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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피임 금지로 양산된 차우셰스쿠의 고아 2만명이 불필요하게 죽었다

루마니아 독재 정권에서 벌어진 참사다

Adorable orphan baby w. AIDS, peering through the slats of her iron crib as she rocks herself on her hands & knees for stimulation in the infectious disease clinic of Colentina Hospital. (Photo by Taro Yamasaki/The LIFE Images Collection via Getty Images/Getty Images)
Adorable orphan baby w. AIDS, peering through the slats of her iron crib as she rocks herself on her hands & knees for stimulation in the infectious disease clinic of Colentina Hospital. (Photo by Taro Yamasaki/The LIFE Images Collection via Getty Images/Getty Images) ⓒTaro Yamasaki via Getty Images

루마니아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대다수의 국민을 기아에 허덕이게 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만행 중 가장 잔혹한 건 ‘차우셰스쿠의 잊힌 아이들’이라 불리는 고아들이다.

만악의 근원은 인권을 무시한 출산 강제 정책에서 비롯됐다. 차우셰스쿠는 1966년 집권 후 강대국이 되려면 인구를 늘려야 한다면 불법 낙태를 1~5년 형에 처하고 피임 용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한 5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가정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당시 이 정책으로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1.9명에서 3.9명까지 올라가기는 하였으나 이후 20년에 걸쳐 루마니아의 경제가 악화되면서 사실상 불법 낙태와 고아만을 양산했다.

차우셰스쿠가 1989년 12월 25일 즉결 재판에 따라 처형 당한 뒤 서방 세계에 드러난 루마니아 고아원의 실상은 루마니아가 겪어온 참혹한 역사를 보여준다. 17만 명의 고아들이 창고나 다름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보살핌 없이 자라고 있었다. 대부분은 쇠꼬챙이처럼 마른 몸에 멍이 든 상태였고, 몇몇 아이들은 침대에 묶여 있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수혈이 건강에 좋다는 비의학적인 믿음이 있었는데, 차우셰스쿠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다면 수혈을 지시해 대규모로 HIV에 감염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1966년부터 1989년 사이 죽지 않았어도 될 아이 1만5000~2만명이 사망했다고 본다. 반대로 말하면 잘못된 출산 정책과 열악한 고아원의 환경이 2만명의 아이를 죽인 것이다. 차우셰스쿠가 자신의 친위대 ‘세쿠리타테’의 다수를 이 고아들 중에 선발했다는 사실은 악마적이기까지 하다. 

Excruciatingly malnourished, orphan baby girl, age 2, clad only in a diaper, dying of AIDS as she is held upright in crib by the hand of an examining doctor in the AIDS ward at the Municipal Hospital of Constantsa, Romania.  (Photo by Taro Yamasaki/The LIFE Images Collection via Getty Images/Getty Images)
Excruciatingly malnourished, orphan baby girl, age 2, clad only in a diaper, dying of AIDS as she is held upright in crib by the hand of an examining doctor in the AIDS ward at the Municipal Hospital of Constantsa, Romania. (Photo by Taro Yamasaki/The LIFE Images Collection via Getty Images/Getty Images) ⓒTaro Yamasaki via Getty Images

루마니아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당시의 관련자들에게 그 죗값을 물으려 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루마니아 검찰은 차우셰스쿠 집권 시절의 학대 정황을 파헤치는 공산정권 범죄조사위원회의 오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십명의 사람을 조사 중이다. 조사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검찰에 넘긴 시점은 2017년. 루마니아 검찰은 ”사건의 규모가 너무 커 증거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계속 조사 중이라는 입장이다. 첫 기소는 내년 중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가장 끔찍한 범죄는 장애 아동 격리 수용 시설에서 벌어졌다. 가족에게서 강제로 격리된 장애 아동들은 3살이 되면 ‘치료 가능‘, ‘부분 치료 가능‘, ‘치료 불가능‘으로 분류되었으며, 후자로 분류된 아이들은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렸다. ‘치료 불가능’ 등급을 받은 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은 당시 루마니아에 26개소가 있었다. 조사위는 이 중 3개소를 선택해 조사했는데, 이들 시설에서 있었던 사망 중 771건을 ‘불필요한 사망’으로 진단했다. 

조사위의 한 조사원은 가디언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장애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었다”라며 ”사망한 아이들의 70%는 폐렴 때문에 죽었다. 예방 가능하고 치료 가능한 외부 요인에 의해 죽었다는 얘기”라고 밝혔다. 

루마니아 내부에서도 과거사를 끄집어 내는 일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심지어 이런 장애 고가 시설에서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들 중에서도 ‘미래를 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고아원에 보내진 플로린 칸타네스쿠(41)는 ”긍정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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