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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자존감 낮고 우울하다"며 자책하는 이들을 위한 뼈 때리는 위로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조교수

냉철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뇌과학자이자 임상심리전문가인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가 쓴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이다.

책은 자존감, 자신감, 애정결핍, 불안, 완벽주의, 우울감 등등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문제들을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조명한다. 타인의 평가에 끊임없이 신경 쓰는 우리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뇌과학자로서 알려주고, 부서진 마음으로 위태로운 사람들에게 임상심리사로서 위로의 말을 건넨다. 허 교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서평처럼 그야말로 ‘뼈를 때리고 머리를 쓰다듬는’ 책인데,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연구 결과와 위로가 당신 일상에 큰 힘이 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불안정 애착 상태로 자랐던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불안정 애착인 채로 자라난 성인이라도 새로운 안정 애착 관계가 만들어지면 5년 이내에 획득된 안정 애착으로 변화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허 교수의 설명에 귀가 쫑긋할 것이다. 

ⓒnadia_bormotova via Getty Images

회사에서의 성취를 정체성으로 삼고 달려왔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속한 그룹의 대표성을 굳이 짊어지고 성취를 이루려고 하면 그만큼 수행 수준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에 크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평소 자존감이 낮다고 괴로워해 온 사람이라면 ”높은 자존감이란 ‘착한 지도교수‘나 ‘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 같은 것”이며 굳이 높은 자존감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대충’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면 충분하다”는 구절을 곱씹어볼 만하다.

뼈를 때리고 마음을 쓰다듬는 책을 읽다 보면, ”이만하면 괜찮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저 당신을 더 편안하게 좋아해 주세요”라는 위로가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허 교수 역시 범불안장애와 우울감을 수년간 겪은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에 내가 왜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날카롭게 찔러대며 애면글면 애를 썼을까” 싶다는 허 교수는 ”낮은 자존감, 불안과 우울, 삶의 의미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느라 자꾸만 스스로에게 무례해지는 당신을 설득하기 위해” 책을 썼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조교수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조교수  ⓒHUFFPOST KOREA / SANGAHKWAK

″단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연구”를 하고, 관련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보다 편안하게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는 이 책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래는 허 교수와 나눈 대화들이다.

-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원래 제목은 이게 아니었어요. 근데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관통하는 주제가 그렇더라고요. 낮은 자존감을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울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결국 ‘그렇게까지 하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담게 됐는데...

그 끝에는 ‘본인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본인에 대해 잘 모르면서, 본인을 함부로 대하지 마시라고. 막연하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약간의 우울과 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다행히 좋아해 주셔서.(웃음)

 

이만하면 괜찮다

 

-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 아뇨, 거꾸로 저는 ‘인간을 너무 그렇게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왜 이렇게 말씀드리냐면, ‘본인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본인의 노력이나 가능성으로 인해 그 결과(성취)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너무 힘들어져요. 실패하면 그것 역시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운’에 의해서 좌우되거든요.

특히 지능 같은 경우는 삶의 질과 정신건강 수준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쳐요. 그런데 그 지능은 정말 우연히 유전자가 딱 그렇게 조합이 된 것이고.... 많은 사람이, 특히 자수성가하신 분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일단 노력은 기본으로 깔고 있는 것이고, 많은 부분이 정말 ‘운’에 의해서 좌우된 거거든요.

‘인간이 홀로 그렇게까지 탁월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비대해지고 거대해진 자의식은 병리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요. ‘내가 이 정도 성취는 이뤄야 해‘, ‘내가 이 정도까지는 꼭 해야 해‘,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나는 외향적이어야 하고, 대인관계에서 중심의 역할을 해야 해’ 등등. 이런 생각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까, 그 역할에 압도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성공과 운의 관계

많은 사람들은 성공이 노력과 재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력과 재능은 충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두가지 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많은 경우 상당한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러 건 있다.

