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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에콰도르에 뺏긴 두 명의 한국인 인재 이야기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김옥, 김병철

  • 황혜원
  • 입력 2019.12.10 10:56
  • 수정 2019.12.10 10:57
ⓒhadynyah via Getty Images

3년의 추억, 10년의 기다림 

김병철(46) 씨는 ‘네팔’에 가기 위해 10년 동안 칼을 갈았다. 2016년 그는 전라도 광주에서 동료들과 함께 대장전문병원을 운영했다. 매일 대장내시경과 치질 수술을 3~4건씩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아침에 병원 문을 열고, 수술과 시술을 한 뒤 다시 문을 닫는 생활. 물질적인 부족함은 없었으나 매일 구멍가게를 지키는 주인처럼 마음이 갑갑했다. 네팔에서 보냈던 3년의 추억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게 네팔이 아른거리는 날이면 로컬 식당을 찾아 난과 커리, 풀풀 날리는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네팔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김병철 씨의 모습,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네팔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김병철 씨의 모습,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김 씨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네팔 ‘박타푸르’ 지역 병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군 복무 대신 코이카 국제협력 의사에 자원해 합격한 덕분이었다. 박타푸르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는 네팔의 옛 수도다.

2015년의 지진이 있기 전까진 15~17세기에 지어진 사원과 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수백 년 된 건물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사나흘 머물면 되는 여행자에겐 그야말로 낭만의 도시였으나 유치원 등 보육 기관이 없어 4살과 6개월인 두 아들과 아내가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집은 카트만두에 구하고, 매일 박타푸르까지 왕복 3시간을 오가며 환자들을 돌봤다.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김병철 씨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김병철 씨

애초 김 씨는 네팔에 한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전파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그를 망연하게 했다. 한 환자는 두피에 동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채로 병원에 왔다. 병인은 다름 아닌 파리였다. 파리가 두피에 알을 깐 바람에 알에서 나온 구더기가 두피 속으로 파고든 경우였다. 현지 의사는 머리에 기름을 붓고 매일 핀셋으로 죽은 구더기를 빼냈다. 충수 돌기 절제술(맹장 수술)을 한 환자가 허벅지에 농양이 생겨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원인은 회충이었다. 회충이 수술 부위를 뚫고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경험치가 없다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김 씨를 ‘경력 쌓으러 온 의사’ 취급하던 네팔 의료진들은 김 씨가 전신에 중화상을 입은 환자를 오전 한 시간, 오후 한 시간 하루 두 번씩 두 달 동안 정성껏 드레싱 해서 상처를 낫게 하자 마음을 열었다. 그 덕분에 티 타임에 초대받을 수 있었고 김 씨의 네팔어 실력이 향상되며 현지에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네팔에서는 선진 의료 기술보다 현지 사람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돌보는 마음이 더욱 필요했다.

 

마음으로 다가간 ‘35년’의 서막

남아메리카 대륙 북서쪽, 적도에 걸쳐 있어 이름도 ‘적도’인 나라 에콰도르에서 35년간 봉사의 삶을 이어온 김옥 베로니카 수녀(66)가 사람들에게 스며든 것도 마음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웃고 있는 김옥 베로니카 수녀가 눈에 띈다.
웃고 있는 김옥 베로니카 수녀가 눈에 띈다.

김 수녀는 속해 있던 ‘예수그리스도 수녀회가 에콰도르에 터전을 잡고 선교 활동을 벌임에 따라 에콰도르로 향했다. 에콰도르에서도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인 ‘빨마’로 갔다. 1984년 이래로 35년간 머무르며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곳. 처음 도착해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물 한 잔만 선물로 주세요”였다.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사람들이 물을 빌리러 다녔다. 그것이 에콰도르의 첫인상이었다.

