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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민주주의 정당에 '카오스 보터'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Chaos Voter
Chaos Voter ⓒILLUSTRATION: DAMON DAHLEN/HUFFPOST; PHOTOS: GETTY

하나의 유령 - 카오스라는 유령이 민주주의에 떠돌고 있다.

지난 여름, 미국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는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새로운 ‘심리적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연구자 세 명에게 최고 영예의 상을 수여했다. 이들이 ”카오스에 대한 욕구(Need for Chaos)”라는 불길한 이름을 붙인 이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 민주주의 사회들”에서도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 새로운 ‘카오스 보터(chaos voter)’ 이론은 미국 정치 담론에서 빠른 속도로 일반적 통념이 되어가고 있다. 이 이론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동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 논문뉴욕타임스 기명 칼럼에 실렸고, 에스콰이어뉴욕매거진이 자세히 다뤘으며, 민주당 기득권층에 대한 방어와 이들의 지적 파산의 증거로 워싱턴포스트슬레이트에 언급됐다.

카오스 보터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둔감한 학문적 활동이 아니다. 이 개념은 2020년 대선을 향해가는 민주당원들이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을 이해하는 방식을 전환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당선 가능성’은 열혈 민주당원들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애매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큰 결함이 있으며 오해의 소지가 높다. 트럼프 지지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에 대해서도 여러 시사점을 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연구가 트럼프 대통령이나 트럼프 지지자들을 특정해서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의 정치학자 두 명과 필라델피아주 템플대학교의 정치학자 등 세 명의 학자들은 덴마크와 미국에서 ‘적대적 정치 루머’가 소셜미디어에 퍼지는 것을 함께 관찰했다. 어처구니없는 음모론부터 실제 정치 스캔들에 대한 열렬한 관심까지를 아울렀다. 이들은 5000명 넘는 미국인들과 1300명 넘는 덴마크인들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그런 것들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사람들은 사실 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는 행위는 ‘엘리트’들을 폭넓게 겨냥한 정치적 반항이었고, 이들의 주요 동기는 대중을 계몽하려는 게 아니라 이러한 권력자들에게 해를 입히려는 것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반항이 전통적 의미의 당파적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대적인 루머를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모두 공격했고, 이로 인해 어떤 당이나 후보가 정치적 이득을 얻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적대적 정치 루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폭력적 행동주의’(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명칭인데 잠시 후 추가로 설명하겠다) 및 ‘카오스에 대한 욕구’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8가지 종말론적 선언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 “나는 외국에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신이 난다.”
  • “자연 재해가 인류 대다수를 쓸어버려 소수의 사람들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공상을 한다.”
  • “내 주위에 카오스가 필요하다. 아무 일도 없으면 너무 지루하다.”
  • “가끔 그냥 아름다운 것들을 파괴하고 싶을 때가 있다.”
  •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다.”
  • “나는 사회가 싹 불타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의 정치와 사회적 제도를 생각하면 ‘다 불타 없어져라’라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다.”
  • “우리의 사회 제도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제도를 다 부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격한 선언일수록 동의하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지지하는 것과 소셜 미디어에서 적대적 정치 루머를 공유하는 것은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이 모든 건 직관적으로 볼 때 얘기가 된다. 페이스북에서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학계 연구자들에게 괴팍스러운 말을 할 가능성이 아마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의 가장 놀라운 결론은 정신 나간 비주류에 대한 게 아니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40%는 정치 제도를 “모두 불태우고”, “다 부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표현에 동의를 밝혔다.

연구자들은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카오스적 동기는 정치적 냉소와 포퓰리즘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전통적 불만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본다.” 연구진이 적었다. ”이는 급진주의와 관련된 정서의 전조와 더 유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폭력적 폭동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소셜미디어에서의 광기는 르완다와 발칸 반도에서 인종 청소 이전에 입소문으로 퍼졌던 루머와도 비슷하다고 연구진은 결론 내렸다.

심호흡을 하고 계속 들어보자. 미국에서 파시즘의 위협은 아주 생생하다. 파시스트 집단이 길거리에서 날뛰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2년 전 버지니아주 샬럿츠빌에서는 한 여성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연구가 ‘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연구자들이 파괴적 언어를 다룬 방식에도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연구자들이 폭력적 행동주의나 정치적 폭력을 실제로 연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에 폭력적 활동가들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 연구에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 이 세 명의 정치학자들은 설문 참가자들에게 폭력에 관련되는 도덕적으로 복잡한 가상의 상황에 답변하도록 했다. 일례로 “나는 내 집단의 일원을 때리는 것을 본다면 경찰이나 보안군을 공격할 것이다.”라는 문항이 포함됐다.