이 연구들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가장 성공한 이들이 재능을 어느 정도 갖추긴 했으나 가장 재능있는 사람은 아니며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미국 코넬대학교 존슨경영대학원 교수 로버트 H. 프랭크의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를 추천한다. 로버트 교수는 성공에 작용한 행운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공공 정책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그러한 연구 결과가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 지금보다 약간은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거죠.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에요. 현재 정신질환이나 신체 질환으로 기능손상이 있을 정도가 아닌 사람이라면, 정말 기적적인 운에 의해서 그 자리에 있는 거거든요. 우연히 좋은 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은 어느 정도 해줘야 해요. 운 나쁘게 태어난 사람들,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읽고 나면 마음이 무척 편해지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과학적인 언어 덕분에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저 역시 겪은 궤적이 있었기 때문에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죠.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워서. 그래서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아요.

-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지나친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마음을 부수어가면서까지 애를 쓸 필요는 없다”는 대목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 저도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지 몇년 안 됐어요. 너무 애쓰면서 사는 스타일이었었고.... 누군가가 저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물었을 때, 저는 단 한 순간도 대답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너무 노력하면서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성적이나 연구에 있어서도 그렇고.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혼자서 어느 순간 나름의 통찰을 겪었어요. 내가 ‘노력하는 것‘과 ‘애쓰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노력은 당연한 거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냥하려고 노력하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그런데 그 수준을 넘어서, 이상하고 기괴한 선택을 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 해도 되는 일들을 벌이거나, 이쯤에서 마감해도 되는데 그 이상을 하려고 하거나. 

ⓒKubkoo via Getty Images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은 사실 노력의 범위를 넘어서 ‘기괴한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지점이거든요. 자꾸 병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사실 ‘애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더라고요.

그래서 ‘애쓰는 것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조금 거리를 두고, 생산적인 수준까지만 노력을 기울이는 법을 저도 지금도 한창 연습하고 있습니다.

- 범불안장애와 우울감을 수년간 겪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인한 깨달음은 아니었나요.

= 그건 아니에요. 그때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 제가 범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해요. 그럼 좀 더 빠른 치료적 개입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중학교때는 범불안장애가 너무 심해서, 형광등이 깨질까 봐 그 밑에 앉지도 못하고 그랬어요. 액자 밑에도 앉지 못하고. 기질적으로 타고난 우울과 불안이 있었던 건데,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 못 해서 너무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것 같아요.

-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책이 더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 제가 그 사실을 알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일단 안정적인 상황이어서 그나마 알릴 수 있었고요. 또 일부러 말한 것도 있어요. 왜냐하면, 학생이나 내담자들은 제가 굉장히 자존감 높고 불안이나 우울도 없을 거라 많이들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표본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나만 자존감 낮아’ ‘나만 우울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혼자만 힘든 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수업 시간이나 치료 중에 제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 정서적 불안정성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건 본인이 알 수 있거든요.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자기 노출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보호’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HUFFPOST KOREA / SANGAHKWAK

심리치료

 

- ‘심리치료’라는 용어 자체가 아직 한국에서는 친숙한 단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심리치료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심리치료는 보통 내담자분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치료사는 듣고 있다가 중간중간에 요약이나 명료한 해석을 해준다든지. 이야기 속에서 관통하는 문제를 넌지시 건드려 준다든지. 이를 통해 여러 해결책이나 통찰을 내담자의 입에서 나오도록 끌어내 주는 게 심리치료입니다.

현재 당면한 문제에 많이 집중해요. 당장 직장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그 문제에 집중하는데. 사실 이 고통의 뿌리가 원가족과의 아주 뿌리 깊은 역동에 의해 시작됐다는 게 포착되면, 과거력 탐색을 아주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어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게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요. 고도의 인지적 자원이 필요하고요. 거의 훈련 수준이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어렵다고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Popmarleo via Getty Images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심리치료를 원하신다면, 현재 국내에는 심리와 관련한 자격증이 6천 종류가 넘고 사설상담소가 난립하고 있어서, 가능한 한국임상심리학회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상담가의 정보를 찾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심리학 석사 이상의 학위가 학문적 자질의 하한선이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자격증 박탈 등 엄격한 제재가 가능한, 공신력 있는 자격을 보유한 선생님들을 찾을 수 있어요.