도착한 후 지리를 익히기 위해 동네를 거닐다 한 보조간호사의 집이 분만장소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열다섯, 열여섯의 어린 산모들이 간호사와 세 아이가 함께 쓰는 방 한쪽에서 아이를 낳고 있었다. 김 수녀는 이 모습을 보자마자 침대를 구해 깨끗한 분만실 겸 산모 진료실을 만들었다. 1986년 5월 ‘파티마 성모 진료소’가 어촌마을 빨마에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곳에서 2019년 현재까지 모두 2,582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왼쪽)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김옥 수녀의 모습 
(왼쪽)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김옥 수녀의 모습 

당시 김 수녀는 유럽 나라의 선교사들처럼 물건들로 먼저 다가가는 물질 선교를 하기보다 진실한 마음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주민들이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누군가 죽음을 마주하면 함께 울고, 그들이 먹는 밥을 같이 먹었다. 매 순간 함께하면서 주민들의 필요를 알게 되고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1997년 에콰도르를 덮친 엘니뇨의 기억은 강렬하다. 해수면 온도가 평균 기온보다 0.5℃ 높은 상태가 6개월간 지속되는 엘니뇨가 나타나면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그해의 비는 김 수녀가 에콰도르 생활 13년 만에 처음 보는 비였다. 길이란 길은 다 끊어졌다. 홍수로 인해 전염병이 더욱 창궐했다. 곳곳에서 환자가 속출했다. 1차 진료소가 없는 시골 사람들은 노끈으로 얽은 그물침대에 환자를 태워 걸머지고 쪽배를 몇 번씩 바꿔 타고 겨우 진료소가 있는 빨마에 도착했다. 빨마에서도 치료할 수 없어 다시 2차 진료소가 있는 더 큰 도시로 떠났다. 이동하다 환자가 죽는 일이 허다했다. 김 수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김 수녀는 앰뷸런스의 필요성을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2006년에 코이카를 통해 앰뷸런스 한 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김 수녀는 상상을 넘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에콰도르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배운다. 김 수녀가 에콰도르에서 느끼는 인간에 대한 연민, 고통에 대한 이해가 에콰도르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처럼 김병철 씨도 네팔 주민에게 받은 환대와 진심의 눈빛을 잊지 못해 네팔이 그리웠다.

 

네팔의 ‘귀한 의사’가 되다

3년의 군 복무 기간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의사 김병철 씨는 한국에서 1년의 전임의 과정을 마친 뒤 다시 네팔에 가고자 했다. 처음엔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아내는 셋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카트만두의 매연, 복잡한 교통, 충분치 않은 교육 인프라 등은 아내가 네팔 행 반대를 외치게 했을 것이다.  

(왼쪽에서 네 번째)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김병철 씨
(왼쪽에서 네 번째)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김병철 씨

아내는 10년 뒤, 다시 생각해보자 했고, 김 씨는 10년 뒤를 기약했다. 그리고 코이카 글로벌협력의료진에 선발되기 위해 보건학 박사 과정에 입학해 공부를 마쳤다. 공적개발 원조(ODA) 전문가 과정을 공부해 ODA 전문가 3급 자격증까지 땄다. 마침내 한국에 귀국한 지 10년이 되던 2016년, 코이카 글로벌협력 의사에 선발됐다. 그리고 다짐대로 10년 만에 네팔 ‘티미’에 코이카가 설립한 한국-네팔 친선병원에서 글로벌협력 의사로 당당히 입성한다.

의료진 자격으로 네팔에 간 김 씨는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 2003년 레지던트 과정을 막 끝낸 김 씨가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마음 뜨거운 봉사자였다면, 2017년의 그는 한국에서 로컬 병원을 운영하며 대장내시경과 대장항문 세부 전문의까지 취득한 전문 봉사자가 됐다.

(왼쪽에서 네 번째) 한국-네팔 친선병원 앞에서 김병철 씨
(왼쪽에서 네 번째) 한국-네팔 친선병원 앞에서 김병철 씨

네팔에 도착한 2017년 2월부터 2019년 6월까지 4,773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1,038명을 수술하고, 64명의 환자에게 대장내시경을 실시했다. 다른 병원에서 실패한 항문 치루 수술 등을 성공적으로 집도해 환자를 완치시키기도 했다.

