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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사건 맡은 재판부가 불법촬영 사진을 판결문에 게재하다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다" -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뉴스1

‘레깅스 불법 촬영’ 재판 판결문에 피해자 사진을 실은 재판부가 3건의 다른 불법 촬영 사건 판결문에도 피해자 사진을 실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 사건은 레깅스 판결과 달리 1·2심에서 유죄가 났지만, 법원 검색 시스템을 통해 화장실에 있는 모습 등 불법 촬영된 피해자 사진 수십건을 외부인도 볼 수 있었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2단독 장원석 판사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사건의 1·2심 재판을 하면서 판결문 뒷부분에 첨부한 ‘범죄 일람표’에 가해자가 불법 촬영한 사진을 실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대중교통에서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를 촬영한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문 본문에 피해자 뒷모습 사진을 실은 재판부다.

세 판결은 각각 화장품 가게와 여자 화장실, 대중교통 등에서 피해 여성을 불법 촬영한 사건이다. 세 사건 모두 1심 유죄, 2심 일부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1·2심을 심리한 판사와 재판부는 불법 촬영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 사진은 물론, 가해자가 촬영한 다른 피해자 사진도 범죄 일람표에 첨부했다. 범죄 일람표는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요약해 정리한 것으로, 판결문의 일부다.

세 사건 일람표에는 각각 25장, 7장, 11장의 불법 촬영 사진들이 첨부됐다. 얼굴이 나오지는 않지만 여성의 신체 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여성의 하반신 사진, 몸에 붙는 상의를 입은 상반신 사진은 물론 여성이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사진 등이 실렸다. 가게 안에서 불법 촬영당한 13살 아동의 허벅지가 찍힌 사진도 담겼다.

법조계에서는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피해자 다수의 사진을 판결문에 싣는 행위는 그 자체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해당하며 피해자 인격권을 손상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군다나 ‘레깅스 사건’을 비롯해 네 사건 모두 현재 법원 내부는 물론 대법원 도서관의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판결문 사진 게재가) 사실상 불법 촬영물 유포에 해당하고, 사진을 넣는 것은 실익과 효용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최은순 변호사(한국젠더법학회 회장)는 “상해죄라 해도 범죄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첨부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라 본다”고 말했다.

판결문 작성과 열람 시 불법 촬영 피해자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구체적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미지는 누군가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판결문에 넣어야 하는지, 넣는다면 공개 범위를 어떻게 제한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보호 방안을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듯 대법원 규칙, 예규 등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관계자는 “해당 사건 판결문은 검찰 공소장에 붙어 있던 범죄 일람표를 그대로 첨부한 것”이라며 “공소장은 재판 단계에서 피고인에게 전달되는데다, 사진은 재판에 쟁점이 되기 때문에 판결문에도 범죄 일람표를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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