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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힘든 이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어봐"라고 말해선 안 되는 이유

우리의 통념과 달리 정신질환은 '신체질환'이다.

ⓒSTUDIO HUFF

직장인 김고양씨는 평범한 사람이다. 무난한 사회생활, 무난한 인간관계. 남들이 볼 때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 ‘사회의 평균‘이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에 불과할 뿐, 고양씨는 최근 ‘내가 미쳤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며칠 전 출근길에서 그 일을 겪은 후부터 그렇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프로젝트 진행을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어지럽다. 토해선 안 되는 곳인데 토할 것 같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안 좋은 큰일이 벌어졌다.’ 본능적인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고양씨는 다급하게 아무 지하철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뛰어갔다. 겨우 한 칸 차지하고, 토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빨리 회사 가서 일해야 하는데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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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공황발작을 경험한 고양씨의 사례는 사실 많은 이들이 겪는 문제다. 정신질환에 대해 말하길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상 속 고통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뿐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번 이상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험한다. 지난 1년간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10명 중 1명으로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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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정신질환 1위는 불안장애(5.7%)이며 그 뒤를 △알코올 의존·남용(3.5%) △니코틴 의존·금단(2.5%) △주요 우울장애(1.5%)가 잇는다. (여기서 ‘정신질환’이란 정신병, 인격장애, 알코올 및 약물중독 그리고 기타 비정신병적정신장애를 포함한다.)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지만,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담한 이들의 숫자는 크게 낮다. 평생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겨우 9.6%다. 미국(43.1%), 캐나다(46.5), 호주(34.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정신질환을 겪은 성인 중에서도 평생 단 22.2%만이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

 

정신질환은 신체 질환이다

‘마음을 좀 강하게 먹어봐’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정신이 나약하다’ ‘힘내라’ 등등. 우울증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다. 그런데 정말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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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다. 전문가들은 통념과 달리 정신질환이 ‘신체질환’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김지민 연세채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신체 질환과 정신질환을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정신질환도 신체 장기의 다른 부분에서 생기는 병과 마찬가지로 뇌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져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지적했다.

김지민 원장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아도 폐암에 걸리고, 담배를 매일같이 피워도 폐암에 안 걸리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마다 스트레스 면역력은 다 다르다”며 ”정신질환이 걸렸다고 해서 의지가 약하다든지, 마음이 약하다든지 이런 식으로 다그치는 것은 완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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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도 ”마음은 뇌와 연결되어 있고, 뇌는 신체의 일부”라며 ”마음의 병은 생물학적인 바탕에서 생긴 신체 질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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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은 이해하기 쉬운 예를 하나 들었다.

″우리는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의지로 (부러진 다리를) 붙여봐‘, ‘힘내서 걸어봐’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 사람이 붕대를 감고 몇개월간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러나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해요. 치료를 받고, 쉬어야 하고, 저항력을 재구성해야 하는 개인에게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취약해져 있는 사람에게 ‘힘을 더 내봐‘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어요. (‘의지로 이겨내라’ 등은) 마치 다리 부러진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 다리를 한대 더 때려주는 것과 비슷한 나쁜 말입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어야만 병원가는 게 아니다

그래도 어쩐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게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라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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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크게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로 나뉜다. 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약물치료를 통해서 수면이라든지 우울, 불안 같은 것들을 조절할 수 있다”며 ”상담치료는 만약 환자에게 왜곡된 생각이 있다면 그걸 바꿔서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일상을 힘들게 하는 생각 패턴 자체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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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문가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어야만 병원에 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지민 연세채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정신질환은 진행이 되면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기 더 힘들어진다. 자발적인 치료나 자연적인 치료는 잘 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며 ”어떤 질환보다 조기 검진과 조기 치료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편견들로 인해) 다른 질환들보다 더 늦게 치료가 이뤄지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유지혜 지혜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뭔가 과중해지고, 힘들고,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했을 때 주변의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얘기하고 조언받는 것도 좋다”며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인지 아닌지 전문가의 판단을 들으면 상태 호전에 큰 도움이 된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심각할 때만 오는 곳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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