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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에 염소를 샀던 소녀의 11년 후의 모습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코이카 이사장 김수현, 박진무, KCOC 회장 표창 김인권, 조덕림

  • 황혜원
  • 입력 2019.12.12 10:52
  • 수정 2019.12.12 17:42
ⓒAlexander Stucke / EyeEm via Getty Images

16살 소녀, 쌈짓돈을 염소 사는 데 쓰다

박진무 씨는 어릴 때부터 ‘우간다에는 꼭 가야지’ 생각했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진행한 ‘우간다에 염소 한 마리 보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부터다. 내 돈으로 누군가를 도운 첫 경험이었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있는 우간다는 1986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무세베니 대통령과 그에 대한 북부 무장반군의 내전으로 20여 년간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했다. 당시 여러 구호단체는 우간다에 ‘살아있는 대출’이라 하여 염소 보내기 운동을 했었다.

16살, 쌈짓돈으로 염소를 보냈던 박 씨는 11년 뒤인 2017년 12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일반봉사단원으로 우간다 땅을 밟았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성매매 여성 지원 업무를 했던 박 씨가 우간다에서 맡은 임무는 ‘취약 계층 여성 자활’ 이었다. 

(가운데) 우간다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박진무 씨
(가운데) 우간다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박진무 씨

우간다는 제도적인 ‘여성 평등 정책’은 어느 정도 갖추어진 나라다. 국회의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해 2015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35%에 이른다. 초등학교 남녀 성비도 1.02:1로 거의 같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도 남성의 93.7%로 차이가 크지 않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포럼(WEF)이 2018년 발표한 ‘성격차지수’를 보면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한국이 118위인데 반해 우간다는 43위다. ‘선진국’ 미국(51위)보다 우간다 등수가 높다.

그러나 이 점수에는 ‘현실’이 반영돼 있지 않다. 박 씨가 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곳은 수도 ‘캄팔라’에서 차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나오는 ‘음피지’라는 마을이다. 박 씨는 음피지에서 1시간쯤 더 가면 나오는 농촌 지역 ‘부와마’에서 만난 호쾌하고 따뜻한 마마들(아주머니를 일컫는 현지식 표현) 덕분에 실상을 알게 됐다.

마마들은 대개 오전 5~6시에 일어나 ‘밭일→아침 차리기→아이들 학교 보내기→집안일→남편 점심 챙기기→밭일→집안일→가족 저녁 챙기기→집안일’로 온종일 가사노동과 농업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반면 이들의 남편은 설문조사에서 일과를 대개 ‘밭일 → 아침 먹기 → 일 구하러 나가기→집에 와서 저녁 먹기→잠자기’라고 답했다.

2018년 KOTRA 보고서에 따르면 우간다 인구의 70~80%가 농업에 봉사하고 있다. 특히 농업 종사자는 여성이 83%로 남성 (71%) 보다 비중이 더 높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여성은 쌀 등 주식과 원예작물 생산을 담당하고, 판매와 소득을 관리하는 것은 모두 남성이다. 일은 여자가 하고, 돈은 남자가 버는 구조다. 온종일 일해도 여성에게 직접 쥐어지는 돈이 없다.

(가운데)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한민국해외봉사상 KOICA이사장 표창 박진무 씨
(가운데)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한민국해외봉사상 KOICA이사장 표창 박진무 씨

박 씨가 마마들과 마을 청년 싱글맘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돈 버는 일’이었다. 박 씨는 이에 코이카 사업으로 2018년 10월~2019년 6월까지 ‘인권 존중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역량 강화를 통한 농촌 여성 지위 향상 사업’을 진행했다. 시골 마마들을 대상으로는 야외 행사장을 세팅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케이터링 서비스’를 교육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청년 싱글맘들에게는 직업 기술 훈련을 위한 ‘재봉기술 교육’을 진행했다.

