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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남자 코치의 상습 성폭행 폭로한 여성이 위자료 1억원 받게 됐다

성폭력 반대 운동 쪽에서는 이번 판결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첫 ‘미투’(Me too·나는 말한다) 이전에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상습 성폭행한 남자 테니스 코치를 법정에 세우고 결국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여성이 있다.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현 테니스 코치인 김은희(29)씨의 이야기다.

김씨는 지난해 2월 ‘SBS 스페셜’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이 겪은 피해와 이후의 법정 투쟁에 대해 자세히 밝힌 바 있다. 그가 성추행과 성폭행을 겪은 것은 초등학생 시절인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김은희씨 
김은희씨  ⓒSBS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했던 김씨는 ”(어른들은) 내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코치의 말을 더 믿을 것”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묵 속에서 괴로워하던 김씨는 성인이 된 후 가해자인 남자 코치가 여전히 어린 테니스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침묵을 깨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2016년. 김씨는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다른 이들은 절대로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용기를 내어 홀로 법정 투쟁을 준비하여 2017년 10월 가해자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도록 만들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김씨는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으며, 얼마 전 항소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인 김은희씨에게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한겨레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민사1부(재판장 조규설)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김씨가) 외상후 스트레스를 처음 진단받은 2016년 6월 현실화됐으므로 마지막 범행 시기인 200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피고쪽) 주장은 이유 없다”며 위자료 1억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을 언제로 보느냐였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단기)이 지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장기)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가해자인 테니스 코치 쪽은 마지막 범죄일이 2002년 8월이므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손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원고가 최초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 7일에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일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행위와 (후유증 같은) 손해 발생 사이에 시차가 있다면, 잠재하고 있던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말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말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한겨레

성폭력 반대 운동 쪽에서는 이번 판결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 등은 통상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정신적 피해 등을 호소하는데, 그동안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 시한인 10년이 지났더라도 정신적 피해를 비롯한 후유증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의 피해자들도 2012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판결을 받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2일 논평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현실화시킨 판결을 환영한다”며 ”민사소송은 성폭력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전화는 ”이번 판결은 한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가 만들어낸 결과”라며 ”현재의 소멸시효 규정은 연령, 장애 등 피해 발생 당시의 피해자 특성,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영향력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아 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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