이에 대한 응답들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잠재적 ‘폭력적 활동가’ 운동의 일부라거나, 실제로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라고 곧바로 결론내릴 수는 없다. 정치적 폭력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싶다면, 실제로 정치적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연구하고,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관찰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 이러한 결함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가장 강렬한 결론을 뒤흔드는 약점이다. 논문 전반에 걸쳐서 이들은 연구한 적도 없는 ‘폭력적 행동주의’의 지지자들을 내내 언급하고 있다.

“다 불태운다”는 것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이건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언급할 때 그냥 쓰는 표현이다. 우리의 언어에는 폭력적 의도를 표현하지는 않는 폭력적 관용구가 많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두들겨 팼으면 좋겠다”는 말은 한 야구팀이 다른 야구팀을 주먹으로 때리길 바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9이닝 동안 우리 팀이 점수를 더 많이 냈으면 좋겠다는 뜻일 뿐이다.

Chaos Voter
Chaos Voter ⓒILLUSTRATION: DAMON DAHLEN/HUFFPOST; PHOTOS: GETTY IMAGES

 

“모든” 정치적, 사회적 제도가 박살나길 바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제도가 ‘정치적’ 또는 ‘사회적’일까? 결혼? 건강보험 회사들? 의회? 군대? 연구자들은 이를 파헤쳐 보지 않은 채 그저 ‘불만스러운 과격분자들(discontent radicals)’이 ‘카오스’라는 깃발 아래 ‘민주주의’에 대항해 ‘동원’하는 일에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지지를 보낸다고 결론내렸다.

이렇게 지독한 단점이 있는 연구가 주요 정치학 상을 탔다는 사실은 이 분야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연구가 완전히 무의미한 건 아니다. 집단 학살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 살펴 보면 이들의 연구에서 배울 점은 많다.

적대적 정치 루머를 가장 많이 공유한 사람들은 비교적 교육 수준이 낳고 높은 수준의 ‘외로움’을 느끼며 사회계층의 아래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끼는 젊은 남성들이라는 게 연구 결과의 중요한 점 중 하나다. 이렇게 느끼는 젊은 남성들이 그렇게나 많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고다. 이들 중에는 공감을 받을 만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젠더에 대한 전통적 기대 때문에 남성들이 수치심과 좌절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주류 진보 담론에서는 흔히 간과되는 점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이 성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굴욕감, 배제되는 느낌을 동시에 받기가 쉬우며, 극우 세력들은 그들이 언제든 분노를 해소할 쉬운 타깃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다.

민주당이 외롭고 분노하는 젊은 남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빠르고 쉽게 되는 것들은 아니다. 민주당이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Medicare for All)’을 홍보하거나 트럼프가 새 무역 법안을 통과하도록 돕는 것으로 극우 인터넷 트롤들을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끌어올 수는 없다.

다행히 모든 사회적, 정치적 제도를 불태워도 괜찮다고 답한 40%의 미국인 중 대다수는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트롤들이 아니다.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현재 미국의 상태에 대해 분노를 품은 유권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분노가 지지 정당과는 상관이 없다는 부분이다. 이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힘을 합쳐 상식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빌 클린턴이 공화당의 은행 규제 완화 법안에 서명하던 시절이나 민주당이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표를 던지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두 당이 힘을 합쳐 장기적 연방 재정적자를 낮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원하는 사람들은 당파 싸움이 지겹다고 말할지언정 미국의 모든 사회적, 정치적 제도가 불탔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카오스 보터 연구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도 많다. 사람들이 왜 현재의 정치 시스템을 싫어하는지, 그 중에서 어떤 부분을 싫어하는지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이들 중 백인 네오 남부연합주의자가 얼마나 되는지, 히스패닉 철강 노동자가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2016년 대선에서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중 누구를 지지했는지도 모른다. 2020년에 이들 중 털시 개버드나 피트 부티지지를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경선에서 민주당 유권자와 워싱턴의 민주당 지도부는 2016년에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을 끌어올 방법은 트럼프를 모방하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 행동해왔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노조와 진보적 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최근 제안한 무역 법안의 지지표를 끌어오려고 하고 있다. 현재 다음 민주당 토론에 참가할 자격이 되는 경선후보들은 모두 백인이다. 그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든 ‘너무 진보적’인 후보는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만연하다. 이같은 인식은 큰 변화를 약속하는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위험이 있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카오스 보터 연구는 현실을 바로 보게 해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미국의 40%가 시스템을 불태우고 싶다고 말하는 지금, 조심하는 것보다는 변화가 더 유리할 것이다.

 

* 허프포스트US의 The Democratic Party Confronts The Chaos Vot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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