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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낫게 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국인 의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외교부장관 표창 임현석, 강미주

  • 황혜원
  • 입력 2019.12.11 09:53
  • 수정 2019.12.12 17:30
ⓒnarvikk via Getty Images

우간다 병원 설립 프로젝트

‘우간다에 믿을 수 있는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1992년 코이카 정부파견의로 마케레레 국립의대 부속병원에서 일하던 유덕종 선생과 그 부인 마리아 선교사가 우간다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말하며 병원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 시절부터 아프리카 등지에서 가난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겠다고 생각해 온 임현석(53) 원장의 마음을 건드렸다.

아프리카 최대 호수인 빅토리아 호수를 진주알처럼 품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 우간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 한복판, 메이크리어 힐로드에는 한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2차 병원.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가 있다. 소아과, 안과, 내과, 일반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침구과 등 총 8개의 진료과를 갖추고 40인의 의료진이 일하는 병원이다. 그 중 소아과 담당의 임현석 씨가 바로 메디컬 센터를 설립하고 이끌어나가는 원장이다.

소와과 전문의이자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의 원장 임현석 씨의 모습
소와과 전문의이자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의 원장 임현석 씨의 모습

‘우간다 병원 설립 프로젝트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임현석 원장은 2000년 6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우간다로 향했다. 시련은 빠르게 찾아왔다. 병원은 있는 줄 알았는데 병원 건물부터 지어야 했다. 아니 병원 지을 땅부터 사야 했다. 어눌한 영어로 부지를 알아보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고 공사 인부를 감독하는 일은 살면서 해 본 일 중에 가장 낯설고 힘든 일이었다.

이방인에 대한 텃세인지 일은 느리게 진행됐다. 우간다 의사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음에도 면허를 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빅토리아호 연안 도시 ‘엔테베’에서 사 오다가 경찰에게 잡혀 몇 번이나 경찰서에 끌려갔다. 경찰들은 목재 몇 개 운송하는데 과적이라고 벌금을 내라 하고, 멀쩡한 타이어를 두고 타이어가 닳았다며 벌금을 내라 했다. 응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데려가 몇 시간씩 가뒀다. 말은 잘 통하지 않고, 억울하고, 답답했다. 공사 인부들도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애초 넉 달로 예상한 공사 기간은 1년 가까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 1월, 베데스다 클리닉이 문을 열었다. 초창기 베데스다 클리닉은 임 원장을 포함해 의사 2명, 간호사 2명, 청소부 1명까지 모두 5명으로 시작한 작은 병원이었다.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의료진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의료진

이 병원을 거점으로 주중에는 병원에 올 수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에게로 찾아갔다. 우간다에는 의사도 의료시설도 없는 무의촌이 수두룩했다. 2005년 방문한 ‘부부마 섬 부칼리’ 마을도 그중 하나다. 빅토리아 호수 안에 있는 우간다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부부마 섬에 가려면, 캄팔라에서 차로 2시간을 달린 뒤 다시 배를 타고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섬 안의 도로가 정비돼 있지 않아 섬 구석 마을에서 섬 안 보건소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부부마 섬 부칼리 마을 주민들은 돈은 없고 길은 멀어 섬 안에서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고 있었다.  

의료진이 갈 때마다 병을 묵히고 있던 수백 명의 환자가 줄을 섰다. 사소한 위궤양 환자부터 탈장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사타구니로 장이 불거져 나온 노인, 백내장으로 늘 앞이 뿌옇게 보이던 노인.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부칼리 마을에 갈 때마다 백여 명의 환자가 줄을 서고, 손도 시간도 부족해 충분히 진료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해서 벌어졌다.

논의 끝에 우간다 현지 교회의 후원을 받아 부칼리 마을에 진료소를 짓기로 했다. 교회에서 땅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흙벽돌을 만들어 함께 지었다. 2009년 11월 지어진 부칼리 진료소에는 간호사 한 명이 상주해 있다.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에서 약품을 공급하고 진료소 운영을 관리, 감독한다. 진료소는 지속 운영을 위해 최소한의 약값만 받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외교부장관 표창 임현석 원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외교부장관 표창 임현석 원장

진료의 사각지대를 밝히다

우간다는 ‘무상 의료’ 국가다. 국립병원에서 누구나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국립병원의 진료 수준이 형편없다. 병원에 가도 제대로 약 처방을 받지 못한다. 최고 국립병원은 내시경 기계가 고장 난 지 2년이 됐는데 고치지 않는다. 의료진 처우도 열악해 국립병원 의사가 민간 병원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도 한다. ‘무상 의료’여서 의료보험 제도는 없는데 공공의료는 제대로 된 치료를 못 하니 결국 값비싼 민간 병원의 역할이 커진다. 작동하지 않는 무상 의료는 결국 가난한 자를 ‘진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 

임 원장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임 원장이 택한 방법은 병원에서 나는 수익으로 더 많은 빈민촌 무료 진료를 하는 것이다. 베데스다 메디컬 센터에서 진료를 받으면 보통 8달러 정도 진료비가 든다. 검사를 하면 15~20달러 정도 더 든다. 우간다 대졸초임이 월 200달러 선인 걸 고려하면 진료비가 가볍지 않다. 다른 민간 병원보다 저렴한 편이지만, 그래도 병원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이다.