재봉기술을 수료한 청년 싱글맘들은 현재 지역 재봉기술 강사로 등록돼 지역에서 강의할 수 있게 됐다. 교육을 수료한 우간다 여성들은 2019년 5월 ‘투쏘볼라!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재봉 가게를 열어 물건을 만들고 판로 개척하고 있다. “나무테비!”, “나무테비!” 박 씨가 가는 곳 어디에서든 우간다 마마들이 정겹게 이름을 불러주기에, 박 씨는 하루하루 따뜻하고 흥겹게 지내고 있다.

 

와토토 웨마!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아프리카 최대 호수 빅토리아호를 우간다와 공유하고 있는 나라 탄자니아에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김수현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7년 1월, 탄자니아에 도착한 김 씨가 만난 것은 세렝게티 평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기린, 얼룩말이 아니었다. 빅토리아 호숫가를 터전 삼아 먹고 자고 씻는 ‘거리의 아이들’이었다.

김 씨가 파견된 지역은 탄자니아 수도 ‘도도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면 나오는 ‘므완자’다. 인구 47만여 명이 사는 탄자니아 제2의 상업 도시로 빅토리아 호수 남쪽에 있다. 김 씨가 탄자니아에 도착했을 때는 한 달에 열흘 이상은 비가 내리는 계절이었다. 멀리서 비둘기처럼 까맣게 앉아있는 것이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새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비가 오면 근처 건물 처마 밑에서 얇은 옷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면 빅토리아호에서 목욕하며 수영하고, 구걸해서 끼니를 때웠다. 가끔은 페트병을 모아 팔고 푼돈을 손에 쥐었다.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한민국해외봉사상 KOICA이사장 표창 김수현 씨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한민국해외봉사상 KOICA이사장 표창 김수현 씨

“탄자니아에는 정말 어린이 노숙인이 많아요. 일부일처제가 정착돼 있지 않아 남성들은 보통 결혼을 너덧 번씩 하고, 여성들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를 낳아요. ‘자녀 부양’에 대해 부모들이 의무감이 없어요. 가정에서 폭력에도 자주 노출되고...” 그렇게 아이들은 집을 나와 호수와 거리에 기대어 지내고 있었다.

김 씨가 파견된 기관은 므완자의 한 초등학교였다. 학교에는 60명의 장애아동이 등록돼 있었지만, 제대로 된 교실 한 칸이 없었다. 매일 5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올까 말까 했다. 김 씨는 코이카 사업으로 교실을 짓고 교육 활동을 시작했다. 대여섯 명 출석하던 ’특수학급’에 매일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출석했다. 학습은 물론 옷 입기, 화장실 가기 등 생활교육을 하고, 주 1회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집에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애썼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김 씨와 코이카 단원들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1주일에 한 번씩 과학, 미술, 음악 등을 교육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페트병 담는 포대를 나눠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신뢰를 쌓아가며 아이들이 자립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재봉기술을 함께 배워보기로 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전통 의상 ‘키팅게’를 거리의 옷 가게에서 사 입는다. 아이들이 재봉기술만 있으면 굶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재봉기술훈련 할 공간을 빌려 아이들에게 매주 재봉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였다. 저마다 아프리카 특유의 화려한 색깔과 기하학적 무늬를 가방에 수 놓았다.

와토토 웨마의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와토토 웨마의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김수현 씨와 코이카 단원들은 이 아이들의 ‘가방 공방’이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와토토 웨마(WATOTO WEMA)’라고 이름 짓고 지역 NGO로 등록했다. ‘와토토 웨마’는 ‘좋은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탄자니아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 ㈜세경이 매달 가방 100개씩 물량을 주문한 뒤 탄자니아 지역 학교에 나눠주는 사회공헌 활동을 함에 따라, 아이들은 매달 일정 수준의 월급을 받고 방을 구해 자립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아이들은 쑥쑥 컸다. 키 165cm인 김수현 씨 어깨에도 닿지 않던 10대 소년 라파엘은 방을 구해 살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김 씨보다 훌쩍 컸다.

코이카 파견 기간 3년을 채운 김 씨는 2020년 1월에 한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김 씨는 탄자니아에서 말라리아, 장티푸스, 브루셀라병 등 온갖 풍토병을 다 앓으며 고생했지만, 그를 만나 함께 자립해 나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쁘다. 다만, 여전히 빅토리아 호수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거리의 아이들’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김 씨를 비롯한 코이카 단원이 바뀐 뒤 ‘와토토 웨마’의 지속가능성도 걱정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귀국일을 앞두고 매일 밤잠을 설친다.

