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9년 11월 16일 14시 25분 KST

정치로 다시 돌아온 이자스민은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같이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정의당에 있다고 설명했다.

“항상 댓글 풍년이잖아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난 11일 그의 정의당 입당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달린 수천개의 댓글은 그가 19대 국회의원(2012.6~2016.5)이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필리핀 가서 지껄여. 넌 한국인이 아니야’ ‘저 여자는 난민·불법체류자 대변인이냐’…. ‘키워줬더니 (자유한국당) 등에 칼을 꽂는군’ 같은 댓글도 눈에 띄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극에서 극으로” 당적을 옮긴 탓이다.

그러나 이자스민(42)은 씩씩했다. 혐오와 차별의 악성 댓글(악플)에 이골이 나서일까? “내가 좌절하면 안 되니까요. 이주여성들이 나를 응원한다고, 목소리를 잘 내달라고 기대하는데, 그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사명감으로 두번째 정치 무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자스민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난 12일 국회에서 만났다.

 

새누리당 의원에서 정의당 이주민인권특위 위원장으로

―그동안 ‘잠수 탔다’고 했는데, 어떻게 지냈나요?

“국회의원 임기 끝나고 2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휴대전화에 깔린 언론사 앱도 다 지우고, 방송 뉴스도 안 봤어요. 바른미래당 생긴 줄도 몰랐어요.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고 싶었고, 저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블로그나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도 2016년에 딱 멈춰 있어요.”

―다문화 관련한 활동은 계속했나요?

“지난해 한국문화다양성기구를 만들어 활동 중이고, 다문화 관련 강연이나 문화 행사도 다녔어요. 2013년부터 해온 꿈드림 학교도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주여성 교육 과정인데, 올해가 7기예요. 엄마가 자신 없어 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다문화 2세 교육도 중요하지만, 엄마부터 자존감을 가져야 해요.”

―‘생업’으로 교통방송(tbs) 영어라디오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먹고살 돈은 벌어야죠.(웃음) 국회의원 하루만 하면 연금 받지 않냐고 하는데, 19대 의원부터 폐지됐잖아요.”

―주변에서 말려도 댓글을 본다고 했었죠. 정의당 입당 기사에 대한 댓글도 봤나요?

“네. 4년 가까이 지났으니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봤는데, 비슷하네요. 예전엔 사람들이 왜 저한테 화를 내는지 알고 싶어서 다 봤어요. 이제는 안 봐도 될 거 같아요. 똑같은 이슈에 대해 ‘복붙’ 수준으로 되풀이하니까요.”

―입당식에서 ‘그동안 차별적인 혐오 발언이 더 많아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요.

“어떤 분이 ‘경제가 어려울수록 약자가 타깃이 되기 쉽다’고 말씀하셨어요. ‘사회의 비명소리’랄까요. 사는 게 힘든데 소리 지를 공간은 없고, 서로 말을 섞고 듣는 연습도 사라진 것 같아요. 혐오는 그런 걸 나쁘게 표출하는 거죠. 나는 취직하기 어려운데 이주노동자들은 월급 받잖아, 이런 식으로요. 오해도 많아요. 2012년에 다문화가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공익광고도 많이 하고, 시민단체나 기업들이 너도나도 다문화 활동을 하니까 엄청난 무료 혜택이 주어지는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거든요. 다문화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관련 예산이 ‘보건복지부 소관일 때 100원이었는데 여성가족부로 바뀐 뒤엔 10원’이라고 해요.”

―다문화라는 말까지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용어가 된 것 같아요.

“아름다운 이름이었는데, 라벨(낙인)이 된 거죠. ‘너 다문화지?’ 이런 식이요. 다문화 사회까지는 좋았는데, 다문화 2세,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면 라벨이 돼 버려요. 그렇다고 다문화라는 말을 바꾸거나 없애자고 할 수도 없어요. 탈북자가 북한이탈주민으로 바뀌었다고 대우가 크게 바뀌었나요?”

―혐오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도 ‘이주민을 위축시키는 위치가 될까봐 두렵다’고 했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이자스민, 다문화, 이민자 얘기만 나오면 욕하는 댓글이 달리고, 그걸 읽은 이주여성들이 저에게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한국 와서 남편 만나 아이 키우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무슨 욕먹을 일을 했냐고요. 이주노동자도 국가 대 국가로 엠오유(계약)를 맺고 한국 사장님이 뽑아서 데리고 오는데 왜 욕을 먹느냐고요.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걱정이 돼요.”

한겨레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자스민 전 의원 입당식에서 당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그런데도 정치를 다시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정의당에 들어왔잖아요. 예전에는 혼자 하는 게 정말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같이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거예요.”

―심상정 대표가 삼세번 제안한 끝에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두번은 거절했나요?

