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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2일 10시 21분 KST

직접 가본 연천 민통선에는 돼지 수만마리가 쌓여 있었다 (르포)

정부는 '살처분 이후' 대책 마련엔 소극적이었다.

한겨레
덤프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돼지 피. 돼지가 부풀어 올라 피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군부지에 살처분된 돼지 수만마리가 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감염되지 않은 돼지들까지 전부 살처분하도록 밀어붙이면서 매몰지 확보 등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11일 오후 한겨레가 마거리 민통선 인근을 찾았을 때 도로에는 덤프트럭 20여대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덤프트럭 적재함 뒤편 틈새에선 피가 뚝뚝 떨어져 도로가 빨갛게 물들었다. 적재함 덮개는 부풀 대로 부푼 수십마리의 돼지 사체가 밀어내고 있었다. 덤프트럭 한대가 실을 수 있는 돼지는 50~60마리다. 1천여마리의 돼지는 마거리에 도착해 이미 하루 넘게 실온에서 방치된 터였다.

덤프트럭들이 향한 곳은 원래 군 수색대 연병장으로 쓰이던 민통선 내 마거리 매몰지로 민간인은 허가 없이 오갈 수 없다. 이 지역에서 돼지 매몰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한겨레에 “현장에 죽은 돼지가 3만마리는 있다고 알고 있다. 돼지가 산처럼 쌓여 침출수가 흐르고 있다. 10일 내린 비 때문에 냇가에 돼지 피가 흐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연천군의 하천은 임진강과 연결돼 있어, 식수 오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민통선 마거리 매몰지에 이런 아비규환이 연출된 것은 정부가 ‘예방적 살처분’ 방식으로 연천군 내 모든 돼지를 수매 후 살처분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인 뒤 두달 새 연천에서만 19만마리의 돼지가 일괄 살처분됐다. 마거리 매몰지의 돼지들 중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돼지는 없다. 연천군 관계자는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천에 있는 돼지를 싹 다 죽였다. 이런 방식은 지침에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을 보면 연천에서 사용하는 ‘수매 후 살처분’ 방식에 대한 지침이 없는데도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이달 9일까지 살처분을 모두 끝내라’고 압박했다. 살처분된 돼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매몰 부지 마련 등 ‘살처분 이후’ 대책 마련엔 소극적이었다. 연천군 관계자는 “한참 전부터 (매몰) 부지를 알아봤지만 부지를 알아보는 건 실무자 선에서 불가능하다. 여러차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직접 민통선 안에 있는 빈 부대를 발견한 뒤 국방부에 문의해서야 매몰 가능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몰지를 선정하는 데 연천군과 협조해달라고 (우리 쪽이) 국방부에 부탁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덤프트럭 적재함에서 떨어진 돼지 사체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경기도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살처분 방식을 바꾼 것도 이런 ‘지옥도’의 한 배경이다. 경기도는 그동안 매립 방식으로 진행된 살처분을 렌더링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2일 밝혔다. 렌더링은 사체를 고온에서 가열한 뒤 퇴비 등으로 재가공하는 방식인데 비용이 매몰의 40% 수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렌더링의 경우 처리 속도가 느려 연천과 인근 포천의 렌더링 업체 두곳이 모두 달라붙어도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개체 수가 4000~5000마리에 그친다. 처리 속도가 지지부진하자 경기도는 뒤늦게 정부, 연천군과 협의해 매몰과 렌더링을 병행하기로 방침을 재변경했다. 서둘러 살처분을 지시한 정부와, 비용을 고려한 지자체가 방역에서 엇박자를 낸 셈이다.

마거리 매몰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연천군이 긴급지침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지침상 군수는 매몰 후보지를 선정할 때 매몰지특별관리단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연천군은 아예 특별관리단을 꾸리지도 않았다.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병에 걸린 가축에 대한 일반적 살처분은 필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가축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은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살처분은 답이 아니다”라며 “이번 기회를 토대로 확실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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