 

통가왕국 장애 아동들의 산타

김인권 선교사는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아예 2007년, 타국에 정착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통가왕국이 김 선교사 가족이 정착한 곳이다. 170개의 섬으로 이뤄진 통가왕국은 32개 섬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폴리네시안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17년 기준 5,900달러로 7,0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저개발 국가다.

그는 대학 시절인 26살 때부터 장애인 재활 시설에서 지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직업 재활 훈련 봉사활동을 하다 굿네이버스 등 국제구호 개발 NGO 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장애아동과 빈민을 위한 일을 시행해 왔다. 통가왕국에서의 일도 다르지 않다. 그가 통가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장애아동들을 위한 재활 치료센터인 ‘망고트리 센터’를 세우는 일이었다.

기증 받은 휠체어를 고쳐서 나누어 주려고 준비하는 모습
기증 받은 휠체어를 고쳐서 나누어 주려고 준비하는 모습

김 씨는 2007년 통가 공립 병원에 갔을 때, 통가왕국 전체에 물리치료사가 단 1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때문에 뇌성마비 등을 앓는 장애 아동들이 재활치료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김 씨가 책을 보고 재활 치료를 배워 통가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더듬더듬 재활 치료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뉴질랜드의 의료봉사단체와 연결돼 해당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물리치료사를 파견함에 따라, 현재 60명의 발달장애 아이들이 망고트리 센터에서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 각종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집 짓는 일도 중요한 사업이다. 통가의 가난한 이들은 벽돌 살 돈이 없어 수풀 속 움막, 천막에 살거나 나뭇가지로 적당히 얽은 집에서 산다. 역시 다른 나라 단체들과 연대해서 2008년부터 총 10채의 집을 지어줬다. 주로 장애아동들이 있는 가정에 집을 지어줌에 따라, 장애아동은 그 집안의 ‘귀한 선물’이 됐다.

또, 절단 장애인, 전신 마비 환자 등 신체적 특성에 맞게 특별히 휠체어를 조립해 휠체어를 제공하는 일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200대의 휠체어를 제공했다. ‘장애인 복지’ 개념이 없다시피 한 통가에서 김인권 선교사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주는 산타와 다름없다.

 

20년간 3천 명의 세끼를 책임지다

통가왕국 장애아동들에게 ‘김인권 산타’가 있다면, 필리핀에는 ‘조덕림 산타’가 있다. 수녀회에 입회하기 전 한국은행에서 일했던 조덕림 마리아 수녀는 1981년 수녀회에 입회한 뒤 1990년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필리핀 ‘소년, 소녀의 집’에는 가난해서 부모가 직접 돌보기 힘들거나 부모가 없는 필리핀 아이들 3,000명이 지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덕림 수녀는 3,000명 아이의 먹거리를 조달하기 위해 매일 새벽 필리핀 라보따스 해산물 시장, 알라방 채소 시장, 디비소리아 시장에 가서 먹거리를 장만해왔다.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회장 표창 조덕림 수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회장 표창 조덕림 수녀

아이들이 처음 입소할 때는 밥 먹어 본 지가 오래돼서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석 달쯤 지나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고 쑥쑥 자라 죄다 옷을 바꿔줘야 하게 됐다. 조 수녀는 1991년~2010년까지 무려 20년간, 3,000여 명의 필리핀 아이들의 배를 두둑하게 해 준 ‘일상의 산타’였던 셈이다.

현재 조덕림 수녀는 2011년 마리아수녀회 총 원장으로 선출돼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 온두라스, 탄자니아 등 7개국에 있는 마리아수녀회 기숙학교 운영을 위해 세계 각국을 다니며 후원자를 찾고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들 봉사자 4인에게 각각 2019년 제14회 대한민국해외봉사상 KOICA이사장 표창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회장 표창을 수여 했다.

 

* 해당 기사는 박수진 작가의 원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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