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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인 이 아이는 내 딸이 맞다. 제발 그만 좀 물어보라

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편향되고, 잔인하며, 체계적이다.

5살 된 내 딸이다. 
5살 된 내 딸이다.  ⓒCOURTESY OF ALYSSA WALKER

“쟤 아들이야?” “쟤 딸이야?” “쟤 뭐야?”

친구들이여, 얘는 ‘뭐’가 아니다. 5살 된 내 딸이다. 딸은 밖에서 놀기, 그림 그리기, 인어 놀이하기, 오빠와 자전거 타기, 비 오는 날 쿠키 굽기 등등 아이가 좋아하는 수많은 일을 좋아한다.

딸은 가끔 드레스를 입는다. 가끔은 운동복을 입는다. 가끔은 우주인이나 돼지, 도넛처럼 입기도 한다. 가끔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그리고 머리가 짧다.

내 딸의 머리는 형광색이 아니다. 아주 짧게 깎은 머리에 멋진 패턴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가 치켜 솟아 있지도 않다. 만약 내 딸의 머리가 이렇다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흥미로운 머리를 보면 바라보곤 했으니까.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 낯선 사람들은 내가 아들에게 딸처럼 옷을 입힌 건지, 딸에게 아들처럼 옷을 입힌 건지, 아니면....?? 의아해하며 수군거린다. 난 계속 궁금해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분명 궁금할 것이다.

내 딸은 여자아이다. 나는 걔의 어머니고, 나는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게 전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딸은 “엄마. 나는 머리가 짧은 여자아이예요. 그런데 다들 왜 그러는 거죠?”라고 묻는다. 딸은 지금 자신이 무언가에 부딪히고 있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내 아들도 그렇다. 그게 뭔지 둘 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축구장에서

다른 부모 : “쟤(he) 골 넣었네! 잠깐, 저 남자애 이름이 여자 이름이네! 오. 오. 잠깐. 쟤는…?”

나 : “네, 쟤(she)는 축구 좋아해요! 쟤(her) 오빠도-”

이발소에서

이발사 : (나의 아들이 앉아있다) “다음엔 저 꼬마 머리도 자를까요?”

나 : “네, 잘라주세요. 내 딸 머리 잘 다듬어 주세요. 참 좋을 것 같-”

이발사 : “오. ...우리는, 음, 우린, 아아 ...여자아이들 머리는 안 자릅니다.”

돈을 내고 나온다.

딸 : (양손을 엉덩이에 앉고) “엄마, 저 아저씨가 내가 여자애라고 차별했어요.”

아들 : (얼굴을 찌푸리고) “엄마, 나 머리 자른 거 취소할 수 있음 좋겠어요.”

딸은 정말로 ‘차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수영장에서

낯선 사람 : “왜 저 남자애는 비키니를 입고 있죠? 아니면 혹시…? 오. 잠깐. 한 명 더 있네요. 음, 쟤는 평범한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나 : “네, 우리 애들이 수영을 좋아해요.”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 : “오! 아들들?이 정말 사랑스럽네요!”

이해 못하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도 그건 알겠다. 의문이 있거나, 혼란스럽거나, 그냥 꼭 알아야겠다면 예의를 갖춰 질문할 수는 있겠다.

내 딸과 아들이 이번 여름에 첫 카약을 탔다. 
내 딸과 아들이 이번 여름에 첫 카약을 탔다.  ⓒCOURTESY OF ALYSSA WALKER

그러나 예의를 갖춰 질문할 수 없거나 그렇게 하는 법을 모르겠다면 아무것도 묻지 말라. 무례하게 빤히 쳐다보지 말라. 집에 가서 책을 읽어라. 아니면 구글 검색을 해보라. 당신의 질문이 예의를 갖췄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아마도 예의 없는 말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가?

우리 사회의 젠더에 대한 집착은 건강하지 않다. 가부장제는 양분화된 젠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자아이들은 이걸 하고, 여자아이들은 저걸 해야 한다. 나도 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고 있다.

내가 임신 중이었을 때 낯선 사람들은 나에게 갑자기 아이의 젠더를 묻곤 했다. 보통 나는 “그냥 아기를 가졌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다정한 아주머니들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경우가 많았지만, 화가 났다. 결코 남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 배를 톡톡 두드리며 또 물었고, 나는 불같이 화가 났다. 나는 “몰라요. 안 알아봤어요.”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왜 아기의 젠더를 알고 싶어 안달하는 것인가? 왜 낯선 사람에게 다가와서 상대의 몸에 대해 묻는 것인가?

나는 괜찮지 않다

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편향되고, 잔인하며, 체계적이다.

나는 아이가 아이답길 바란다. 무지와 편견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지만, 실제 세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길 바란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딸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어 했던 건 정치적 입장을 밝히거나 젠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더 좋다고 한다. 더 빨리 뛸 수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유가 된다.

딸은 혁명을 주제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길 꿈꾸지만, 실제 혁명에 가담하고 싶다는 의도를 가져본 적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혁명에 가담했다는 걸 이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허프포스트 US의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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