이 경우 1시간에 8~12만원을 내야 하니까, 너무 비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12회기라고 치면, 120만원 가량 들거든요. 대신 문제를 아주 과학적인 수준에서 끝낼 수가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난 120만원 들여서 이 문제를 끝내겠어’ 하는 마음이 드신다면, 심리 치료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1~2달이 지났는데도 뭔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치료사와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다른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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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치료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이나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2017년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지행동 치료 기반의 무료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어요. ‘마성의 토닥토닥’이라는 이름인데,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니 꾸준히 써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어요. 그쪽으로 가시면 상주하고 있는 정신건강 전문의나 임상심리전문가와 무료로 상담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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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건강 문제 치료법으로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공부‘, ‘뇌 기능 개선제(약물) 복용‘, ‘제대로 된 심리치료’를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건 다 이해되는데, 공부는 왜 꾸준히 해야 하는 걸까요.

= 맞아요. 네가지 모두 치료법으로 아주 좋아요. 일단 규칙적인 운동은 우울, 무기력, 무쾌감증(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 불안에 너무나 도움이 되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일단 증가하고, 자기통제감도 늘고. 물론 4~5달 꾸준히 해야 느껴지는 게 있어서 약간 더디긴 하지만, 자신의 긍정적 자원들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그런데 공부는 왜 꾸준히 해야 하느냐? 지능이 정신건강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보호 요인이기 때문에 그래요.

사실 지능이 높은 분들이 우울 및 불안을 더 잘 경험합니다.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래요. 우울하거나 불안할수록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웃음). 왜냐하면 지능이 높은 분들은 상황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정말 빨리 봐요. ‘저게 왜 저런 식으로 돌아가지?’ 라든가. 혹은 매우 멀리까지 상황 예측을 하는데, 예측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불필요하게 예측하거나 그런 게 있어서. 지능이 높으면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는 거죠. 약간의 천형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아, 내가 똑똑해서 이런가 보다’ 하세요.

하지만 이런 분들이 회복도 그만큼 빠릅니다. 치료를 위해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효율적인 방법을 빨리 알거든요.

결과적으로 지능이 정신건강 보호에 큰 도움이 되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적인 공부가 지능을 꾸준히 높입니다. 공부로 인지적인 자원이 쌓이면, 대인관계도 재밌어질 수 있어요. 누군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자신도 그 주제에 대해 풍부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효능감이라든지 자존감을 높일 수 있죠.

그래서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게 좋고요. 너무 무기력해 있는 분들에게는 영어단어라도 외우시라고 말씀드려요. 그것도 힘들면 넷플릭스라도 켜놓으시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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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

- ”완벽주의 경향은 만성적인 자기불확실성과 자기의심, 저하된 자기효능감, 우울 등의 병리적인 증상으로 빈번히 이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완벽주의는 정신건강에 주로 악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정신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나요? 예를 들어, 완벽주의 때문에 일을 꼼꼼히 해내고 그로 인한 성취감이 있을 수 있지 않나요.

= 보통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perfectionism)는 부정적인 걸 말해요. 일을 꼼꼼히 해내는 것. 이런 것들은 완벽주의가 아니라 ‘성실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죠. 성실성이 높은 것은 높은 연봉의 척도고요. 좋은 결혼생활 유지의 요인입니다. 자신이 완벽주의인지, 아니면 성실한 것인지 구분해보고 싶다면 ‘아웃픗(결과물)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시면 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으면, 결과물을 내놓기 힘들어요. 그 정도 수준이 못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연구 데이터에서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자의식 정서가 우울이나 불안에 미치는 영향이 함께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완벽주의적 생각을 제거하면, 우울이나 불안이 줄어든다’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 네, 맞아요. 자의식 정서란 약간 부정적 측면이 강한데.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느끼는 수치심이나 죄책감, 당혹스러움. 이런 여러 가지 정서들이 있어요. 살다 보면 당혹스러운 경험, 부끄러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나는 완벽해야 해’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나는 이런 정도의 사람으로 보여야 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자의식 정서가) 불안이나 우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료적인 개입이 필요한 거죠.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 우울이나 불안을 경험할 때 ‘이걸 극복해야만 한다!‘고 어쩌면 지금은 불가능할 수도 있는 목표를 애써 다시 설정하지 마세요. 적절하게 유연한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등장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 우울이나 불안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무작정 억누르기보다 ‘잠깐만 기다려. 나중에 너를 보살펴 줄 테니.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할 일이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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