“아니요.(웃음) 세번 만났던 거예요. 입당 제안을 받고 주변 분들과 의논했어요. 다시 욕하고 난리 날 텐데 어떻게 할지…. 그랬더니 제가 국회에 있었을 때는 그나마 다문화가 이슈가 됐는데, 지금은 얘깃거리조차 되지 않으니 욕먹더라도 하라는 거예요. 어차피 욕은 바가지, 드럼통으로 먹어서 더 먹을 것도 없으니 견딜 수 있을 거고, 그게 저의 사명이라고 하시더군요.”

―정의당 당원들은 당적 바꾼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옮긴 사람이 없으니까요. 2012년에는 새누리당만 제안을 했고, 사회적 약자인 다문화·이민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자유한국당으로 바뀌면서 달라졌더라고요.”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은 외국인(이주노동자) 임금 관련해 부정적인 발언이나 법안이 나온다”고 답했다. 지난 6월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한 것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황교안 대표의 혐오 발언에 이어, 한국당 의원들이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낮추는 각종 법안을 발의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그의 주변인들은 “당신이 국회에 있을 땐 앞으로 나가지는 못해도 뒤로는 안 갔다”며 ‘여의도 복귀’를 응원했다고 한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되려면 당원 투표를 해야 하는데요.

“당적 옮긴 것을 탐탁해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제가 출마하겠다고 말할 게 아니고, 시간이 말하는 거겠죠. 지금은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이민자·이주아동 보편적 권리 위해 일할 것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가요? 19대 국회에선 이민사회기본법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추진했었는데요.

“이민사회기본법안을 냈을 때는 국회의원 끝나고 갈 기관 만드느냐고, 제 밥그릇 챙기는 법안이라고 욕을 먹었어요.(웃음) 이 두 법안을 다시 이슈화하고 싶어요. 이주민이 250만명인데, 한국에는 이민의 법적 정의조차 없어요. 잠시 머물며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유학생, 귀화 한국인 등이 있을 뿐이죠. 이민 정책 자체가 없는 겁니다. 이주민 문제를 다루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명확한 기준과 정책을 만들자는 거예요.”

―지난 9월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우수 외국인 인력 유치’를 발표했어요. 우수인재 비자를 신설해 각종 혜택을 준다고요.

“수출국가인 한국에서 필요한 건 제조업 인력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이 오래 일해서 기술이 쌓여도 현재 비자(E9)로는 가족도 못 데려와요. 한 독일인이 그러더군요.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엄청 높고 박사학위자도 많은데 외국에서 기술자를 데려가면 한국인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통해 이주아동의 교육권과 건강권, 출생등록권을 보장하자고 했었는데, 상임위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더군요.

“제안 설명만 하고 끝났어요.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있는데 없는 ‘그림자 아이’들이에요. 2만명쯤으로 추정했는데, 최근 시민단체들은 3만명이라고 해요. 이 아이들을 언제까지 그냥 내버려둘 건가요.”

그는 지난 4월 만난 한 남성의 이야기를 길게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외국인 바자회를 열고 있었는데, 한 남성분이 기웃기웃하다가 다가왔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서 대화를 하다가 누구인지 생각났어요. 국제결혼 피해 남성모임이 의원 300명한테 면담 신청을 했는데, 저만 만났었거든요. ‘하필 당신이냐’면서도 찾아오셨는데, 베트남 여성과 이혼한 뒤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거였어요. 아이를 찾으셨냐고 물으니 아직 못 만났다고 하시기에, 나중에 아이가 아빠의 노력을 알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한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저를 만나서 이주민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더 움직이려 해요.”

뉴스1
사진은 2014년 4월, 당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창립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2014년 4월28일.

 

 

연희동에서만 24년째, 서대문 주민으로 살다


이자스민(42)은 1996년부터 24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만 살았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왔어요?”(호기심)라고 물었고, 10년쯤 뒤부터는 “왜 왔어요?”(의심)라고 물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꺼져”(혐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넌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나 11살 때 다바오 지역으로 이주(두 지역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했다. 1993년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교 생물학과에 다닐 때 원양 항해사이던 남편을 만나 1995년 결혼했다. 이듬해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에 왔고, 1998년 귀화(한국 국적 취득)했다. 1남1녀를 키우며 2005년부터 ‘러브 인 아시아’(KBS1) 등에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을 했다. 물방울나눔회에서 다문화 가정을 도왔고,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 주무관으로도 일했다.

2008년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국제결혼 이주여성 지방의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각 당에 이력서를 넣었다.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경기도의원, 서울시 비례대표 출마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그해 8월 강원도 영월군 계곡으로 여행을 갔다가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물에 빠진 딸을 구하고 세상을 떠났다. “멍하게 앉아 있는데 개학해서 학교에 간다는 아이들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영화 <의형제>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2011년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엄마’를 연기했다. 2012년 <채널에이> ‘글로벌 퀴즈쇼 한글왕’ 진행을 맡았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 후보로 출마해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조명은 금세 꺼졌고, 온갖 혐오의 표적이 됐다. 그리고 국회를 떠난 지 3년 반 만에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정치 무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