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뉴디터의 신혼일기] 은근한 세대 차이는 어려운 문제(feat. 펭수)

펭수로 세대 대통합.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신랑은 곧 36세가 되고, 나는 아직 30대가 되려면 시간이 좀 남은 젊은 피(?)다. 넓게 보면 같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묶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진짜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세대인지 별 관심이 없는 법. 어쨌든 많다고 보면 많은 나이차라, 재밌게 잘 놀고 산다고 해도 은근한 세대차이는 늘 있었다. 대표적인 예라면 ‘슈가맨’ 같은 걸 볼 때.

질색;;
질색;;

내게 추억의 슈가맨이라면 기껏해야 물 넘치는 세탁기를 깔고 앉은 ‘Sweet Dream’의 장나라나 허스키한 보이스로 ‘슈퍼스타’를 부른 쥬얼리 정도인데, 신랑의 슈가맨은 ‘티티마‘나 ‘파파야’ 같은 90년대의 그룹이었다. ”여보는 이 노래 몰라? 진짜?”라고 물어보고서 ”와 이걸 모른다니”하고 탄복하는 매주의 반복. 화면 속 20대들은 ‘이게 뭐야’하는 표정으로 불을 두세 개 정도만 밝히고 있고, 30대들은 전원 불을 켜고 신나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흡사 우리 부부 같다.

문득,, 켰다가~ 놀랬네!!~ 우리 신랑은,,, 저시절 추억할랑가~~,,!
문득,, 켰다가~ 놀랬네!!~ 우리 신랑은,,, 저시절 추억할랑가~~,,!

이밖에도 온라인 탑골공원 영상을 본다거나 하면 혼자 잔뜩 신이 나서 ”와, 진짜 오랜만이다. 나 중학교 때”하면서 웅앵거리는데 나는 솔찍헌 심정으로는 이걸 꺼버리고 ‘쌉니다 천리마마트’ 빠야족 찌에의 뽀짝함을 모아둔 클립이나 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하지만 신랑은 또 어르신이라 웹툰에 나온 것들을 실사로 구현한 그 소소한 재미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이없뚜!

사뚜💕
사뚜💕

그렇게나 세대차를 느끼는 우리 부부를 대통합 시켜준 콘텐츠가 등장했다. 그건 바로 우주대슈스 펭수. 처음에는 ”이 못생긴 펭귄은 뭐냐”고 심드렁하던 신랑이었지만 ‘펭귄극장 1편’을 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활기차게 ”펭모닝”을 외치는 펭수의 모습에 퐐 인 럽, 그때부터 저녁마다 소맥 반주 하며 펭수 영상을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낙이 되었다.

소맥 마시면서 EBS 영상을 보고 있자면 사춘기 시절 살짝 앓고 지나간 중2병의 쎈척 기운이 떠올라 묘한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소맥 마시면서 EBS 영상을 보고 있자면 사춘기 시절 살짝 앓고 지나간 중2병의 쎈척 기운이 떠올라 묘한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생겼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펭수는 대단한 신세대의 캐릭터. 어딜 가도 누구랑 만나도 펭수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둘 다 세대를 앞서 나가는 인싸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펭수 때문에 우리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

나에게는 아직 미성년자인 막내동생이 있다. 그냥 미성년자도 아니고 2019년 기준 17세인, 미성년자 중의 미성년자. 2002 월드컵을 교과서에서만 보았다는 그는 갓난애기 때 볼살 빨갛게 통통해가지구 ”큰누님, 큰누님”하며 나에게 달려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누나를 닮은 장신의 미남자로 성장, 핵인싸 라이프를 지향하며 인서울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급식돌이가 되었다.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자 대통령 당선일이 12월 19일이라는 TMI가 어쩌다보니 머릿속에 들어와버린 것처럼, 아마 펭수 이모티콘이 처음으로 출시된 날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펭수티콘 출시일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막내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다.

이런 귀여운 연락에 참지 못한 팔불출 누나는 곧장 펭수티콘을 막내에게 선물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막내가 엄청나게 좋아할 거라고 자신하며 말이다. 그러나 90년대에 태어난 아내에게 매일 늙은이라고 놀림 당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신랑의 반응은 달랐다.

″펭수 2030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라 고등학생들은 모르는 거 아냐?”

그러고보니 20대 후반인 나와 30대 중반인 신랑이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요즘 시대의 급식돌이들에게는 안 먹힐 가능성도 있었다. 그 와중에 막내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막내는 ‘뭐야, 이거 선생님들이나 좋아하는 못생긴 캐릭터잖아. 큰누님은 역시 완전 아줌마야ㅎㅎ’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안돼ㅠㅠㅠㅠ
안돼ㅠㅠㅠㅠ

″분명 막내는 완전 늙은이가 센스있는 척 한다고 생각할 거야. 에베베. 맨날 나보고 늙었다고 하더니. 늙음은 상대적인 거라는 걸 몰랐지. 에베베.”

나는 가까스로 멘탈을 붙들고 반격에 나섰다.

″아니, 펭수 이모티콘 오늘 출시된 거잖아. 이렇게 새삥인 선물은 또 없다구. 그래도 늙은이라고 생각할까?”

″아버님이 여보한테 조용필 23집 오늘 발매된 거 선물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게 새삥처럼 느껴질까?”

우에엥....
우에엥....

나의 생일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도록 막내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막내는 정말로 나를 늙은이라고 생각해 포기해버린 걸까? 그런 생각에 생일을 마무리하면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흑흑... 막내는 나를 10대들의 트렌드를 잘 아는 척 하지만 실상은 촌스러운 꼰대라고 생각하겠지.

생각해보면 나도 급식순이 시절 학원 선생님들이 이미 한물간 유행어 같은 걸 쓰면 ‘완전 우리를 잘 아는 척 한다’라고 우습게 생각했었는데, 그걸 고대로 돌려받게 된 거다. 나는 그렇게 10여년 전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펭수를 보면서 27세 생일을 마무리했다. 물론 신랑보고 나이 많다고 놀리는 건 별 상관 없는 일이라 반성은커녕 일말의 고려조차 않았다. 어쨌든 펭수는 사랑이야... 펭펭.

PS. 다행히 막내는 펭수를 알고 있었고, 사정이 있어 카톡을 늦게 본 것 뿐이었으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펭수는 먹히는 캐릭터였다. 해피엔딩.

세대 대통합을 이룩한 펭수야 사랑해.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