네팔 현지 의료진에게 다양한 시술법을 가르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적은 통증, 빠른 회복, 낮은 합병증 발생률 등 장점을 가진 복강경 수술 시스템을 도입해 담낭절제술 등 외과 수술을 집도했다. 산부인과 의료진에게 복강경 수술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김병철 씨는 한국에서는 ‘수많은 외과의 중 한 명’이었으나 네팔에서만큼은 환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귀한 의사’라 느꼈다.

그로 말미암아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서 나아가 네팔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공중보건 일도 보고 있다. 그는 주 1회 티미 지역 7개 보건지소를 돌아가며 네팔 사람들의 복부 비만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하루 두 끼를 먹는 네팔인들은 밥은 고봉밥으로, 간식으로는 라면과 비스킷 등을 먹는다.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고혈압과 당뇨 유병률이 높아지고 복부비만도 심각하다. 10년 전에 몰랐던 사실이, 10년 뒤에 보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식습관 개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외과 의사에서 보건 전문가로서 도움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전방위 해결사’

김옥 수녀는 ‘전방위 해결사’다. 그야말로 ‘빨마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홍반장이 그녀다. 그의 눈과 머리에 문제가 잡히면 변화가 시작된다. ‘조혼’이 대표적이다. 김 수녀는 지역의 여자아이들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에서 지내다가 눈이 맞는 짝이 있으면 그대로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는 조혼 문화가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잠재성이 이른 출산과 육아로 사장되는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해봤자 어부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키지 않는 부모가 대다수였다.

김 수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그룹 ‘네오 후벤뚜’를 만들었다. 네오 후벤뚜에서는 고기잡이 외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활동들을 기획했다. 메추리 사육, 닭 사육, 빵 공장을 운영해 성과를 봤다. 자연스럽게 빨마의 다른 사람들도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굴 양식을 도입해 40가구가 작지만 수입을 올리고 있다. 네오 후벤뚜와 함께 바다 나무 맹그로브 살리기 운동도 하고 있다. 축구장 200개 면적인 200헥타르에 달하던 맹그로브 서식지가 새우 양식장에 밀리고 땔감으로 무분별하게 베어지면서 38헥타르까지 줄어들었다. 네오 후벤뚜는 건강한 바다 생태계가 위협받는 상황을 발견하고, 맹그로브 씨앗을 뿌리고 맹그로브 벌목을 막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네오 후벤뚜에 속해 있는 아이들은 15~16세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결혼한다. 그 외에도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현지 의료진이 기피하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고 에이즈 예방 교육을 하면서 변화의 싹을 틔우고 있다.

(가운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베로니카 김옥 수녀. 
(가운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베로니카 김옥 수녀. 

최근 김옥 수녀는 산악지방인 ‘아소개스’로 눈을 돌려 그곳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마음을 쏟고 있다. 아소개스는 빨마에서 버스를 타고 8시간쯤 가면 나오는 산간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은 접경 지역을 걸어서 과테말라, 멕시코를 지나 미국까지 불법 이민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지역 경찰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김 수녀가 속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수녀회에 열악하게 운영되고 있는 고아원을 인수해 줄 것을 부탁했다. 2019년 2월에 아소개스에 문을 연 고아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집’에는 알코올 중독 엄마로부터 분리된 18개월 아기,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자아이, 자폐증을 가진 아이,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앞니가 다 깨져버린 아이 등 사랑과 돌봄이 고픈 아이들이 모여 있다. 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보고 사랑을 주는 것이 김 수녀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업이다.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김옥 수녀
 ‘제1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김옥 수녀

매 순간 쉬지 않고 낯선 땅에서 현지인과 손을 맞잡고 도움을 전하고 배움을 얻는 의사 김병철 씨와 김옥 베로니카 수녀는 외교부가 주최하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가 주관하는 2019년 ’제14회 대한민국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해외봉사상은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세계 각지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2006년 제정한 정부 포상이다.

 

* 해당 기사는 박수진 작가의 원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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