형편이 되는 이들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고 얻는 수익으로 임 원장은 취약계층 무료진료 및 공공 진료를 점점 늘리고 있다. 2009년부터 운영한 부부마 섬의 진료소가 대표적이다. 10년간 간호사를 파견했고 연 3~4회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역 주민을 진료한다. 2016년부터는 내전을 피해 캄팔라로 들어온 부룬디 난민들을 무료진료하고 있다. 우간다에 정착한 초창기부터 1년에 3~4차례 이상 중서부 ‘호이마’ 지역, 남수단 난민촌 등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발굴해 의료 캠프도 열고 있다. 베데스다 본원에서 성형외과, 안과, 일반외과 캠프를 열어 인공항문 수술 등 우간다에서 일상적으로 받을 수 없는 수술을 한화 약 15,000원 정도의 최소한의 비용을 받고 제공한다. ‘시혜’의 차원이 아니라 ‘공공의료’의 차원에서 진료하기 위함이다. 

우간다에서 의사 생활을 할수록 우간다 의료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여전히 우간다 사망 원인 1위는 말라리아다. 1년에 7만~10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하는데 그중 절반이 5살 이하 아이들이다. 1~2달러 하는 약을 제때 처방받아서 치료하면 말라리아는 치료할 수 있는 병이지만, 그 ‘제때’ 가 안 돼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많다. 접근 가능한 제대로 된 공공의료가 꼭 필요한 이유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최근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의료 원조의 정책 방향을 조금 변경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1992년부터 정부 파견 의사제도를 통해 국내 의료진을 개발도상국 현지에 파견했는데 그동안은 1차 진료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2016년부터 개발도상국 현지 의료 인력 역량 강화를 제1의 목표로 하는 ‘글로벌협력의료진 파견’으로 정책 방향이 변화했다.

강미주(41) 서울대병원 외과 임상조교수는 이런 취지에 공감해 제1기 글로벌협력의료진에 지원해 선발됐다. 1954년~1961년, 미국 국제협력본부(ICA)의 한국원조 프로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미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와 서울대가 맺은 ‘재건 프로젝트’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는 전쟁 이후 황폐해진 한국의 최고 국립대에 시설복구, 장비 지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대학교의 젊은 교수진을 선발해 이들이 미네소타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교환연수 프로그램까지 포함돼 있었다. 의료진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 것이다. 지금 한국 의료 기술의 괄목할만한 발전의 추진력이었다고 평가된다.

복강경 수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강미주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의 모습
복강경 수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강미주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의 모습

강 교수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어딘가에서 할 수 있다는 다소 낭만적인 마음’과 함께 글로벌협력의료진에 기꺼이 지원했다. 나중에 그가 가게 될 나라가 가나라는 걸 듣고는 “가나가 어디 있어요?”라며 아프리카 지도를 찾아봤지만 말이다.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가나는 1992년 헌법을 개정하고 안정적인 정권교체를 하며 민주주의가 구현됐다. 4년마다 대선이 이뤄지고 2016년에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2017년 아쿠포 대통령이 취임한 뒤 2015년 IMF 구제금융을 조기 졸업하고자 ‘1 지역 1공장’ 정책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국가 주도 개발 정책을 펼치고 있다. 1인당 GDP 상승률도 높다.

그런 국가적 분위기와 맞닿아서일까. 현지 의료진의 열정도 꽤 높았다. 2016년 3월 가나에 도착한 강 교수는 가나의 요청으로 복강경 수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복강경 수술은 복부나 흉부를 절개하는 개복수술과 달리 0.2~1.0cm의 작은 구멍을 뚫고 삽관을 한 뒤 특수 카메라가 장착된 내시경을 집어넣어 복강 내를 보면서 가늘고 길게 제작된 수술 도구를 통해 수술하는 방법이다. 개복수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도 빠르며 합병증 발생률이 낮다.

 복강경 수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가나의 의료진
 복강경 수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가나의 의료진

강 교수는 가나에서 2016년~2019년까지 3년여 동안 93회 복강경 수술 시뮬레이션 교육을 했다. 교육과정에 현지 92명의 의사가 참여했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각 지역 병원 의사들이 복강경 수술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 강 교수가 직접 출장을 가서 수술 지원을 해 복강경 수술이 현지에서 실시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강 교수가 일하고 있는 가나 수도 아크라에 있는 아크라 주립병원에서는 2017년 2월 가나 주립병원 최초로 복강경 수술이 시행됐고, 3년여 동안 모두 83건의 복강경 수술이 이뤄졌다. 특히 현지 의료진의 집도 비율이 2017년 0%에서 2018년 81.2%, 2019년 94.5%로 증가해 현지 의료진의 기술 독립성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애초 2년 파견 기간이 지난 뒤 2년을 연장해서 가나 의료진의 기술 독립성 확보에 주력한 강 교수는 2020년 3월 귀국한다.

복강경 수술 시뮬레이션 교육을 마친 후 (왼쪽) 강미주 교수의 얼굴이 환하다.
복강경 수술 시뮬레이션 교육을 마친 후 (왼쪽) 강미주 교수의 얼굴이 환하다.

외교부는 12월 9일 임현석 원장과 강미주 교수에게 제14회 대한민국해외봉사상 외교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임 원장은 민간 부문, 강 교수는 정부 부문의 수상자다. 한국전쟁 이후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수혜 국가였던 한국이 60년 뒤 개인과 공공의 자리에서 ‘재건의 기적’을 재현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박수진 작가의 원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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