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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예방의 날, 필요한 건 '예방'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아동보호체계는 허점이 수두룩하다.

Teddybear sitting alone on a swing set at the park
Teddybear sitting alone on a swing set at the park ⓒFatCamera via Getty Images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하루 앞둔 18일. 아동학대 ‘예방‘은커녕 ‘사후 대처’ 조차 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적인 뉴스들이 잇따라 보도됐다.

20대 여성 A씨가 3세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것과 관련해 소방당국에 처음 사건을 신고한 A씨의 지인도 학대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그들은 10월27일부터 11월14일까지 20일가량 번갈아 가며 옷걸이용 행거봉과 손발 등으로 아이를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5세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B씨와 관련해 20대 친모 C씨도 검찰에 넘겨졌다. 앞서 C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다른 아들 2명도 죽이겠다고 협박해 무서워서 신고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는 C씨의 말과는 달랐다. 집 안방 CCTV 영상 속에서 C씨는 아이가 72시간 화장실에 감금된 채 폭행을 당한 뒤 거실로 나왔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 아들이 손발이 묶여 안방에 쓰러져 있는데도 TV거나 남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아동학대 사망자는 지난 5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2014년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30명 등 134명이 아동 학대로 사망에 이르렀다. 실제 아동학대 사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를 집계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수사기관에서 해당 사건을 전달하지 않아 누락됐을 수도 있다. 의료기관에서도 아동의 사인을 학대로 판명하고도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경찰청·의료기관으로부터 아동학대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공유받을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매년 11월 19일 ‘세계 아동 학대 예방의 날’ 즈음이면  ‘주변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적극적인 신고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는 캠페인이 진행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체크리스트를 통해 1개 문항 이상 ‘예’라고 체크된 경우 아동학대를 의심할 수 있다. 신고자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공인신고자보호법, 특정범죄신고자등보호법에 의거하여 보호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신고하자’는 홍보는 5년 전만 해도 유효했다. 학국의 학대 피해아동 발견율이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한국의 피해아동 발견율은 1000명 당 1명 수준(1.32‰)이었다. 미국(1000명당 9명)이나 호주(1000명당 8명)에서는 한국보다 8~9배 많은 비율로 아동들이 학대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2014년 6월 한국일보는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것을 ‘남의 가정사’ 취급하는 풍토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어린 여자 애가 늦은 시간에 보호자 없이 놀이터를 배회한다”는 신고가 들어와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2명이 현장으로 출동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상담원들이 도착했을 때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튿날 다시 현장을 찾은 상담원들. 이후에 확인된 바로는 동네에선 ‘여름에도 겨울 외투를 입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아이’로 유명했지만, 동네 슈퍼마켓 주인에게 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행방을 물어도 주인은 ”누가 신고했어요?”라면서 거부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계속되는 설득에도 입을 다문 슈퍼마켓 주인. 상담원들은 근처 집을 하나씩 찾아다닌 끝에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는 태어난 후 일곱살이 될 때까지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양쪽 어금니가 썩어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3만4169건에서 올해 3만4169건으로 6.5% 증가했다. 학대건수 증가율 9.2%(2018년 2만2367건에 비해 2만4433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고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는 차츰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동학대 사건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갖고 신고하지 않으면 드러나기 어려운 만큼, 적극적인 신고가 아동학대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활동은 물론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신고 이후’의 시스템 대처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22일 내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계부에게 2주간 수시로 폭행당해 숨진 인천 5세 아동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5번에 달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아이의 사망시점에서 1년여 전으로 돌아가 사건을 되짚었다.

첫번째 기회는 2018년 8월 6일 학대 가해자인 계부 이씨가 피해아동에 대한 접근금지 위반을 어겼을 때다. 앞서 같은 해 7월 16일 인천가정법원은 피해 아동에 대해 1년간 보호명령을 내리면서 이씨에게 접근제한 및 전기통신제한을 결정했다. 이씨는 이미 아동학대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접근 제한이 결정된 지 20일도 되지 않아 이씨는 친모와 함께 아이가 머물고 있는 보육원을 찾아가 면회를 하겠다며 폭언과 위협을 했다. 당시 보육원은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인천 미추홀구 담당공무원에게 사실을 알렸고, 아보전은 법원에 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위반했을 때 경찰 신고를 통해 접수하면 새로운 사건으로 진행된다’고 안내했다. 한 달 후인 9월 15일에 이씨가 보육원에 무단으로 접근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구두 경고만 하고 돌아갔다.

김 의원이 지적한 한국 아동보호체계에는 허점이 수두룩했다. 김 의원은 ”만5세 아이가 계부에게 맞아서 사망하기까지 법원도, 경찰도, 지자체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더 이상 끔찍한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사건부터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도 허점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보호체계의 제도 개선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도 제기했다. 파이낸스투데이에 따르면 지난 5월 남 의원은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 4가지를 제시했다. 

1. 부모 교육을 통한 재학대 철저 방지

아동학대의 주요 원인이 양육태도와 방법 부족이 많은 점을 감안하여, 부모교육을 활성화하여 올바른 양육기술과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며, 학대행위자에 대한 상담과 교육, 부족한 가족기능을 보완하고,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사후관리 부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여 재학대를 철저하게 방지해야 한다

2.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의 질적·양적 확충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를 획기적으로 확충하여야 하며,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들의 경우 과중한 업무와 낮은 처우 등으로 인해 이직율이 높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인건비를 증액하였지만 올해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의 1인당 평균 인건비가 2973만원으로 인건비가이드라인 3354만원에 비해 충족률이 88.6%에 불과한 실정이며, 학대피하아동쉼터 종사자 1인당 평균 인건비는 올해 2708만원으로 인건비 가이드라인 대비 충족률이 85.3%에 불과한 실정이다.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는 전문성 있는 인력의 유출 등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므로 노숙인거주시설과 장애인거주시설 등 유사 직역 수준으로 인건비 인상이 꼭 필요하다.

3. 아동학대 관련 예산 확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2016년 202억원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9년 292억원에 달하고 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운영부처는 보건복지부이지만 설치 및 운영 재원은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으로 나뉘어져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일관적인 사업추진이 어렵고 적정 예산 확보가 곤란한 실정이다.

4. 아동학대 대응 효율화를 위한 공공기관 개편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전환하여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운영부처와 재원을 단일화하고, 현장조사를 공공부문에서 수행하는 등 아동학대 대응체계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며,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아동보호 전담부서를 신설하여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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