 솔직히 걱정”라고 말한다. 앞으로 살림을 차려 하는 예비 신랑의 무게가 짐작 가는 대목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인가요?

= 솔직히 걱정되죠.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운동이란 것만 해왔는데 은퇴를 하면 뭘 할까. 첫 번째에요 제일. 지금도 그렇고. 솔직히 운동선수가 은퇴라는 걸 정해놓고 은퇴하진 않거든요. 그냥 그 해 다치면 그 해에 당장 그만둘 수도 있는 거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될 거 같아요. 은퇴하기 5년 전, 6년 전에는 준비를 해야죠. 

현직에서 럭비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님은 럭비를 계속할지 고민했을 때가 있었나요?

=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크게 다쳤을 때). 손이랑 목이랑 같이 다치니까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또 오른손잡이인데 오른손이 다쳐버렸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다치고 생각했어요. 내가 계속 해야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어요. 재밌으니까. 다쳐도 하고 싶고 오히려 다치면 더 독기를 품는 거 같아요. 

HUFFPOST KOREA/HANGANG KIM
럭비선수 류재혁

진지하게 그만두는 걸 고민해 본 건 17년도 이후엔 없어요?

= 크게 다치고 난 거 말고는 진지하게 ‘그만 둬야지’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왜냐면 이제 보상을 받잖아요. 

무슨 보상이요? 

= 팀에 있다 보니까 월급을 받잖아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생인데. 돈을 받는 게 어딨어요. 근데 실업팀 들어와서 첫 월급 딱 받고, 들어오자마자마 전국체전 우승했거든요. 우승에 대한 수당을 받으니까 거기서 더 재밌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해서 이기면 이런 보상이 있구나. 그러니까 더 이 악물고 하게 되더라고요. 

HUFFPOST KOREA/SUJONG LEE
럭비선수 류재혁

은퇴 뒤 삶에 대해서 계획하시고 계신가요?

= 저는 아직까진 계획 없어요. 실업팀 입사하고 나서 10년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10년 되려면 아직 7년이 남았거든요. 근데 지금부터 은퇴 뒤 삶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럭비 지도자나 대학교를 나올 때 교육학과를 나와서 다행인 거는 자격증이 있다는 거. 

교사 자격증이요?

= 네. 교사 자격증이 있는데 대신 사립만 들어갈 수 있죠. 사립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임용을 보자니 공부만 했던 사람들이 임용 보는 거도 힘든데 운동만 했던 우리에겐 얼마나 더 힘들까. 현실의 벽에 막히고. 도전하고 싶지만 할 수 없죠. 

 

아이러니하다. 대중에게는 연속된 도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개인의 삶에선 ‘도전’이란 단어와 싸워나간다. 열광하는 스포츠 스타도 주목받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도 아닌 그들의 삶. 국내 럭비 실업팀은 일반부는 네 곳 뿐이다. K리그가 1부와 2부 합쳐 22 개팀이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96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 럭비팀의 올림픽 진출이 값진 이유다.

치열한 싸움을 이르면 초등학생, 늦어도 중학생 때는 시작하는 이들. 아이유가 노래 <이름에게>에서 읊조린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처럼 그들의 이름이 마음속에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류재혁 선수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럭비선수셨어요.” 그의 아버지 류준열씨는 지금은 사라진 한양대학교 럭비팀 선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막막한 길을 이미 걸었던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아들에게 권유할 수가 있지. 나는 그의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류재혁 선수의 아버지는 대학교 4학년 때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는 당시를 ”아 끝났네. 어떡하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 두 문장으로 회상했다. 중학교부터 시작됐던 그의 인생 1막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류재혁 선수 제공
류재혁 선수와 아버지

* 아래 박스는 류재혁 선수 아버지 류준열 전 선수의 인터뷰다

부상으로 럭비를 그만두셨다고요?

= 그 당시에는 재활이란 게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장교 시험을 보게 돼요. 학사 장교. 선배들이 공수부대, 특전사나 육군 쪽으로 많이 가셨으니까 그러면 그것도 평생직장이 되잖아요. 저는 사실 직업군인 되려고 했어요. 그 당시에 집안 환경도 많이 어려웠었고. 근데 또 학사 장교에 떨어지더라고.

그때 선수들이 너무 많았거든. 재밌었고. 그때는 오전 수업하고 운동하고 그러니까 부대끼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는 지금도 럭비 동호인 대회를 뛴다. 그게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동호인 대회를 나가시면 항상 저를 데리고 가셨기 때문에 눈앞에서 그냥 동호인 시합 보고하니까. 그때 럭비가 무슨 스포츠인지 알게 됐죠.”

 

아들에게 럭비를 권유한 걸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 (아들이) 크게 다친 게 3년 전에 좀 다쳤죠. 내가 (경기) 영상을 봤는데 (아들) 여자친구가 보내줘서 하이태클 들어가면서 아이가 붕 뜨더라고요. 그때 많이 다친 줄 몰랐죠. (아들이) 외국에 있었으니까. 근데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 저 좀 다쳤어요”. 솔직히 울었어요. 내가 잘못시킨 거 아니었나. 럭비에서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 그러니까 내 몸을 희생하는 부분이고 협동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내가 살아나가는데 지장이 없다고 봤어요. 그래서 사실 내가 아들 운동 시킨 것도 그것 때문에 시켰던 거고.

HUFFPOST KOREA/SUJONG LEE
류재혁 선수 아버지/류준열 전 럭비선수

럭비를 했던 다른 선후배분들도 많이 아실 것 같아요. 은퇴 뒤 어떤 길을 가시는지 궁금해요.

= 지금 지도자 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지도자로 계신 분도 있고, 한국 전력에 계신 분도 있고 거의 정년 앞두셨지 다들. 저 때만 해도 진짜 럭비의 로망이 한국 전력이었어요. 제 후배들만 해도. 일단은 운동을 은퇴하게 되면 일단 일반직으로 전환을 해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니까 정년까지. 근데 지금 뭐 럭비 하는 분들을 보면 사업하시는 분 많아요.

 

2002년 한국 럭비팀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럭비인들이 럭비 붐을 기대했다고 한다. 

= 2002년 아시안게임. 그 당시에 부산 아시안 게임 있거든요. 그때 우리 한국이 우승을 했어요. 대한민국이. 그 당시 육군사관학교 계셨죠 노태우 전 대통령 계시죠. 그분이 럭비선수 출신이에요. 그때 진짜 큰 붐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럭비인들은. 근데 그게 유야무야 됐어요. 어떤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노력은 꽤 많이 한 거로 알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된 게 너무 아쉬운 거죠.

HUFFPOST KOREA/SUJONG LEE
럭비선수 류재혁

스포츠 다큐 시리즈: 마이너리그

허프포스트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허프’가 스포츠 다큐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운동선수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더 많은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김한강 에디터: hangang.kim@huffpost.kr

사진=이수종 에디터: sujong.lee@huffpost.kr

김한강 에디터: hangang.kim@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